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숭의동성당은 더 높고, 크고, 돋보이는 건물이 아닌 성당 주변의 빌라, 아파트 등과 조화를 이루고 거리 풍경에 활기를 줄 수 있는 건물을 디자인했다. 모두가 마음의 위안을 얻고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사진은 성당내부 대성전 제단.
 숭의동성당은 더 높고, 크고, 돋보이는 건물이 아닌 성당 주변의 빌라, 아파트 등과 조화를 이루고 거리 풍경에 활기를 줄 수 있는 건물을 디자인했다. 모두가 마음의 위안을 얻고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사진은 성당내부 대성전 제단.
ⓒ 아이-뷰

관련사진보기

 
인천 미추홀구 숭의로터리로 이어지는 대로변은 혼잡한 차량과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하지만 유비스병원에서 불과 몇 걸음 걸어 동네 안쪽으로 들어서니 사방이 고요하다. 이곳 숭의2동은 산업화로 인천이 확장되던 1960년대 후반 서민을 위한 주거지로 개발된 곳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단독주택과 작은 상가들이 헐리고 그 자리에 빌라와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변화의 한복판에 새로 지어진 숭의동성당이 대문도 담장도 없이 동네를 향해 활짝 열린 채 사뿐히 앉아 있다. 숭의동성당은 인천에 지어진 9번째 본당으로 1969년 설립됐다. 숭의동은 1968년 새로 신설된 '남구'에 편입됐으니 숭의동성당은 남구, 현재 미추홀구와 역사를 함께 하는 셈이다.

50년 세월 뒤로하고 새로운 보금자리 마련하다

1971년 완공된 옛 숭의동성당은 단독주택이 빼곡한 동네와 잘 어울리는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이었다. 이웃과 함께하는 지역 공동체를 추구하는 천주교 교리에 따라 본당과 넓은 마당에서 종교 활동, 교우 친목 활동, 동네 주민과 함께 하는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렸다. 

5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성당 마당에 심은 느티나무와 감나무는 깊이 뿌리를 내리며 커다란 그늘을 드리웠고 교우들은 나이를 먹고 세대가 바뀌었다. 굳건할 것만 같던 성당 건물도 더는 세월의 풍화를 견디기 어려워졌다.

구도심 재개발로 숭의동 일대는 단독주택지에서 공동주택 밀집 지역으로 바뀌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숭의동성당은 관할구역 내 인구가 늘면서 더 넓은 공간과 부속 시설이 필요해졌고, 2016년부터 두 차례에 걸친 설문 조사를 통해 기존 성당을 부수고 새로운 성전을 짓기로 의견을 모았다. 
 
옛 성전과 작별하는 교우들(숭의동성당 사진제공)
 옛 성전과 작별하는 교우들(숭의동성당 사진제공)
ⓒ 아이-뷰

관련사진보기

 
교우들은 새로 지을 공간을 맘껏 상상하고 함께 이야기했다. 교우들을 대표해 위촉된 14명의 건축위원은 건물이 완성될 때까지 115회의 공식적인 모임을 열며 의견을 조율하고 계획을 구체화해 나갔다. 교우들이 원하는 공간과 기능은 다양했지만,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열린 교회를 짓고 옛 성당의 흔적과 기억을 남기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 같았다.

"교우님들이 희망하는 공간을 다 넣으려면 건물이 10층은 돼야겠더라고요. 공사비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가고요." 건축위원을 맡았던 지연실 소사세실리아 청소년분과장은 그때를 회상하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요셉 신부님께서 잘 이끌어 주셨죠. 정말 애 많이 쓰셨어요." 주임신부인 김영욱 요셉 신부는 어린 시절 숭의동성당에서 복사(服事)를 하며 사제의 꿈을 키우던 소년이었다. 45년 뒤 주임신부가 되어 다시 돌아왔고, 성당을 재건축하는 소임을 맡았다.

김영욱 신부는 열린 지역 공동체를 지향하는 가톨릭 정신과 교우들의 염원을 담은 성당을 짓기 위해 이일훈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이일훈 건축가는 2017년부터 최종 설계를 마칠 때까지 1년 반 동안 건축도면을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교우들의 사정을 살피고 건축의 의미와 과정을 설명하고 시공자들과도 소통하며 건축작업에 진심을 담았다. 

대문도 담장도 없는 열린 성당

이일훈 건축가는 집 짓는 기술이나 방법보다 어떻게 사는가를 먼저 묻는 건축가였다. "어떤 집을 꿈꾸고 계신가요?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나요?" 이런 물음과 함께 인간이 자연과 더 많이 만나면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채나눔' 건축을 추구했다. '불편하게 살기', '밖에서 살기', '늘려 살기'로 이웃과 소통하며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삶, 지속가능한 건강한 생활을 실천했다.

이일훈 건축가는 단순한 형태, 소박한 재료, 간결한 표현, 건축 내외부의 일치를 숭의동성당에 담았다. 더 높고, 크고, 돋보이는 건물이 아닌 성당 주변의 빌라, 아파트 등과 조화를 이루고 거리 풍경에 활기를 줄 수 있는 건물을 디자인했다. 모두가 마음의 위안을 얻고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숭의동성당이 대문도 담장도 없이 동네를 향해 활짝 열린 채 사뿐히 앉아 있다. 숭의동성당은 인천에 지어진 9번째 본당으로 1969년 설립돼 미추홀구와 역사를 함께 하는 셈이다.
 숭의동성당이 대문도 담장도 없이 동네를 향해 활짝 열린 채 사뿐히 앉아 있다. 숭의동성당은 인천에 지어진 9번째 본당으로 1969년 설립돼 미추홀구와 역사를 함께 하는 셈이다.
ⓒ 아이-뷰

관련사진보기


활짝 열린 외부공간은 누구나 쉬어갈 수 있도록 여러 개의 벤치를 놓았고, 지하주차장은 동네 이웃들과 공유한다. 친교의 공간인 1층 홀을 지나 2층 대성전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공간을 은은한 빛이 가득 채우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빛이 신비롭게 물든다. 소리의 향연까지 더해지면 이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과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옥상에 마련된 하늘정원 바닥에는 커다랗고 동그란 '미로 묵상길'이 그려져 있다. 성경 구절이 새겨진 동판이 놓인 곳까지는 서너 걸음이면 족하지만, 미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목적지에 다다르니 우리의 인생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음이 두 발에 새겨진다.

"숭의동성당은 요셉 신부님과 교우들의 오랜 염원이 담긴 예술작품이죠." 올해 1월 숭의동성당에 새로 부임한 임현택 안드레아 주임신부는 이웃을 배려한 공간 구성과 건물 곳곳에 새겨진 50년 발자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수직적으로 급성장한 우리 사회는 과거와 단절하는 방식으로 개발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숭의동성당은 역사와 신도들의 숨결을 구석구석 담아냈지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겁니다."

옛 성당의 외벽을 이루던 수직의 '붉은 벽돌'을 가장 낮은 마당 바닥에 수평으로 깔고, 옛 출입구 바닥에 새겨져 있던 '물고기 문양의 도끼다시판'을 절단해 마당 성모상 앞에 설치했다. 대문에 걸려있던 황동 현판, 성전 제대 십자가, 장의자, 성모상, 조각상 등도 보수하여 새로 지은 성당에 알맞게 배치했다. 마당에 있었던 조경석도 모두 새 화단에 다시 갖다 놓았다.​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공간... '인천시민 건축상' 등 수상
 
잘린 느티나무로 만든 성모상
 잘린 느티나무로 만든 성모상
ⓒ 아이-뷰

관련사진보기

 
숭의동성당 건축위원을 맡았던 지연실 소사세실리아 청소년분과장
 숭의동성당 건축위원을 맡았던 지연실 소사세실리아 청소년분과장
ⓒ 아이-뷰

관련사진보기

 
옛 성당 마당에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던 느티나무와 매년 가을 탐스럽게 감이 열리던 감나무는 아쉽게도 살리지 못했다. 대신 두 나무를 기억하는 뜻으로 같은 자리에 새 느티나무와 감나무를 심었다. 잘린 느티나무로 성모상, 부활 촛대, 십자가를 제작했다. 거대한 뿌리와 줄기로 만든 느티나무 성모상은 사람들에게 마당 깊었던 옛 추억의 향기를 전해준다.​

새로 지어진 성당 2층 복도에 마련된 '50년 역사관'에서는 지난 시간이 배인 물건과 사진들을 연대순으로 전시해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살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했다.

숭의동성당은 주변 지역과 조화를 이루고, 지역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으로 공유되며, 친환경적이고 세밀한 디테일과 장소의 기억을 이어나간 점 등이 높이 평가돼 '2021 인천시 건축상 대상'과 '인천시민 건축상'을 동시에 받았다. 

소사세실리아 청소년분과장은 오랫동안 성당을 지켜온 어르신들의 의지로 새 성당을 지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어르신들이 젊었을 때 성당에서 받았던 혜택을 새로운 세대들도 누릴 수 있도록 새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어 하셨어요."

교우들의 헌금과 바자회·플리마켓 등으로 모은 기금으로 만들어진 새 성당에는 청소년들이 맘껏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밴드실과 다양한 소모임 활동을 할 수 있는 여러 개의 모임방이 마련돼 있다. 청소년 미사가 있는 날이면 아이들은 옥상 하늘정원으로 올라가 미로 묵상길 위에서 음악을 틀고, 춤을 추고, 함께 게임을 한다. 
 
만석동 기찻길 옆 공부방
 만석동 기찻길 옆 공부방
ⓒ 아이-뷰

관련사진보기

 
'사회성 짙은' 이일훈 건축가의 대표작 중 하나가 인천 구도심에 있다. 만석동에 있는 '기찻길 옆 공부방', 이곳에서 마을의 아이들은 함께 공부하고, 놀고, 이웃 어른들과 자연스레 만나면서 성장한다. 적은 예산으로 소박하게 지어진, 공간적으로 풍성한 3층 규모의 이 건축물은 '자신을 낮추고 주변과 이웃을 축복하며' 마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이일훈 건축가는 지난해 4월 숭의동성당 축성식을 마치고 3개월 후 폐암 투병 끝에 6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저서 <사물과 사람 사이>에 "건축의 의미란 만드는 것에서 싹이 트지만 잘 쓰일 때 꽃이 피며 튼실해진다"라고 썼다.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고, 지나온 세월이 존경받으며, 누구나 마당에서 편히 쉴 수 있고, 교우들과 이웃이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으로 가득한 성당의 모습에 건축가는 마냥 행복할 것 같다.

■ 천주교 인천교구 숭의동성당
○ 주소 : 인천 미추홀구 인주대로45번길 17
○ 전화 : 032-888-2511
○ 홈페이지 : cafe.daum.net/sunguidong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태그:#인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는 시민의 알권리와 다양한 정보제공을 위해 발행하며 시민을 대표해서 객원·시민기자들이 콘텐츠 발굴과 신문제작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작된 신문은 뉴스레터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