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안철수 국민의당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를 연일 조롱하면서,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사이 감정의 골이 점차 깊어지고 있다. 국민의당은 물론, 국민의힘 내부에서 보수 야권 후보 단일화를 바라는 이들을 중심으로 비판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는 신경쓰지 않는 모양새이다.
앞서 안철수 후보는 지난 22일 부산 유세에서 단일화 관련 질문에 "경선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윤석열 후보가) 겁이 나서 도망쳤다"라며 "(윤 후보가) 포기해 주면 내가 정권교체를 하겠다"라고 답했다. 또한 지난 TV토론에서 안 후보가 윤 후보에 공세를 편 이유를 "너무 몰라서"라고 주장했다(관련 기사:
"TV토론 잘했다" "왜 윤석열을 까노" 안철수 부산유세 반응). 이 대표는 해당 발언이 보도된 기사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댓글로 'ㄹㅇㅋㅋ' 네 글자만 치시라"라고 꼬집었다.
'ㄹㅇㅋㅋ'는 '리얼(Real)'과 '크크'하는 웃음소리의 초성을 딴 합성어로, 인터넷에서 인정이나 동의의 뜻을 밝히는 표현으로 처음 쓰이기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반어적으로 상대의 말을 비꼬는 용도로 더 많이 활용되고 있다. 상대편을 인정해주는 듯하지만, 실은 논쟁할 가치가 없으니 무시하겠다는 맥락이다. 국민의당에서는 윤영희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차라리 '조롱의힘'으로 개명하길 추천한다"라며 "이 대표의 선전이 거듭될 수록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낙선은 예견된 일이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준석 대표는 23일 오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최근 이를 포함한 일련의 SNS 활동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 대표는 안 후보의 부산 발언이 "우리 후보에 대한 막말도 쏟아냈다"라며 "내가 그런 말하면 막말이라고 한다, 국민의당에서"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당 기준으로 심각한 막말이었다"라고 반복하며, 국민의당에서 먼저 선을 넘는 발언을 한 것을 이유로 자신의 SNS 표현을 정당화했다.
[이준석] "안철수, 너무 패턴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분"
이 대표는 "나는 그분(안철수 후보)의 오락가락하는 행보에 대해서 항상 비판하고 있다"라며 "많은 분들이 '이준석이 처음에 안철수한테 왜 저런지 몰랐다. 그런데 최근에 행동하는 것 보니까 알겠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안철수 후보를 향한 자신의 언사가 많은 이들로부터 호응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뉘앙스이다.
이준석 대표는 "(지난)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때부터 '안잘알(안철수를 잘 안다)'이라는 용어가 뜨기 시작했다"라며 "안철수 대표와 같이 일했던 김철근 현 우리당 정무실장, 김경진 전 의원,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이 아주 비슷한 평가를 하고 있다. 결국 안철수 대표의 의사소통 경로, 또는 의사결정 구조가 굉장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 후보가 단일화 협상 결렬을 선언하며 그 탓을 윤 후보에게 돌린 데 대해 반박에 나선 것이다.
그는 지난 재보궐선거 당시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사이의 통합 논의가 진행 도중 무산된 것, 과거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안철수 후보 사이의 정치 혁신 관련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것 등을 예시로 들었다. "이 분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협상 과정에서 의견을 좁혀나가는 분이 아니다"라는 주장이었다.
협상 과정이 난항을 겪는 게 "너무 패턴화돼 있다"라며 "합당 협상 때도 그렇고, 그전에도 그렇고, 바른미래당 때도 그렇고, 그분(안철수 후보)이 참여하면 항상 (협상 내용이 도중에) 달라진다"라고 강한 불신을 드러낸 것.
특히 당내에서 이 대표의 최근 언행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데 대해서도 "'이준석 책임론'을 지우려고 하는 분들은, 나중에 단일화가 안 돼서 대선 승리를 이끌었을 때 이준석 역할론 또는 이준석 올려치기를 해줄 건가?"라며 "아니다. 그냥 시즌별로 이준석 까려고 하는 분들이 있다. 거간꾼부터 여러 분들이 있기 때문에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라고 일축했다.
"국민의당 관계자, 언행 조심해야... '안철수 접게 만들겠다' 제안해"
또한 이 대표는 "국민의당 관계자"를 향해 "언행을 조심하셔야 된다"라고 경고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들이 안철수 대표 의사와 관계없이 우리 측 관계자에게 '안철수 대표를 (후보직에서) 접게 만들겠다'라는 등의 제안을 해온 것도 있다"라며 "조심하셔서 발언하셔야 된다"라고 경고했다.
이어 "지금 와서 완전 안면몰수하고 안철수 대표가 저렇게 나오니까 당황한 듯 우리 쪽에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는 분들"을 향해 "<삼국지>에 보면 미방과 부사인 범강과 장달 이런 분들이 있다"라고 언급했다. <삼국지> 내에서 관우와 장비를 배신한 인물들에 국민의당 관계자들을 비유한 것. 그는 "상당히 안철수 대표 쪽에서 당황할 수 있겠지만 발언을 자제했으면 좋겠다"라며 "지금 굉장히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 중 하나다. 조용히 하시길 기대하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지금 우리가 안철수 대표와 단일화해야 된다고 거론한 사람들 주장은 매한가지이다. 뭐냐하면 '안 하면 질지도 모른다' 이런 것"이라며 "이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사람들이 안철수 대표 측 협박에 놀아나는 것인데, 그게 협박이 우리가 하고 있느냐?"라고도 지적했다. 국민의당 측이 오히려 국민의힘을 협박하고 있다는 반박이다.
그는 "지금 우리는 '단일화 무리하지 않게 하겠다'라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 쪽에 우리가 (먼저 제안)한 거 있느냐?"라며 "본인이 (단일화) 안 한다고 그랬다가, 본인이 완주한다고 선언했다가, 갑자기 단일화하자고 그랬다가, 또 지금 안 한다 그랬다가, 계속 짧은 선거운동기간 동안 입장이 서너 번씩 바뀐 건 안철수 대표"라고도 강조했다.
[권은희] "이준석, 정치인으로 할 수 없는 막말... 국민께 사과 필요"
같은 프로그램에서 전화 인터뷰에 나선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이준석 대표가 걸고 넘어진 안철수 후보의 표현에 대해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섰다.
권 원내대표는 "윤석열 후보가 일단 안철수 후보 제안에 대해서 어떤 답도 하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회피하고 있는 모습"이라며 "그런데도 또 한편으로 국민의힘의 정치인들이 익명발로 마치 그 이면에 어떤 부분들이 진행되고 있는 듯한 연막을 자꾸 피워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후보가 회피하고 있는 모습과 함께 그런 역할들을 서로 맡아서 뭔가 시간끌기용으로 질질 끌끄는 모습들을 (안철수 후보가 '겁나서 도망쳤다'라는)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TV토론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도 "TV토론을 보시고 국민들이 평가하실 부분"이라며 "3차 TV토론 이후 사실 현장의 유세분위기도 확 달라질 만큼 후보 간 차별성이 아주 극명하게 드러났다. 정책에 있어서 준비된 안철수 후보와 전혀 준비되지 못한 후보들 간 차별성이 한눈에 드러난 그런 토론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역시나 안 후보의 발언이 '막말'이라 보기 어렵다고 밝힌 셈이다.
오히려 권 원내대표는 이준석 대표의 '고인 유지' 발언을 재차 꺼내들었다(관련 기사:
"경악" "고인모독" "패륜"... 이준석에게 쏟아지는 비난). 그는 "이준석 대표의 고인 유지 발언은 사실 정치인으로서 국민 앞에서 할 수 없는 그런 막말이고 혐오의 발언"이라며 "국민들께 사과를 하는 게 당연히 마땅한 일이다. 국민들에 대한 사과는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만 단일화와 관련해서 최종적으로 그리고 가장 큰 책임은 윤석열 후보가 본인이 지는 것이고 윤석열 후보의 묵묵부답의 시간회피 태도가 가장 큰 책임이라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