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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지학순 주교 석방'을 외치며 가두시위에 나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원주 시민들
 1974년 "지학순 주교 석방"을 외치며 가두시위에 나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원주 시민들
ⓒ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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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단은 2월 6일 오후 7시부터 명동성당에서 4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권회복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제4시국선언'에 이어 〈순교를 각오해야 할 때다〉라는 성명서를 채택하여 결의를 다졌다.

7일에는 개신교 목사 55명과 함께 "국민투표 실시는 민주회복ㆍ인권회복을 원하는 국민의 여망을 무시한 처사"라는 내용과 유신헌법 철폐 등을 요구하는 5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민주화의 성지가 되고 있는 명동성당을 비롯 서울대교구 주교관에는 공공연히 정보원들이 드나들고, 각종 미사와 집회에 정보기관원이 들어와 행사를 방해하였다. 성명서에서 밝힌 내용이다.     

우리의 서울대교구 주교관은 정보원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이 기도회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도 상당한 숫자가 정보기관원일 것입니다. 서울시 경찰국은 기도회에 대한 방해와 탄압을 지시하여 신앙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정면으로 본격적으로 탄압하려 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참여하는 사제들은 항상 정보기관원의 감시 하에 놓여 있고 일거수일투족 모두가 다 정보기관원에 의하여 기록되고 있습니다. 전화는 도청되고 행동은 미행당하며 걸핏하면 협박과 공갈을 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위장 교우를 투입하여 행동을 감시하는가 하면 사제들의 옛날 학적부까지 뒤져 사제들에 대한 개인적인 사생활, 인적사항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여기 명동성당 주변에는 보이게 보이지 않게 수십 명의 정보원이 항상 들끓고 있습니다. (주석 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직접 가르치는 지학순 주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직접 가르치는 지학순 주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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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는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로 얼룩진 순교사였다. 사제단은 이같은 순혈의 터전에서 정의를 위해 나섰다. 정권이나 이권을 바라고 결사한 것이 아니라 이 땅을 정의로운 사회로 만들고자 불의한 세력에 맞섰다.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에 저항한 것이다. 사제단의 성명이다.

국민투표라는 것을 봅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작년 한 해 동안 긴급조치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검거선풍이 있었습니다. 긴급조치 1호거나 4호거나 모두 다 개헌을 주장한다 해서 일어났던 검거선풍이었습니다. 우리의 지학순 주교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용기 있게 개헌을 주장한 사람이면 거의 모두가 감옥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형,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사형이나 무기 등 구체적인 횃수, 즉 몇 년이다 하는 것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은 일단 제쳐놓고 나머지 유기징역을 받은 사람들이 선고받은 햇수를 전부 합하면 1천8백여 년이 넘는다고 합니다.

개헌운동을 했다고 해서 1천8백여 년이 선고된 셈입니다. 그것도 사형이나 무기징역 등 최고로 중형을 선고받은 것은 제쳐놓고 말입니다. 이 개헌운동을 했던 민주인사들은 그냥 다 감옥에 넣어 두고 헌법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주석 6)

유신정부와 정보기관, 수구세력은 사제단의 활동을 정치활동이라 몰아치고, 육사 8기생 출신 예비역 중령을 내세워 '한국천주교정의신자단'이라는 위장 단체를 만들어, <횃불>이란 유인물을 발간하면서 사제단의 사회참여를 비난하는 등 갖은 술책을 동원하였다. 
 
1973년 11월 5일 시국선언을 준비 중인 재야인사들. 정중앙 태극기 아래에 있는 이가 한신대 설립자인 장공 김재준 목사. 함석헌, 김지하, 계훈제, 천관우, 지학순 주교, 법정스님의 모습도 보인다.
 1973년 11월 5일 시국선언을 준비 중인 재야인사들. 정중앙 태극기 아래에 있는 이가 한신대 설립자인 장공 김재준 목사. 함석헌, 김지하, 계훈제, 천관우, 지학순 주교, 법정스님의 모습도 보인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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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사제단은 사탄의 도발에 당당하게 응수하였다. 앞의 성명서 중의 한 대목이다.

우리의 기도와 행위는 정치활동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르고 인간의 양심을 되찾자는 인간회복의 노력입니다. 우리는 특정인, 특정 집단, 특정 정권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면 누구나 다 화해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 집권층이 인간으로 회귀하기를 바라며 간곡한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더러 정치활동을 한다고 우기면서 정치활동을 하지말기를 바란다면 먼저 우리에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을 찾고 인간의 양심을 찾고 인간성을 되찾고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할 수 있는 사회로 가자'고 말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날이 빨리만 오게 된다면 우리는 당장이라도 하느님의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주석 7)
       

주석
5> 앞의 책, 303쪽.
6> 앞의 책, 305쪽.
7> 앞의 책, 307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민주주의,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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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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