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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중 대주교 등 대주교와 주교 6명, 사제 926명 등 총3,951명이 참여한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천주교 사제, 수도자 3,951인 선언' 기자회견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관으로 열렸다. 참가자들은 '숱한 희생과 헌신 끝에 이룩한 우리의 민주주의가 또다시 갈림길에 놓였다'며 검찰을 향해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참회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언론을 향해 '거짓뉴스로 시민들의 영혼이 하루하루 병들어 가고 있다'며 '진실을 격려하고 거짓을 꾸짖는 본래의 사명을 회복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사법부를 향해서는 '재판관 사찰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 구성원들은 뚜렷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며 '사법부의 권위와 존엄 회복'을 촉구했다.
 김희중 대주교 등 대주교와 주교 6명, 사제 926명 등 총3,951명이 참여한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천주교 사제, 수도자 3,951인 선언" 기자회견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관으로 열렸다. 참가자들은 "숱한 희생과 헌신 끝에 이룩한 우리의 민주주의가 또다시 갈림길에 놓였다"며 검찰을 향해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참회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언론을 향해 "거짓뉴스로 시민들의 영혼이 하루하루 병들어 가고 있다"며 "진실을 격려하고 거짓을 꾸짖는 본래의 사명을 회복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사법부를 향해서는 "재판관 사찰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 구성원들은 뚜렷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며 "사법부의 권위와 존엄 회복"을 촉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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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 오래된 하나의 가치관이 형성돼 있다. '긍정적 마인드'가 그것이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 많이 적용된다고 한다. 비판이나 반대하지 않고 순종하겠다는 뜻이 담긴다. 이와 달리 '부정적 마인드'는 탈락의 대상이 된다. 이같은 현상은 회사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을 평가할 때도 '긍정적'은 높게 쓰인다. 

과연 옳은 가치관일까.

진리의 길에 이르는 방식인 정-반-합의 변증법이론이 아니더라도 세상사의 이치가 반드시 긍정적인 것이어야만 할까.

우리 선대들은 유능한 청소년을 "품행이 방정(方正)하고"라고 평가하였다. 해방 후 초등학교 우수상장에도 쓰인 말이다. '방정'이란 "언행이 바르고 의젓하고 점잖음"(국어사전)이라 표기한다. 방정의 방(方)은 사각형의 모가 난다는 뜻으로 순종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가 나는 비판ㆍ합리형의 인물보다 둥근 순종형을 선호한다. 한마디로 부려먹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일제와 독재자들이 원했던 인간형이 뇌파 깊숙이 각인되어온 것이다.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장 프랑수아 칸은 생애를 두고 <인류역사를 진전시킨 신념과 용기의 외침 NO!>란 방대한 저술을 통해 테베에서 천안문까지 역사상의 주요한 반항ㆍ저항사건(인물)을 제시하였다. 노예제도에 대해 '노', 봉건제도에 대해 '노', 드레퓌스파의 고귀한 '노' 등 30여 가지 사건의 '노'에 관해 쓰면서 "그들의 용감한 외침이야말로 우리의 무사안일과 순응주의를 깨뜨리는 쇠망치다!"라고 덧붙인다.

우리 근현대사를 훑어보자.

일본제국주의 '노'(3ㆍ1혁명), 이승만독재 '노'(4월혁명), 박정희 유신독재 '노'(10ㆍ26거사), 전두환 살인마 '노'(광주민주화운동), 군부독재 '노'(6월항쟁), 이명박근혜 국정농단 '노'(촛불시위) 등 비판ㆍ반대의 역정이 민주화의 마그마 역할을 하였다.

물론 '긍정적' 인식의 세력이 만만치 않았다. 식민통치에 협력한 '친일파', 이승만 시대의 '만송족', 박정희 시대의 '유신파 지식인들', 전두환 시대의 '싹쓸이파'와 '우리가 남이가' 군상 등 사대ㆍ어용세력이 극성이었고, 그들이 당대 권력의 비호를 받으면서 발호하였다. '긍정적 가치관'이 토착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사물(사안)에 대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의 흑백선택이 아닌, 얼마만큼 합리적이냐가 기준이 돼야 한다. 인류가 중세 암흑기를 거쳐 근대에 이를 수 있었던 요인은 합리주의 가치관이다. 과학주의라고 해도 무방한 합리주의 정신은 개인의 평가에서도 기준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느닷없이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은, 지인들과의 사적 모임에서 근황을 묻길래 "함세웅신부님 평전을 준비 중"이라 했더니, 어느 교수 출신 인사 왈 "아, 그 반대로 일관하신 분 말이죠." 하는 것이다. 

진정한 반대자의 외침은 역류하는 역사의 물굽이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시대정신의 건강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프랑스 대혁명기 그레구아르 사제는 노예해방을 지지하고 제1집정관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가 되는 것을 반대하였다.

1756년 출생해 24세에 사제서품을 받고 혁명초기 3부회에 성직자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는 구체제의 3계급 즉 귀족ㆍ성직자ㆍ평민이 따로 모이는 것에 반대했다. 진정한 혁명은 계급타파에 있는데, 여전히 계급이 따로 모인다는 것은 혁명정신의 훼손이라며 최초로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국민의회 의원이 되어서는 왕정복구에 반대하며 공화제를 주장했다. 

그가 1831년 사망했을 때 파리의 주교는 종부성사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기독교식 매장도 금지시켰다.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사제였던 그레구아르는 기독교식으로 죽을 권리마저 금지 당했으나 프랑스혁명사 등 역사는 불의ㆍ부당함에 치열하게 저항한 거룩한 사제로 기록한다. 실제로 그는 미국의 링컨보다 훨씬 앞서 노예해방을 실천하고 프랑스 어느 지식인ㆍ성직자보다 가장 앞서 나폴레옹의 황제등극을 반대하였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인국 신부와 수녀, 신자들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개악 반대 비상시국기도회'에 참석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노동자의 현실을 걱정하며 기도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미래 세대의 역사관마저 왜곡시키려 하고 있다"며 "대통령과 정부는 오로지 유신의 부활과 권력 영구화만을 꿈꾸고 있다"고 규탄했다.
▲ 국정화·노동개악 반대 천주교 시국기도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인국 신부와 수녀, 신자들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개악 반대 비상시국기도회"에 참석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노동자의 현실을 걱정하며 기도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미래 세대의 역사관마저 왜곡시키려 하고 있다"며 "대통령과 정부는 오로지 유신의 부활과 권력 영구화만을 꿈꾸고 있다"고 규탄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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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 등이 주도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반유신ㆍ반5공 투쟁과 관련, 교회 안팎에서는 '정교분리'를 내세워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교계 지도자들의 독재 지지발언이나 조찬기도회, 심지어 5공 국가보위입법위원 참여 등은 외면한 채였다. 이같은 왜곡된 비판의 흐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정한 종교세력의 공공연한 정치활동은 침묵하면서 사제단의 '정의구현' 행사에는 반기독교적인 언사를 거침없이 토설한다. 

을사늑약과 국치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독립운동의 '단'이 결성되고 항일투쟁을 벌였다. 정당이나 위원회보다 '단'을 선호한 것은 소규모 조직으로 노출이 쉽지 않고 활동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의열단ㆍ다물단ㆍ중광단ㆍ광복단ㆍ흥사단ㆍ노인단ㆍ대한독립단ㆍ한인애국단ㆍ대한신민단ㆍ대한광복단ㆍ의민단ㆍ야단ㆍ혈성단ㆍ대한청년단ㆍ복황단ㆍ청년맹호단ㆍ급진단ㆍ학생광복단ㆍ 충열단ㆍ자위단ㆍ혈성단ㆍ공성단ㆍ벽창의용단ㆍ공명단…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단'이 조직되어 치열하게 국권회복 투쟁을 전개하였다.

함세웅 신부 등이 유신체제의 엄혹했던 불의의 시대에 정의구현사제단을 조직하여 민주회복에 나섰던 것은 앞서 소개한 독립운동 단체들의 정신을 잇는 역사행위였다. 본인들이 이것을 의도했던 아니던 상관없이 역사의 맥락은 쉼 없이 이어진다. 
 
함세웅 신부는 "박정희 유신독재, 한일협정 그리고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된 수구세력의 뿌리는 아직 청산하지 않은 친일의 역사에 있다"고 성토했다.
▲ 함세웅 신부는 "박정희 유신독재, 한일협정 그리고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된 수구세력의 뿌리는 아직 청산하지 않은 친일의 역사에 있다"고 성토했다. 함세웅 신부는 "박정희 유신독재, 한일협정 그리고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된 수구세력의 뿌리는 아직 청산하지 않은 친일의 역사에 있다"고 성토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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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의 생애는 시대의 징표를 찾고 실천하는 구도자의 삶이었다.

"시대의 징표를  깨닫는 것은 신앙인의 책무다. 시대와 무관한 삶이 불가능하듯 시대와 무관한 신앙인은 존재할 수 없다. 시대의 징표란 바로 세상 한 가운데서 하느님을 깨닫게 하는 하느님 자신의 표지이기도 하다."(<정의구현운동의 시대적 배경>)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빼내어 그 땅에서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출애 3:7-8)

시대는 바야흐로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문재인 정부가 속절없이 끝나고 '보수'를 대변하는 윤석열 정권이 0.73% 포인트의 표차이로 집권하게 되었다. 다시 역사의 전환기에서 지난 세월 '어둠속의 횃불'처럼 살아온 한 구도자의 치열했던 삶의 궤적을 밟으면서 동행자를 찾는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함세웅, #함세웅신부, #정의의구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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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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