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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이다. 세어보니 이번 설은 2020년 코로나 닥치고 네 번째 맞는 명절이다. 작년 가을만 해도 올해 설에는 드디어 일가들이 모두 모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안타깝게도 예상이 빗나갔다. 게다가 오미크론 위기가 또 코 앞이라 하니 여전히 코로나의 기세는 등등하고, 버텨야 할 시간이 아직도 더 남았나 보다. 

정부는 올해 설도 가급적 고향 방문을 자제하라고 했지만, 우리 가족은 지척에 사시는 부모님을 뵈러 가기로 했다. 시부모님은 우리 집에서 차로 40분 거리의 서울 외곽에 거주하고 계신다. 평상시에도 남편이 자주 들러 이것저것 보살펴 드리지만, 명절을 앞둔 나는 나대로 분주하다. 명절 선물은 물론, 부모님께 필요해 보이는 생활용품이나 드시면 좋아하실 법한 음식들도 신경 써 챙겨보기 때문이다. 

거리두기가 4인까지였던 작년 설에는 2인 1조로 시가를 방문했었다. 설 전날에는 나와 남편이 들렀고, 설 당일에는 남편과 아들이 방문했다. 코로나 속에 여러 번 명절을 맞다 보니 북적거리던 예전과 달리 이렇게 차분해진 명절 분위기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코로나로 달라진 명절 분위기
 
   작년 설, 책상위에 놓인 PC를 앞에 놓고 세배를 드렸다.
  작년 설, 책상위에 놓인 PC를 앞에 놓고 세배를 드렸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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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야기한 명절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80줄의 시부모님이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기기를 활용하시는데 친숙해졌다는 점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왜 필요하냐고 반대하시던 와이파이와 증폭기를 막상 설치해 드리니 참 편리하게 이용하신다. 작년 설, 부모님 댁에서는 남편이 가져간 아이패드로 화면을 띄워 놓고, 집에서는 딸과 내가 거실 책상 위에 놓인 PC를 앞에 놓고 세배를 드렸더랬다. 

부모님은 컴퓨터를 보며 세배받기는 처음이라며 신기해하셨다. 아쉬운 점은, 딸과 내가 절하느라 앉을 때는 화면 아래로 사라졌다가 일어설 때 다시 화면에 들어온다는 걸 미리 알아채지 못한 점이었다. 그때 하필 소리마저 안 들려 바로 소통을 못했다. 화면을 보시던 부모님은 세배를 받은 것도 아니고, 안 받은 것도 아니라며 우스워하셨단다. 딸과 내가 교대로 PC를 아래 위로 움직여 다 보여드릴 걸... 아쉬운 해프닝이었다.

시부모님은 스마트 폰으로 하는 영상통화에도 아주 익숙해지셨다. 마침 미국에 체류 중이던 막내 시누네와 명절은 물론, 거의 매일 얼굴을 보며 통화를 하시니 덜 쓸쓸해 보여 좋았다. 얼마 전 어머니 생신에는 지방에 사는 큰 시누네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셨는데, 옆에 있던 나도 덩달아 오랜만에 시조카들 얼굴을 보게 되어 반가웠다. 직접 만나지는 못해도 부모님이 기술을 이용해 여전히 자녀들과 안부를 나눌 수 있으니 다행이다. 

코로나 속 명절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 명절 치르기가 단출해졌다는 점이다. 우리 시가는 종갓집은 아니지만, 명절에 손님이 많다. 명절날 앞뒤로 두 시누네 가족들이 번갈아 들르고, 설날 차례가 끝나면 세배 인사하러 오는 손님들이 죽 들른다. 남편의 외사촌, 오촌들이 자기 아이들까지 앞세우고 시부모님께 인사를 오는 것이다. 시가의 위치는 바로 서울의 경계지만, 풍습은 여전히 전통적이다. 

그럼 외며느리인 나는 허둥지둥 인사하고, 얼른 오시는 손님 별로 다과상 차려내기에 급급하다. 갓 결혼했을 때는 그런 손님들이 낯설고 힘들기만 하더니, 어찌 됐든 이제는 함께 앉아 친근하게 담소도 곧잘 나누던 차이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그런 손님들의 발길이 딱 끊기며 명절 특유의 북적거림이 말끔히 사라졌다. 못 뵌 지 오래되어 그분들의 안부가 살짝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 변화를 되돌리고 싶지는 않다. 

코로나 덕분에 맞게 된 명절 혁명

우선 준비할 음식 양이 대폭 줄어 그만큼 덜 고생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한 변화 중 내심 가장 반기는 부분이다. 물론, 중요한 음식 준비는 어머니께서 대부분 하시지만, 전 부치는 일은 언제나 힘들다. 바닥에 신문지를 펴고 한나절 내내 뜨거운 기름 튀어가며 전을 부치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하고 나면 기름 냄새에 머리도 아프고, 허리와 무릎 저림도 며칠을 간다. 

우리 시가는 명절에 기본으로 하는 전들에 더해 특별히 천엽 전을 부쳤다. 어머니는 늘 명절마다 들르는 어느 친척이 그걸 그렇게 좋아하니 안 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그 손님이 안 오시니 어머니도 천엽 전을 고집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나로서는 대환영이다. 그러니 이제 전은 딱 차례상에 올릴 만큼만 준비한다.

코로나 이후 꾀가 난 나는 그마저도 우리 집에서 부쳐 가고 있다. 집기며 재료들의 위치가 익숙하고, 딱 필요한 만큼만 부치니 일이 훨씬 빠르고 힘도 덜 들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매년 손수 빚으시던 만두도 생략하시고, 직접 찌시던 떡도 사 오시는 걸로 대체하신다. 가히 코로나 덕분에 맞게 된 명절 혁명이다. 

명절이지만 음식도 덜하고, 사람들도 덜 북적여서 왠지 허전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음식 하는 데 쓰인 시간이 줄자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시간이 훨씬 여유 있게 늘어났다. 설 당일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다녀온 후에는 부모님과 함께 근교 드라이브나 가까운 공원에 산책이라도 갈 수도 있으니 참 좋다.

그간 손님 준비에 치우쳐 음식하고 대접하는 명절이었다면, 코로나 이후엔 가족 간의 정을 밀도 깊게 나누는 명절이 아니었나 싶다. 전해 내려오는 풍습도 좋고 전통도 따라야겠지만, 명절을 지내며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가치는 가족끼리의 진심 어린 마음 나눔이 아닌가 싶다. 뜻하지 않게 코로나가 가져온 이 명절의 변화를 환영하며,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이런 변화가 지속되어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코로나가 바꾼 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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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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