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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영호루 정자 입구. 한글 현판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
▲ 안동 영호루(映湖樓)  안동 영호루 정자 입구. 한글 현판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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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표적인 유교 고장 중 한 곳인 안동은 조선시대 못지 않게 고려 왕조와도 인연이 깊다. 고려 태조 왕건은 자신을 도와 후백제 견훤을 물리친 당시 고창군(안동)과 주민을 위해 '나라를 편안하게 한 동쪽 마을'이란 뜻으로 안동(安東) 지명을 하사했다.

또 고려 말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당시 복주(안동)로 왕비와 신하들을 거느리고 피난 왔다. 공민왕의 몽진으로 이곳 안동은 잠시 고려 수도가 되었고, 공민왕과 관련된 유적과 전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공민왕은 이곳 낙동강 영호루 정자에 올라 피난길의 고단함과 적적함을 달랬다고 한다. 왕은 누각 밑 낙동강에 배를 띄우고 모래사장에서 활쏘기 경기 등도 했다고 한다. 전설이 서린 당시 영호루는 사라지고 없지만 1970년 다시 만든 영호루가 현재 안동시 정하동에 남아 있다.
  
낙동강쪽으로 걸려있는 영호루 현판, 공민왕 친필
▲ 영호루 현판 낙동강쪽으로 걸려있는 영호루 현판, 공민왕 친필
ⓒ 이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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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은 개성으로 환궁한 뒤 복주(안동)를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시키고 영호루(映湖樓) 친필 금자현판(金字懸板)을 하사했다고 한다. 영호루 한자 현판은 공민왕의 친필이고, 한글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로 현재 영호루 앞 뒤편에 걸려있다. 2층으로 된 영호루에 오르면 북서쪽에 안동의 영봉인 학가산이 우뚝 솟아 있고, 낙동강 건너로는 안동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다리가 영호대교, 중간은 안동(인도)교, 왼쪽은 안동철교
▲ 영호루에서 바라본 안동시가지 오른쪽 다리가 영호대교, 중간은 안동(인도)교, 왼쪽은 안동철교
ⓒ 이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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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루 정자 내부에는 옛 선인들이 영호루에 올라 읊은 한시 시판이 많다. 현재 걸린 시판만도 47개로 퇴계 이황과 삼봉 정도전 등 유명인들의 시판이 남아 있다.
  
영호루에 올라 읊은 퇴계 시

客中愁思雨中多(객중수사우중다) / 나그네 시름이 비만나 더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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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 이황 영호루 시판 영호루에 올라 읊은 퇴계 시 客中愁思雨中多(객중수사우중다) / 나그네 시름이 비만나 더한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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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1820년 안동부사 김학순이 누각을 중수하고 '낙동상류 洛東上流 영좌명루 嶺左名樓'라는 대형 편액을 걸었다. 이 편액은 지금까지 전해지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누각의 위용과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 
 
1820년 안동 부사 김학순이 쓴 글씨로 만든 편액 '낙동상류 洛東上流'
▲ 영호루 내부 편액 "낙동상류" 洛東上流 1820년 안동 부사 김학순이 쓴 글씨로 만든 편액 "낙동상류 洛東上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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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년 안동부사 김학순이 쓴 글씨로 만든 대형 편액 '영좌명루,嶺左名樓'
▲ 영호루 정자 내부 편액 "영좌명루,嶺左名樓" 1820년 안동부사 김학순이 쓴 글씨로 만든 대형 편액 "영좌명루,嶺左名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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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영호루는 경남 밀양의 영남루와 진주의 촉석루, 전북 남원의 광한루와 함께 한강 이남의 대표적인 누각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했다.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1200년대 고려 김방경 장군이 일본 원정길에 영호루를 찾아 읊은 한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어 영호루의 건립 연대를 짐작하게 한다.
  
고려 장군 김방경이 일본 원정길에 영호루에 올라 읊은 시

東征日本過次福州登映湖樓(동정일본과차복주등 영호루)
▲ 영호루에 걸린 김방경 시판 고려 장군 김방경이 일본 원정길에 영호루에 올라 읊은 시 東征日本過次福州登映湖樓(동정일본과차복주등 영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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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묵객들이 오른 영호루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547년 조선 명종 2년 대홍수로 누각이 유실됐고, 1775년 영조 51년에 다시 홍수를 만나 누각이 사라졌다.

1792년 정조 때, 1934년 갑술년에 또다시 대홍수를 만나 누각이 유실됐다가 1970년 원래 낙동강 북단에 있던 누각을 지금의 남단으로 옮겨 중건했다고 한다. 4차례 대홍수로 누각이 유실됐지만 안동 시민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다시 중건된 것이다.

영호루 금자현판도 1547년 명종 때 대홍수로 떠내려갔다가 경남 김해에서 발견됐고, 1934년 대홍수 때도 수개월 후 선산군(지금 구미시) 구미리 부근 강물 속에서 다시 찾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 전란을 피해 몽진할 정도로 안동은 '편안한 동쪽 마을'이었지만 6.25 전란은 피하지 못했다. 영호루 바로 옆에는 6.25 전쟁과 월남 전쟁 등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호국 영령을 추모하는 충혼탑이 건립돼 있다.

충혼탑은 해마다 6.25 전쟁이나 현충일, 그리고 새해 등 각종 기념일 때 추모 행사가 다양하게 열린다.
 
6.25전쟁, 월남전쟁 등 호국 영령을 모신 곳
▲ 안동시 정하동 충혼탑 6.25전쟁, 월남전쟁 등 호국 영령을 모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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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영호루 바로 앞 낙동강은 6.25 전쟁 때 북한국과 국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남하하려는 북한군을 맞아 낙동강 남단을 사수하려던 국군 8사단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교전을 펼쳐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영호대교 옆에 작은 다리인 안동(인도)교는 1934년에 설치한 교량으로 6.25 당시 안동 북쪽과 남쪽을 잇는 유일한 다리였다. 북한군의 남하를 막으려던 국군은 안동교 다리 남단에 폭탄을 설치해 다리를 폭파시켰다. 다리를 폭파한 자리는 지금도 동판으로 표시돼 있어 급박했던 당시의 전투 상황을 느끼게 한다(안동교 북단에서 32, 33, 34번 교각 폭파).
  
6.25 전쟁 때 북한군 남하를 막기 위해 폭탄을 설치해 다리를 폭파한 자리
▲ 안동(인도)교에 남아있는 폭파 자리 6.25 전쟁 때 북한군 남하를 막기 위해 폭탄을 설치해 다리를 폭파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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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때 안동(인도)교와 철교가 폭파됐다가 복구됐다.
▲ 안동(인도)교에서 바라본 안동철교 6.25 전쟁 때 안동(인도)교와 철교가 폭파됐다가 복구됐다.
ⓒ 이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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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 다리와 함께 그 옆에 있던 안동철교도 함께 폭파됐다. 안동철교는 중앙선 철도 이전으로 지금은 열차가 다니지 않지만 철교 교각 곳곳에는 당시 총탄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6.25 당시 국군은 '안동 전투'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며칠 동안 저지함으로써 대구 인근의 다부동 전투와 낙동강 전투 교두보를 마련할 시간을 벌어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6.25 전쟁 때 폐허가 된 안동시가지와 폭파된 안동(인도)교와 안동철교
출처:(구)안동역사 사진전
▲ 6.25 전쟁 때 안동시가지와 낙동강 6.25 전쟁 때 폐허가 된 안동시가지와 폭파된 안동(인도)교와 안동철교 출처:(구)안동역사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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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때 안동은 폐허가 됐지만 굳건히 일어나 새로운 발전을 이루며 '평화로운 동쪽 마을'의 명성을 다시 잇고 있다. 안동 영호루는 낙동강 자전거길을 따라 정하동 영호대교 남단으로 올라가면 작은 언덕 위에 있으며, 안동(인도)교, 안동철교, 안동시가지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안동 영호루 : 안동시 강남로 187-5 (정하동 338-1번지)
안동(인도)교 : 영호루 바로 앞
안동철교 : 영호로 바로 앞
 
지도 좌편 안동 영호루, 충혼탑, 영호대교, 안동교가 보인다. 안동철교는 지도에 나타있지 않지만 안동교 바로 옆에 있다.
▲ 안동 영호루, 충혼탑, 영호대교, 안동교 지도 지도 좌편 안동 영호루, 충혼탑, 영호대교, 안동교가 보인다. 안동철교는 지도에 나타있지 않지만 안동교 바로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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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자전거로 떠나는 안동 문화 여행은 계속됩니다.


태그:#안동 자전거여행, #영호루, #고려 공민왕, #안동인도교, #안동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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