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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의 후 15년이 지난 오늘날,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그 사이 차별과 혐오선동을 이용하거나 방치해 온 정치는 한국사회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국회 앞 평등텐트촌 농성과 미류(인권운동사랑방), 종걸(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두 인권활동가의 단식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고, 여러 핑계를 앞세워 평등을 미루고 있다.

차별금지법의 4월 제정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세력의 폭언을 제일 앞에서 맞아야만 하는 성소수자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기 위해 4월 21일부터 법안 공포가 가능한 5월 2일까지 매일 한 명씩 공개적으로 편지를 적어 보낸다.[기자말]
동국대학교 팔정도에서
 동국대학교 팔정도에서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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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박광온 법제사법위원장, 그리고 제 지역구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사는 29살 게이입니다. 게이, 성소수자라고도 하고, 퀴어라고도 하고, 동성애자라고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 외 제 소개를 조금만 더 하자면, 장남장녀의 장남으로 태어났고, 태어날 때부터 고양시에서 살아온 토박이입니다. 동국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있는 늦깎이 대학생이기도 합니다. 집은 국민의힘을 지지하시는데, 저는 반동분자마냥 민주당과 정의당을 찍곤 했습니다. 무교라고 자처하지만, 어릴 때 받은 세례명은 미카엘입니다.

음, 과잉정보일지도 모르는 이야기들로 저를 소개드리는 것은, 저를 포함한 성소수자들이 저처럼 다양한 처지에서 살아가고 있고, 우리가 구체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여 전해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제 이름은 심기용입니다, 반갑습니다. 

편지 말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매일 보내고 있는 동료들의 편지들 잘 받고 계시는지요? 오늘 저까지 벌써 9개의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압니다. 국회 앞에선 종걸, 미류 활동가가 19일째 단식을 하고 있지요. 동료들은 타들어가는 마음으로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법사위 공청회 날짜 아직 안 정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느긋하시니 정말 타들어가는 느낌입니다. 보통 약속시간에 늦었으면 빨리 나갈 생각을 해야 하는데, 아직 나갈 채비조차도 하지 않으신 것 같아서 보채고자 편지를 씁니다.

필요성은 공감하신다고 했지요. 그럼 혹시 절박하기는 하십니까. 차별금지법 제정이 미뤄지는 한 세월 동안, 차별이 만들어낸 죽음과 사건은 참 많았습니다. 잠깐만 찾아봐도 구체적인 사례는 쏟아집니다. 그 사례를 들여다보면 차별의 해결이 민생문제와 즉결된다는 것, 즉 이 법이 제정이 사람을 살리는 문제라는 것을 쉽게 아실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법의 절박함을 모르겠다는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혹시, 차별이 있었다, 그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외면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국회에서 인간의 삶마다의 무게를 달리 둬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어떤 삶은 무겁고 시급한데, 어떤 삶은 가볍고 외면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면요. 검수완박을 둘러싼 민주당의 의지는 그 증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무게 추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있어 도무지 물러서기가 어렵습니다.  

제 개인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20대 후반이 되니 주변 친구들과 선배들이 결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작년부터 집안 어르신들이 연애 얘기와 결혼 얘기를 넌지시 물어오십니다. 어렸을 때와 다르게 그분들의 얘기가 사뭇 진지해졌다는 사실에 당황하곤 합니다. 한 번은 할아버지께서 저에게 "기용아, 결혼해야지. 나는 니 나이 때 결혼도 하고 돈도 벌고 다 했단다" 하시길래 "네, 할아버지. 저도 결혼하고 싶으니, 제가 결혼한다고 누구 데려오면 반대만 하지마세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그래 너가 좋다는데 내가 왜 반대해"라고 하시면서 크게 웃으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을 살짝 속였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 바람과 약속은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요? 차별금지법도 겁에 질려 못 만드는 나라에서, 저와 할아버지의 바람과 약속이 지켜지는 것이 제 의지가 아니라 또 다시 국회 입법의지의 몫이라니 그냥 속만 탑니다. 자기 가족도 못 꾸리지 못하는 제 성소수자 친구들에게 국회는 어떤 약속을 하고 있습니까. 동성결혼은 그저 먼 미래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국방부가 강제로 전역시켰고, 결국 죽음을 선택했던 트랜스젠더 군인 고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시나요. 변 하사가 죽었을 적 그 나이가 고작 24살입니다. 트랜스젠더를 '심신장애자', '불구자', '정신병 환자'로 취급하던 국방부의 모욕들을 기억합니다. 저도 군대를 다녀왔지만, 필요할 때는 국민으로서 소환해 나라를 지키라고 전방에 내몰더니, 일상적인 권리에서 평등을 요구하니 냅다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것이 저의 조국인 것일까요. 대체 제가 교육받았던 우리가 지켜내고자 하는 국민의 생명과 기본권은 다 무엇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왜 성소수자는 평등할 수 없습니까.

민주주의를 가르친다는 학교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성애자 교사, 트랜스젠더 교사가 지금도 현장에 있고, 당연히 성소수자 학생들도 있겠습니다만, 이들은 절대로 학교 현장에서 본인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관계자 모두 학부모들의 공격이 두렵다고만 하고 차일피일 성소수자 교사와 학생의 문제를 외면합니다. 민주적 시민을 배양하겠다는 그 목표는 왜 성소수자들 앞에서 항상 나약하고 취약해지는 겁니까. 왜 성소수자들은 이 사회와 함께 교육을 고민하고 미래를 꿈꾸는, 동등한 시민일 수 없는 것입니까.
 
마을 행사에 참여했을 때
 마을 행사에 참여했을 때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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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는 왜 또 다른 자격 조건이 되는 것일까요. 왜 군인의 본분, 또는 교사의 본분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우리 사회는 그들의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초점을 맞춰 자격을 논하게 될까요? 왜 군인 간부, 병사들, 교사들, 학생들은 스스로의 성정체성을 탐색하거나 고민하는 능력 없는 수동적인 존재인 것처럼 다뤄지질까요. 나 자신의 성정체성은, 예컨대 군인 간부, 교사, 병사, 학생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자기 성정체성을 스스로 탐색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상식이 왜 이 사회에는 왜 통하지 않을까요. 성적자기결정권이 이렇게 모욕 당해도 되는 걸까요.

"그냥 숨기고 살아야지. 정말 안전한 몇 사람들에게만 알려야지." 이런 식으로 성소수자들은  평생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고 하고,특히 군대, 학교, 기업에서 자신을 정말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어떤 환경이든 무관하게 원칙적으로 자신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강고한 차별 현실에 보통은 숨기며 타협하는 식으로 본인의 생존전략을 구상합니다. 성소수자 청년은 보통 그런 삶을 삽니다. 숨기고, 참고, 무시하면서. 정치인들이 청년정책이랍시고 여성징병제 정도나 제시하고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만, 학업에서도 취업에서도 직장에서도 성소수자 청년들은 성정체성을 약점처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성소수자들이 마주하는 현실의 일부입니다.

청년 성소수자의 60%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가장 시급하게 생각합니다. 차별금지법, 이젠 역사에 새겨야 할 민생법안인 것입니다. 제정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 국회의원 자리 지키기 위해 국회에 계신 것이 아니라면, 차별 없는 민주주의에 진심이시라면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 열 손가락으로 열심히 표 계산하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다만 대선에서 24만7077의 근소한 표 차이로 패배한 뒤의 표 계산을 어떻게 하고 계신지는 잘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차별금지법 반대하는 우익 종교인들의 마음을 못 돌려서 패배하셨습니까. 아니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고 외면하다가 놓친 민심으로 간소하게 패배하셨습니까. 민주당에서 미래의 희망이 보이는 대신 과거의 망령만 보이게 된 지금에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역사를 잊고, 민주주의와 평등해야 할 곳곳의 존엄한 개인들을 외면했기 때문은 아니겠습니까.

역사를 전공하는 학생으로서도 참 부끄럽습니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퀴어문화축제를 두고, 성소수자의 권리는 위헌적이라며 서울퀴어문화축제 법인 설립을 불허했지요. 마침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다가 그 소식을 듣고 해방정국의 선열들에게 참 미안했습니다. 그 당시 성소수자에 대한 논의는 구체적으로 없었겠지만, 우리나라가 민주적이고 차별 없이 누구나 존엄해야 한다는 글씨를 새겨놓았던, 우리가 제국에 맞선 독립운동들을 계승하고, 독재에 맞선 4.19 혁명을 계승한다고 선포하는 자랑스러운 이 나라의 헌법을 두고, 그 민주정신을 기만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당당한 작금의 상황에 고개를 들기 어렵습니다. '민주'라는 이름의 당명과 함께 하는 네 분이시니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15년이 되었지요. 참 질기고 오래되었습니다. 앞서 얘기했던 예시들은 모두 저와 제 친한 친구들이 직접 겪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차별금지법과 우리의 평등이 유예되는 동안, 마냥 비참함만 느꼈던 것은 아닙니다. 종걸과 미류가 나서주었지만, 차별을 없애고 평등으로 나아가자는 이야기들 앞으로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연대하고 있습니다.

15년 그 긴 시간 동안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은 서로의 사연들이 엮여서, 장애인, 노동자, 성소수자, 난민·이주민, 여성, 아동, 빈민 저학력자, 지방거주자 등지의 수많은 조건의 사람들이 따로따로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부당한 차별에 함께 맞서는 연대의 정치로 성장했습니다. 제정도 중요하지만, 나와 우리 주변의 평등부터 챙기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졌습니다. 정치가 외면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의연하게 평등한 사회를 위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참 지혜로운 시간이 아니었습니까. 이제는 정말로 정치의 시간입니다.

친애하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박광온 법제사법위원장, 그리고 제 지역구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님. 저의 29년 인생이 네 분보다 참 짧지요. 그러다보니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은 15년이 제 삶의 절반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동안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도 입학하고, 동성인 애인들도 여럿 만났고, 군대도 다녀왔습니다.

그 매번의 순간마다 저는 '차별금지법도 만들어지지 못한 나라'라는 꼬리표와 함께 살았고, 이제는 잔치는 다 끝났다는 30, 서른을 맞이합니다. 서른이 되어 올해를 돌아볼 때, 아 지난해 4월에 차별금지법이 제정됐지,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제 인생도 단 한 번뿐이라서, 하루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제 인생에 더 이상은 종걸과 미류의 단식하는 날을 남길 수 없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하십시오. 답변을 기다립니다.

2022.04.29.
심기용 드림
  
7살, 초등학교 탐방
 7살, 초등학교 탐방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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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살, 차별금지법 제정촉구 문화제
 29살, 차별금지법 제정촉구 문화제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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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성소수자들이 공개편지를 보냅니다.


태그:#차별금지법, #평등법,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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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평등이념과 포괄적인 차별금지를 실현하는 인권기본법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자 실천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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