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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봄바람 순례단과 길동무들이 드디어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3월 15일 제주 강정을 출발한 지 37일째입니다. 그동안 경남권, 호남권, 충청권의 각 지역을 순례하며 모두 예순한 번의 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매 순간 잊을 수 없는 현장이었습니다. 외롭게 싸우는 자리를 뒤로하며 돌아설 때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하나로 연결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다음 길을 떠나며 서울까지 도착하였습니다.

청계광장 앞에서 '다른 세상을 만드는 4.30 봄바람 조직위원회' 주최로 기자회견을 하였습니다. '장애인차별철폐, 지금 당장 기후정의, 차별을 끊고 평등으로, 전쟁 연습 말고 평화 연습, 일하다 죽지 않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 세대론 무대를 거부하고 평등의 봄바람을'이라는 주제로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오는 30일, 용산에서 출발하여 3시 보신각에서 열릴 문화제와 전국의 '봄바람 버스' 계획을 발표하고 서울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세상을 만드는 4.30 봄바람 계획 발표 기자회견
 다른 세상을 만드는 4.30 봄바람 계획 발표 기자회견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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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순례단은 서울 첫 일정으로 1540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동안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일본대사관 앞은 극우단체가 집회를 선점하여 정상적인 수요시위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수요시위를 방해하려고 스피커를 크게 틀어놓고 욕설과 고성을 질러댔습니다. 결국 차로에서 수요시위 정상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야 했습니다.

수요시위에서 봄바람 순례단의 문정현 신부님 발언이 있었습니다. 극우세력의 소리가 더 요란합니다. 일본 정부는 진정한 사죄 없이 역사를 왜곡하고 지우고 있습니다. 소녀상 앞에 모인 극우세력은 역사를 부정하고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에게 모욕을 주고 있습니다. 이들의 행태를 교묘히 이용하는 정치세력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세력을 바라보면서 분노의 마음을 참기 어려운 하루입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참석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참석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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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순례단은 '장애인차별철폐 결의대회'가 열리는 여의도 이룸센터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며 올해는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많은 장애인들과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장애인에게 '이동권'이 없으면 교육권과 노동권도 없습니다.

이들의 절규에 대개의 비장애인들은 여전히 침묵하거니 외면하고 있습니다. 20년 전 외쳤던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오히려 장애인의 외침을 조롱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이동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노동할 권리,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탈시설 권리 등 장애인 차별을 철폐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며 헌법적 권리입니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장애인차별철폐의날 20주년, 장애인 권리 민생 4법 제개정 결의대회
 장애인차별철폐의날 20주년, 장애인 권리 민생 4법 제개정 결의대회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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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죽지않는 현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21일 오전, 봄바람 순례단은 을지로에 있는 동국제강 산재 사망 하청 노동자 고 이동우님의 분향소를 방문하고 유가족을 만났습니다. 고 이동우(38)님은 지난달 동국제강(주) 포항공장의 크레인 기계 보수작업 중 사고를 당해 병원 후송 중 사망하였습니다.

고인의 처와 가족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동국제강 건물 입구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고인의 부인은 임신 중이며 암투병 중인 장모는 지친 몸으로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안전보건규칙은 '크레인을 사용하는 작업을 하는 경우 안전대의 착용 상황을 감시'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그 기준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산재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동국제강 산재사망 하청노동자 고 이동우 분향소 방문 및 간담회
 동국제강 산재사망 하청노동자 고 이동우 분향소 방문 및 간담회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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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를 녹여서 철판이나 철근을 만드는데 철이 무거우니까 크레인으로 걸어서 옮기거든요. 동우는 그 크레인에서 일을 했어요. 20미터 높이의 크레인에 올라가서 고장난 부품을 교체하려고 크레인 아랫쪽에 들어가 있었어요. 그런데 동우가 있는지 모르고 크레인을 작동 시킨거에요. 그렇게 사고가 났어요.

작업장에 가봤는데 어수선하더라고요. 5년 동안 5명이나 산재로 죽었어요. 그동안은 돈 몇푼 주고 그냥 넘어간거에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있으니까 싸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과도 받고 재발방지도 해야 되잖아요. 그걸 왜 약속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고 이동우님 유가족)


오후 봄바람 순례단은 잠실에 있는 수협중앙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는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반대' 상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은 8년째 싸우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 상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생 장사를 하던 상인들이 쫓겨났습니다.

봄바람 순례단이 도착하자 상인들은 신부님을 보자마자 울부짖습니다. 상인들은 그동안 수협이 고용한 용역의 폭력에 시달려 왔습니다.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반대 투쟁 농성장 간담회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반대 투쟁 농성장 간담회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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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신부님에게 다가가 손잡고 우는 모습에서 그간의 외로움과 억울함과 원통함이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많이 못 가서 미안했는데 더 송구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더 연대하며 서로의 힘이 되고 의지가 되어야겠다 다짐해봅니다. 봄바람순례단의 의미를 또 느낍니다.

수협의 부동산투기에 상가와 일터를 빼앗겼으나 제대로 된 시장이어야 수산물을 팔 수 있기에 타협하지 않고 싸우는 여러분을 지지합니다. 새삼 서로의 존엄을 지키는 분들에게서 또 하나의 인권의 씨앗 얻어 갑니다."(인권활동가 명숙)


봄바람 순례단은 저녁, 의왕촛불행동의 초대를 받아 간담회를 하였습니다. 의왕촛불행동은 지역의 다양한 주민들이 모인 풀뿌리 조직입니다. 풀뿌리 공동체는 희망의 씨앗입니다. 이들은 새로운 세상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봄바람 순례단'은 우리가 만나고 보고 느꼈던 이야기를 나누었고 참여자들은 깊은 경청을 하였습니다. 서로가 만나 끈을 잇고 위로하는 평화로운 자리였습니다.
          
우리는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원합니다

22일 봄바람 순례단은 서울에서 다시 수원으로 갔습니다.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사무실에서 산재피해 유가족, 다산인권센터, 한국보건안전연구소 등 시민사회단체와 '건강하게 일할 권리'라는 주제로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수원지역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직업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님의 죽음 이후 반도체 산업의 직업병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는 '반올림' 활동이 시작된 곳입니다. 사무실 올라가는 계단에 산재 사망 노동자의 영정과 분향소가 차려져 있습니다.

우다야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경기도에 이주노동자가 가장 많으며 영세업체 이주노동자가 몰리면서 산업재해가 내국인 노동자보다 3배 이상 높다'고 하였습니다. '위험'이 '이주화'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청업체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에게 산재사고는 더 많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이주노동자의 상황이 더 위태롭습니다.
 
모두가 안전한 일터를 위해, 수원 시민사회단체 간담회
 모두가 안전한 일터를 위해, 수원 시민사회단체 간담회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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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태규님의 누나인 김도현님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3년전, 스물네살 고 김태규씨는 5층 높이의 문 열린 화물용 승강기에서 떨어져 숨졌습니다. 그는 일용직이라는 이유로 안전화·안전모·안전벨트를 지급받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경찰은 사건조사도 없이 태규의 개인과실인 것처럼 헛소문을 냈습니다. 핸드폰을 보다 그랬다고 했고, 술 먹고 실족사한 것이라고, 우울증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추락사한 동생을 부검했습니다. 부검 결과 알코올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경찰이 회사 말만 듣고 노동자의 책임으로 모는 사이 증거는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외면하였습니다. 회사는 증거를 은폐하려고 현장을 다 바꾸었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유족이 현장을 찾아가서 태규의 피묻은 안전모를 찾았습니다."(유가족 김도현씨의 증언)


부산 경동건설 아파트 현장에서 추락사한 고 정순규씨의 아들 정석채님이 증언을 하였습니다. 건설사 측은 사고 직후 폴리스 라인을 무너뜨리는 등 사고 현장을 훼손했습니다. 유가족의 마음은 '노동부가 해체되었으면 좋겠다'며 이 사회가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였습니다.

간담회를 마치고 봄바람 순례단은 수원역 광장 앞 '지금당장 기후정의' 시민문화제에 참여하였습니다. 순례단이 지나가는 곳마다 오래전 만난 지역의 길동무들이 찾아옵니다. 30일 다른 세상을 만드는 430 봄바람 문화제에 만날 것을 약속하며 다시 서울로 향했습니다.
  
지금당장 기후정의 수원시민문화제
 지금당장 기후정의 수원시민문화제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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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을 가두지 마라

23일 오전 성미산 마을회관에서 '외국인 보호소 폐지를 위한 물결' IW(International Waters) 31 회원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외국인 보호소는 '죄없는 자들의 감옥'입니다. 외국인 보호소에 구금된 사람들을 '움직이는 경계와 장소를 상실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자유로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감옥입니다. 간담회는 외국인보호소에서 인권침해와 고문을 당한 피해자들과 이들을 조력하는 활동가들이 다수 참여하였습니다.
 
해방과 해방은 연결되어 있다_ IW31+봄바람 간담회
 해방과 해방은 연결되어 있다_ IW31+봄바람 간담회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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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보호소는 주 2회, 30분의 야외 운동시간, 외부와의 연락 통제, 저항하는 이들에 대한 고문 등 인권침해가 빈번히 일어납니다. 보호소에서 무권리 상태로 4년이 넘게 구금된 경우도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25살의 젊은 청년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2년 동안 외국인 보호소에서 구금되었던 그는 청중 앞에서 한동안 눈물만 훔칠 뿐 아무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그를 대신해 그가 살아온 삶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가난한 나라에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일을 하며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여권을 잃어버리고 비자 연장을 못해 보호소로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는 대사관이 없어서 여권을 잃어버려도 다시 발급 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억압적인 보호소 생활 동안 받은 상처와 불안감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한참을 지난 후 그는 감정을 추스린 후 '와주어서 고맙습니다'라는 한마디의 말을 하였습니다. 또 다른 피해자가 말했습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 구금당하는 것은 부당하다. 권리 없이 노예취급을 당하는 나의 친구들이 아직 그곳에 있다. '자유와 정의'를 위해 함께 싸우자. 우리를 도와주지 말고 함께 싸워 주세요."

만일 내가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갇혀 있다면, 영문도 모른체 모독과 신체위협을 받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되묻고 싶습니다. 인권은 국가, 종교, 인종을 넘어서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가치입니다. 간담회를 마친 후 성미산 마을회관에서 '외국인 보호소를 폐지하라' 구호를 외치며 홍대역까지 거리행진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외침이 사람들 마음속에 닿기를 소망하면 걸었습니다.

봄바람 순례길은 거리행진을 마치고 '차별금지법 4월 제정 쟁취 집중문화제'에 참여하였습니다. 지금 국회 앞의 평등 텐트촌에는 미류, 이종걸 두분의 인권운동가들이 13일째(4월 23일)의 단식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혐오의 사회에서 고르게 존엄한 사회로! 우리 모두가 바라는 소망이며 연대의 이유입니다.
  
평등으로 승리하자_차별금지법 4월 제정 쟁취 집중문화제
 평등으로 승리하자_차별금지법 4월 제정 쟁취 집중문화제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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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미산, 우리의 성미산

봄바람 순례단은 다시 성미산 마을회관으로 돌아와 마을 공동체 주민과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성미산 마을의 시작된 유래와 주민들이 성미산을 지켜온 역사를 들었습니다. 파괴된 성미산을 잊지 않기 위해 걸어둔 사진액자를 보았습니다. 이들에게 성미산 공동체는 서로의 힘을 모아 숲을 지키고 차별 없는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온 시간이었습니다. 성미산 지키기에 참여한 한 학생이 말했습니다.

"땅에는 주인이 있어도 생명에는 주인이 없어요."

세상에 던진 한마디에 어른들을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생명은 그 존재 자체로 지켜져야 하며 소유의 대상도 착취의 대상도 아닙니다. 성미산 학교에 다니는 한 친구의 글로 성미산 공동체를 소개할까 합니다.
   
성미산마을공동체와 봄바람의 만남
 성미산마을공동체와 봄바람의 만남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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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성미산학교에 다니는 ○○○입니다.

학교에서 기후위기, 전쟁과 평화,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해 공부하고 활동했습니다. 암울한 현실과 미래를 마주하였고 더욱 공부할수록 우리는 이 시대와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질문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오롯이 감당하고 정의롭게 바꾸어 나가는 것은 혼자서는 벅차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우리에게 미래는 위험이고 현재는 위기입니다. 결론이 뻔한 시나리오를 앞에 두고 우리는 절망하고 냉소할 것인가, 헛된 희망을 기대할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용기를, 저항하고 연대하며 우정을 나누는 관계를 만드는 것에서 찾기로 했습니다.

지난 여름 선배들이 군산 평화박물관 오픈하는 날 축하하는 마음으로 찾아가 문정현 신부님의 서각이 담긴 작은 현판 하나를 얻어, 교실에 잘 보이는 곳에 두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꿈을 꿉시다"라는 글귀를 마음에 품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진실을 마주하며 정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지는 싸움을 알면서도 끝내 가만히 있지 않은 아름다운 사람들, 다른 세상을 만나기 위해 평화를 지키는 순례단 여러분과, 자유와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iw31 친구들 곁에서 다른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여러분들로부터 용기와 사랑을 배웠고 정의를 실현하는 싸움을 배웠고 존엄과 공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다시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박노해 시인은 "우리가 희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우리를 만들어낸다"라고 했습니다. 이말은 같은 의지를 가지고 희망을 품은 사람들이 서로 이끌려 '우리'가 된다는 말 같습니다.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우리의 의지와 희망이 우리를 이렇게 만날 수 있게 한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태그:#봄바람 순례단 서울기자회견, #성미산 마을회관, #안전한 일터, #외국인 보호소 를 철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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