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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세월호 기억의 벽
 팽목항 세월호 기억의 벽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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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순례길을 떠난 지 벌써 보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3월 30일 세월호의 아픔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갑니다. 고 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 선생님과 멀리 청주에서 길동무들이 먼저 와 있습니다. 도착해서 세월호 유가족 고영환 아버님을 만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지금까지 컨테이너 가족 숙소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는 고영환님은 '아이들을 기다리던 이 팽목항에 세월호의 추모공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떠날 수가 없다'고 합니다. 

팽목항 세월호 추모공간은 쓸쓸합니다. 낡아버린 세월호 기억관과 회의실, 식당, 성당 컨테이너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고영환 아버님을 따라 방파제 옆, 기억의 벽을 따라 빨간등대와 하늘나라 우체통까지 가는 길은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저 사나운 바다에서 사라져 간 304명의 절규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개발의 광풍은 팽목항 세월호 추모공간마저 비껴가지 않습니다. 팽목항은 국제항 공사와 팽목-제주 쾌속선 취항을 기다리며 공사판이 되었습니다. 진도군은 추모공간을 비워달라며 압력을 행사하고 불법 건축물을 치우라며 이행강제금 부과를 통지하였습니다.

팽목항을 상징하는 빨간등대에 혐오의 말을 써놓고 노란리본 조형물과 영정 사진이 훼손당하기도 합니다. 기억의 공간조차 협상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혐오의 말을 쏟아내는 세상의 잔인함에 절망하게 됩니다.
  
팽목항 세월호 추모관
 팽목항 세월호 추모관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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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재 삼거리에 있는 '세월호 기억의 숲'을 찾아갔습니다. '기억의 숲'에는 은행나무 304그루가 있습니다. 하늘의 별이 된 304명이 희생자들이 노란 은행잎과 나무로 되살아나 우리와 함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기억의 숲에 걸린 노란리본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기억의 벽 앞에서 한동안 서 있었습니다. 자식을 잃고 가장 아픈 곳에 있는 유가족이 떠나는 순례단과 길동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든 진도에 방문해 주십시오. 늦게 왔다고 미안한 마음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잊지 않고 와 주시는 것이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여행하러 오셨다가 잠시 팽목항에도 들러 주시면 좋겠습니다."

팽목항을 뒤로하고 목포 신항의 세월호를 찾아갔습니다. 정성욱 4·16 가족협의회 인양분과장의 인솔에 따라 세월호를 둘러보았습니다. 배 곳곳이 갈라지고 찢어졌으며 처참한 몰골이었습니다. 배에서 나온 것은 갯벌의 흙 하나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정성욱님은100톤 정도의 충격이 가해져 배에 급격한 변침이 생겼고 낡은 배는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아 선체가 급격히 침몰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그 원인을 알기 어렵습니다.

배의 충격이 어디에서 왔는지, 첫날 항적과 공식 발표된 항적은 왜 다른지. CCTV는 왜 없어지거나 덮어 씌워졌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여전히 침몰의 원인은 명백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조사활동도 올해 6월이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세월호의 진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목포신항 세월호, 배앞에 길게 덮혀진 검은 천 안에는 아이들의 유해가 발견된 갯벌의 흙이 담겨있다.
 목포신항 세월호, 배앞에 길게 덮혀진 검은 천 안에는 아이들의 유해가 발견된 갯벌의 흙이 담겨있다.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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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16일에 그대로 멈춰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의 모순이 응축된 사회적 타살입니다. 그러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성역 없는 진상규명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검찰은 피의자들을 무혐의로 종결하고 사법부는 해경 지휘부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세월호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광주 군사공항 무안이전을 반대합니다
  
광주전투비행장 무안군 이전 반대
 광주전투비행장 무안군 이전 반대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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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를 떠나 무안군청으로 갔습니다. 무안군민들은 광주전투비행장 무안 이전 반대 대책위를 구성하고 그동안 군민집회를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국토부는 광주군공항 이전을 무안공항과 연계해 통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무안군에 군 공항이 이전하면 전투기 소음으로 축산, 낙농업, 농업인에게 큰 피해와 군민들의 생존권이 침해당합니다. 무안군의 각 읍면 대책위, 이장단, 기관·사회단체 주민들은 평화로운 마을에 군비행장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봄바람 순례단과 주민 간담회 자리에는 올해 92세가 되신 배종렬 선생님이 참석하셨습니다. 배종렬 선생님은 평생 농민운동과 군사주의를 반대하고 평화 운동에 참여하신 분이며 문정현 신부님과 오랜 동지입니다. 봄바람 순례단은 간담회에서 서해안을 중심으로 미군주도의 군사기지가 확장되고 군공항의 폐해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리산을 '있는 그대로'

봄바람 순례길 3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봄이 피어나는 꽃길 따라 지리산 하동군청으로 달려갔습니다. 하동군청 입구 천막 농성장 지역주민들이 순례단을 환영합니다. 지리산 근처의 5개 시군의 주민들이 '지리산 산악열차반대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저항을 시작하였습니다.

'알프스하동 프로젝트'는 공공 150억 원·민자 1500억 원 등 1650억 원을 들여 화개·악양·청암면 근처에 무가선 열차 12㎞, 모노레일 2.2㎞, 케이블카 3.6㎞, 호텔 휴양시설 등을 설치하는 사업이라고 합니다. 알프스와 하동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언어조합을 만들어 돈을 벌겠다는 생태 파괴자들의 상상력이 놀랍기도 합니다,

지난 2년간 지리산 주민 대책위의 투쟁으로 대기업 토건업체인 대림은 최근 사업포기를 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동군은 새로운 사업시행자를 공모하여 추진하려고 합니다. 대책위 주민들은 지금 군청 앞에서 14일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대책위 활동가들의 생태적 삶을 들으려니 우리들의 소비적 삶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대책위 분들은 지리산에서 누구의 간섭도 없이 다른 세상을 꿈꾸며 단순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교통수단을 사용하는 것 조차 고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종이 한 장을 안 쓰면 나무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실천하는 맑은 영혼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봄바람 순례단은 군청 앞 노상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이야기 마당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이야기 마당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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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산악열차 소식을 듣고 10여 일간 고민을 했어요. 반대 운동을 하면 현수막도 걸어야 하고 사람들도 모아야 하고 서울도 가야 할텐데. 이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는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게 저 혼자 고민할 일이 아니고 지역 공동체와 같이 이야기를 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 같이 의논했고 대책위를 만들어서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반대운동을 알리려면 현수막을 걸어야 하잖아요. 한번쓰고 버릴 수는 없어서 재활용 해서 두번씩 쓰고 있어요. 피켓도 딱 한세트만 만들어서 쓰고요."

"하동에서 나고 자랐는데 서울 가서 살아야 성공 하는 줄 알고 서울에 가 있었어요. 그러다가 이건 아닌 것 같아서 다시 하동에 내려 왔는데. 산악열차를 만든다고 해서 싸우고 있어요. 제가 하동에서 몇대에 걸쳐 산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나고 자랐고 지금은 군민 이거든요. 근데 군민 아닌 듯 대하고 우리 말을 듣지도 않는 거죠"


인간의 탐욕으로 생태계가 무너지면서 등장한 코로나로, 당장 기후위기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성찰이 없는 이 사회가 참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택시노동자에게 연대의 힘이 필요합니다
 
 
봄바람 순례길 4월 2일, 오늘은 세종시 국토부 앞, 301일차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명재형씨를 만나러 갔습니다. 고공농성 300일이 넘어가면서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주40시간 택시 월급제 시행을 위해 전국에서 희망버스가 모여 들었습니다. 멀리 한진중공업의 해고자 였던 김진숙 동지와 태안화력 발전소에서 산재로 세상을 떠난  고 김용균군의 어머니 김미숙님도 오셨습니다.

국토부 앞에는 철근으로 묶어 세워 올라간 위태로운 망루 위에 한 노동자가 아래를 내려 보고 손을 흔듭니다. 노동자들은 망루위의 농성장을 하늘 감옥 이라고 부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망루에 올라 스스로 감옥에 갇혀야 하는 것이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입니다.
 
명재형 택시노동자 고공농성
 명재형 택시노동자 고공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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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택시노동자들과 희망뚜벅이 행진단은 택시발전법 전국시행을 촉구하며 세종시 농성장에서 청와대까지 400리 길을 걸었습니다.

이미 2019년, 사납금 폐지와 월급제를 요구하며, 510일 동안 고공농성을 한 택시노동자의 힘으로 택시발전법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시행일을 정해서 공포하기만 하면 되는데 여전히 미뤄지고 있습니다.

택시사업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주 30시간 정도만 일하는 것으로 하여 월 80만 원 정도의 열악한 임금을 지급합니다. 택시 노동자들은 코로나로 승객이 감소라고 실업신규 신청자 수도 배로 늘었고 생계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한 시민이 연단에 올라 말했습니다.

"택시노동자에게 누가 인간대접을 해주었는가?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택시 노동자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나는 무임승차를 하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 서있습니다. 주 40시간을 당장 이행하는 것과 명재형 동지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이 우리의 목적지입니다. 승리를 믿습니다."

태그:#세월호 8주기, #기억의 숲, #지리산 있는 그대로, #택시발전법 즉각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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