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가에는 재차 스포츠 예능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관련된 스포츠 종목만 해도 축구, 골프, 씨름, 농구 등 여럿을 꼽을 수 있다. 아무래도 팬데믹 시기라 외부 활동이 줄어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동시에 그만큼 스포츠 인프라가 확대되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하지만 방송으로서 스포츠 예능이 다른 예능 프로그램과 차별성을 가지고 인기를 얻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해당 프로그램 안에서 '개인의 성장'이라는 개별 서사와 '팀의 성장'이라는 공동체적 서사를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축구를 좋아해 JTBC <뭉쳐야 찬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을 특히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다. 처음 축구와는 전혀 상관없던 이들이 하나둘 축구라는 스포츠에 빠지게 되는 과정과 각자 그 안에서 의미를 재발견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퍽 즐겁다.
흥미롭게도 방송을 통해 축구를 시작하는 출연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축구를 직접 해보면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축구는 신체적으로 힘든 운동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예를 들어 <뭉쳐야 찬다>에 참여하는 이들만 해도 각 스포츠계 정상급에 있던 스타들로 구성되어 신체 수준은 일반인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데도 이와 같은 말을 말한다는 것이다. 이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닌, 축구라는 경기를 운영하는 것이 힘들다는 의미에 가깝다. 조금 더 말을 풀어보자면 축구는 '잘'하기 매우 어려운 스포츠인 것이다. 이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선을 앞둔 특별한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는 한가지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축구가 공을 차고 쫓는 단순한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러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축구는 생각보다 전략과 전술이 많이 필요하고, 동시에 그것 또한 일종의 트렌드를 가지고 있어 그에 발맞추지 못하면 뒤처지고 만다.
예전의 축구는 확실히 화려한 공격축구가 많이 돋보였다. 우리가 잘 아는 브라질 축구 스타일이 이와 비슷하다. 화려한 개인기를 가진 선수들이 피치 위에서 뛰기 시작하면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 해도 황홀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브라질에는 화려한 공격수가 많았던 것 같다. 멋진 골을 몇 번이나 넣을 수 있는 스트라이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팀의 커다란 장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수비축구가 공격축구를 밀어내고 대세가 되었던 시기도 있었다. 이탈리아의 빗장수비로 잘 알려진 수비 중심의 축구는 탄탄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진을 빼는 전술이었다. 확실히 이러한 전술은 월드컵과 같은 토너먼트 경기에 유리했다.
물론 자연스레 경기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골이 잘 나오지는 않는 다소 지루한 경기가 될 수 있으나, 승리라는 목적에 굉장히 부합한 전술 방식이었다. 이처럼 수비 중심의 전술이 실제 리그에서도 서서히 통용되자 '안티 풋볼'이라는 불명예를 무릅쓰고 이를 활용한 감독들도 적지 않았다. 아무래도 성적 중심이라는 살벌한 프로리그에서 착실한 성적을 내기에는 유용한 전술이었다.
그렇다면 최근의 축구 트렌드는 어떠한 방식일까? 그 비밀은 앞서 언급한 축구 예능을 열심히 본 이들이라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답은 바로 조직력과 균형이다. 공격과 수비 어느 측면을 특별히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팀 자체가 하나의 전술이 되게끔 하는 것이다. 굉장히 일반론으로 들릴 수 있으나 실제로는 가장 완성하기 힘들고 시간도 공도 많이 들어가 전술적으로 완성하는 감독들이 극히 적다.
이러한 전술 방향에 감독들이 선호하는 선수의 모습도 어느 특정 능력이 강한 선수들보다 전체적인 밸런스가 좋은 선수들로 바뀌어 갔다. 예를 들면 공격만 잘하는 공격수가 아니라 수비도 잘하는 공격수를 바라고, 골을 잘 막는 골키퍼가 아니라 공격의 실마리를 펼 수 있는 리빌딩 능력이 뛰어난 골키퍼가 훨씬 더 인정받는 것이다.
이러한 전술은 앞서 말한 대로 조직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팀으로서의 간격 유지가 핵심이다. 11명의 선수가 유기체처럼 밀고 당기는 것에 능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전의 축구 방식처럼 잘하는 선수 한 명에게 공을 전달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일컫는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가 2021년 코파아메리카 우승 전까지 꽤 오랜 기간 국제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이유도 이를 통해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축구 추세에 대한 이해는 축구 예능을 시청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대선을 앞둔 지금 우리에게도 한 가지 힌트를 전달한다. 정치도 이상의 축구 트렌드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즉, 대선이 하나의 큰 시합이라 미루어 바라보면 팀(정당) 조직력은 신경 쓰지 않고 스타플레이어(대선후보) 중심으로만 승부를 보려 한다면 서서히 그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당이란 존재가 그렇듯, 구체적인 사회 비전을 기반으로 당론을 만들고 그 취합된 내용을 바탕으로 사회발전 모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돌아가는 대선의 흐름과 구도는 모든 팀이 스타플레이어에게 공을 몰아줘 경기를 끝내려는 전술을 펼치고 있는 것만 같아 우려스럽다.
동시에 다른 리그 소속의 뛰어난 선수들만 잔뜩 영입해 눈요기에만 치중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수해 전 스페인 축구리그의 클럽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뛰어난 선수들을 모조리 영입하는 '갈락티코' 정책을 고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곧 그 전략이 성적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일단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팀의 전술과 그에 상응하는 비전이 구축되어야만 그 안에서 플레이어도 자신의 최선을 기량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살펴보면 현재 대선후보를 낸 주요정당들은 지금이라도 당차원의 담론을 보다 구체화하고 그것들을 많은 시민을 포함한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해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 당연히 이는 시간과 공이 드는 일이다.
게다가 즉각적인 성적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꾸준히 사회 저변을 만들어가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 아닌가. 축구건 정치건 왕도는 없다. 팀은 전술과 비전이 있어야 트로피를 들 수 있다. 급조된 선수들로 쉽게 트로피를 올리려는 정당이 있거든 서둘러 축구 예능이라도 열심히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