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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분명 처음엔 웃고 있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동영상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내가 무엇을 놓친 것일까 하는 마음에 두 번을 다시 보았다. 연출된 상황인 건 아닐까? 내가 잘못 본 걸까? 그러나 크리스 록의 얼굴에 가격을 가한 뒤 무대 위에서 내려온 윌 스미스는 분노에 찬 얼굴로 일그러져 있었고, 그의 성난 목소리가 전 세계에 울려 퍼졌다.

나는 무대 위로 성큼성큼 올라가 크리스 록에게 주먹을 날리기 전, 크리스 록이 자신의 아내에 대한 '선 넘은 농담'을 듣고 웃음으로 감추고 있었을 그의 마음에 신경이 쓰였다. 처음에는 물론 그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회적 공인으로서의 자아가 우선이었을 것이다. 그의 웃음은 아마 그런 '사회적 자아'를 대변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전세계인이 보는 자리에서 놀림거리가 되어 얼굴이 굳어버린 그의 아내에 대한 감정,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상황에 대한 분노 등이 함께 지나가지 않았을까. 그 웃음 뒤에 감추어진 그의 마음은 매우 복잡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는 결국 감정이 시키는 대로 자신의 분노를 표현했다. 아주 강하고, 빠르게.

타인의 무례를 세련되게 대처한다는 것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코미디언 크리스 록이 윌 스미스의 아내를 거론하며 농담한 것에 분개, 윌 스미스가 무대에 올라 크리스 록을 폭행하는 초유의 방송 사고가 벌어졌다.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코미디언 크리스 록이 윌 스미스의 아내를 거론하며 농담한 것에 분개, 윌 스미스가 무대에 올라 크리스 록을 폭행하는 초유의 방송 사고가 벌어졌다.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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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렇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무대 위의 장면으로 강한 인상을 남겨 버렸다. 누군가는 윌 스미스의 행동이 '선을 넘어선 것'이라고 비난했고, 혹자는 크리스 록의 선 넘은 농담도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탈모증을 앓다 삭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제이다 핀킷의 외모를 농담의 소재로 삼은 것은 매우 부적절한 언사였으므로.

크리스 록의 농담은 분명 '조롱'의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그의 농담으로 많은 사람들이 깔깔대며 웃고 있을 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녀 한 사람만은 웃지 못했고,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 순간 윌 스미스가 한 행동을 정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와 내 가족의 모욕에 대한 그의 '감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폭력'은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의 무례한 언사와 행동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신사적이고 도덕적인 방법이 모든 상황에서 해결책이 되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이나 학교에서, 혹은 가정 내에서 묵과할 수만은 없는 일들을 겪는다.

'부당하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적절한 대처를 못해요.',
'억울한 일이었는데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히곤 해요.'
'부정적인 감정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법을 알고 싶어요.'


이 문제는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나 역시도 살아오면서 스스로에게 많이 던진 물음이다. 누군가 나를 공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사회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자아와 나약하거나 조롱당하는 사람이 되기 싫은 자아가 미묘하게 부딪친다.

얼마 전, 나는 좋은 의도로 한 어떤 일이 누군가의 시선에는 곱지 않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었고, 업무적인 부분에 있어 깎아내려지는 상황이었다. 그때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변호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조용히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아 오랫동안 고민을 했다.

결국 나는 가만히 있는 쪽을 선택했다. 진실은 결국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에 기대기로 했다. 싸우거나 변명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부당한 소문과 비난에 똑같은 크기의 소리를 내면, 그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추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마음도 함께 있었다.

나의 선택은 올바른 것이었을까? 아주 안전하고 소극적인 대처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나는 나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했고, 내 감정은 위로받지 못했다. 나는 그저 피가 나는 상처를 거즈로 덮어만 두고 곪을지도 모르지만 새 살이 나기를 바라는 확률에 기대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방법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내가 겪는 억울함에 대응하다 더 큰 상처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려웠다.

아내를 향한 조롱에 주먹질로 응대를 한 윌 스미스도, 명백하게 부당한 비난을 시간의 흐름에만 맡긴 나도 모두 좋은 대처라고 하기는 어렵다.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 세련되고 힘 있는 대처를 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문정 작가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방법>이라는 책에는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자꾸 참으면 내가 무기력해진다. 무례한 사람을 만난다면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나만의 대처법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피하지도 않고, 감정적으로 정색하지도 않고 무심하게 대응할 수 있는 나만의 문장을 갖고 있다는 작가의 조언은 꽤 유용하게 들린다. 책에 제시된 작가가 가진 두 개의 문장은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와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다.

키우고 싶은 내면의 힘
 
누군가 나를 공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사회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자아와 나약하거나 조롱당하는 사람이 되기 싫은 자아가 미묘하게 부딪친다.
 누군가 나를 공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사회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자아와 나약하거나 조롱당하는 사람이 되기 싫은 자아가 미묘하게 부딪친다.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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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윌 스미스의 대처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것은, 그가 타인의 농담을(물론 매우 부적절한 언사였지만) '공격'으로 인식했고 그의 감정이 통째로 흔들렸음을 그대로 여과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비난이나 조롱에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 더 단단하고 세련된 표현을 사용했다면 그가 가진 마음의 힘을 근사하게 보여주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윌스미스는 그날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가 분노를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았더라면 그날은 그에게 근사한 밤이 되었을 것이다. 주먹을 날리는 대신 수상 소감에서 아내의 질병을 알리고, 여성으로서 약자로서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이 정당하지 못함에 대한 표현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더불어 자가면역질환 및 이겨내기 힘든 질병의 터널을 건너고 있을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남겼다면 '언어 폭력'을 휘두른 크리스 락에게도 제대로 된 일침을 남기는 일이 되지 않았을까? 물론 아카데미상을 지켜보는 전세계인에게도 인상적인 순간으로 남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공개적인 사과를 피할 수 없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후 며칠 뒤, 윌 스미스는 "나는 내가 한 행동이 창피하다. 사랑과 친절로 가득 찬 세계에서 폭력이 설 자리는 없다"는 글을 올렸다.

타인의 약점을 놀림거리로 삼는 사람이나, 누군가를 깎아내리고 비난하는 데 집중하는 사람들은 어떤 관점에서는 비겁한 약자일 뿐이다. 그 비겁함에 내 감정의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 그 순간 우리가 스스로에게 해줄 말은 이것이다.

'난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아.'

조금 힘 있고 당당한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해, 살면서 만나는 어이없는 상황이나 부당한 일들에 대비하기 위해 키우고 싶은 내면의 힘이 있다면, '위트'와 '품위'이다.

심리학자 알레나 프리키드코(Alena Prikhidko)는 모욕에 응대하는 방법에 대해 '서프라이즈 효과'를 제안한다. 예를 들면 누군가 자신을 모욕하는 언사를 했을 때 재채기를 크게 하면서 "아, 실례해요. 제가 무례한 행동에 대해 알레르기가 있거든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의 일부분에 대한 비난을 내 전부를 깎아내리는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고, 어깨 한 번 으쓱하며 힘 있는 유머로 품격 있게 응수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https://brunch.co.kr/@writeurmind


태그:#아카데미시상식, #윌스미스, #크리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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