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K팝 가수들의 얼굴에 성인 음란물을 합성한 '딥페이크'가 해외 음란사이트를 통해 유포되고 있다. 그중에 동영상이 68%로 가장 많았다. 조잡한 수준이 아니라,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밀도의 영상이라 상황이 심각하다.(디성단 긴급대응팀 최승호 팀장)

전 세계적으로 K팝의 인기가 높아지는 와중에, K팝 아티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소속사가 나몰라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속사 입장은 달랐다. 법적으로 대응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공적 기관의 디지털 성범죄 대응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K팝 연예인의 '딥페이크' 피해 현주소와 함께 이를 알면서도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는 소속사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614건의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적발 
 
 전 세계적으로 K팝의 인기가 높아지는 와중에, K팝 아티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K팝의 인기가 높아지는 와중에, K팝 아티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 pixabay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디지털성범죄심의지원단(아래 디성단)은 지난해 11월 8일부터 14일까지 7일간 연예인 초상을 이용한 합성 음란물을 중점적으로 모니터링했다. 그리고 해외 웹사이트에서 총 614건의 한국 연예인 성적 허위영상물 '딥페이크'(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제작된 가짜 영상물)를 적발했다.

이 중 68.1%가 음란물 동영상이었으며 31.9%는 음란물 이미지에 연예인 얼굴을 합성한 경우였다. 그중에는 성기가 노출되어 있거나 나체와 합성되어 있을 정도로 심각한 사례도 많다. 문제는 일부 기획사들이 이 사실을 인지하고도 "그것도 팬심"이라는 이유로 방치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

디성단 긴급대응팀 최승호 팀장은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지속적인 디지털 성범죄 모니터링을 위해서는 연예인 소속사의 신고가 가장 중요하다"라며 "그런데 소속사에서는 별로 (딥페이크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것도 팬심이라거나 일종의 노이즈마케팅으로 받아들이는 반응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저희가 지금 상황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더욱 중요한 건 (연예인의) 팬들이 이러한 성적 허위영상물을 소비하지 않고 저희 쪽으로 신고해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소속사 쪽에서도 적극적인 삭제 요청을 해주셔야 한다. 유명 연예인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얼굴이기 때문에 저희가 (범위를) 확장해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연예인도  분명히 많을 것이라 느꼈다.

광범위하게 모니터링 할 수 있다면 좀 더 디지털성범죄물을 용이하게 삭제하거나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세하게 운영되는 일부 소속사들은 (성적 허위영상물조차)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었다. 우리 연예인들이 더 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라고). 하지만 한 개인의 존엄성을 해치는 상황이라는 걸 명확히 인식하고 저희에게 신고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최승호 팀장)

네덜란드의 사이버보안 기술업체 딥트레이스가 지난 2019년 전 세계 음란물 딥페이크 사이트와 딥페이크 유튜브 채널들을 분석한 보고서 '더 스테이트 오브 딥페이크'에 따르면, 온라인상에 떠도는 딥페이크 영상 중 96%가 음란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영상에 등장한 피해자의 25%는 한국 여성 연예인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디성단의 피해접수팀 이희영 팀장은 소속사보다는 딥페이크를 접한 일반인들의 신고가 더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은 워낙 넓고 유통이 빠르다. 저희가 614건을 적발했지만 소속사나 연예인이 일일이 모니터링 하지 않는 이상 직접 찾아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저희가 사안이 심각하다고 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신고도 많이 들어온다. 누가 봐도 심각해 보이는 상황이라, 팬들이나 일반인들로부터 신고가 들어오기도 한다.(피해접수팀 이희영 팀장)

디성단에 따르면 불법음란물은 현재 대부분 해외 웹사이트를 통해 유통되고 있고 국내에선 거의 유통이 되지 않는다. 해외 사이트이지만 이용자는 대부분 한국인들이기 때문에 방심위 디성단은 국내 ISP(인터넷서비스제공자)와의 요청으로 한국 내 사이트 접속을 막고 있다고. 그러나 K팝 한류열풍이 불고 있는 만큼 해외 이용자들의 접속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승호 팀장은 "보완책으로 해외 유관기관들과의 국제협력으로 자율규제를 통해 (불법음란물을) 삭제해나가는 방식으로 대비하고 있다. 최근 호주랑도 해외 디지털 성범죄 유통 근절을 위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국제적으로 이런 사안(딥페이크 문제)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공적 규제를 통한 성적 허위영상물 근절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윤소 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장은 이 문제와 관련해 "(딥페이크 음란물 합성 문제는) 여성 연예인의 인권침해에 관한 부분이기 때문에, 소속사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소속사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모른다기 보다는 방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게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디지털 성범죄 문제에 접근하고 있지만 엔터업계도 근절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소속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게 팬덤을 건드릴 수 있는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팬덤은 팬덤이고 폭력은 폭력일 뿐이다. 그걸 구분해서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속사의 법적 대응 쉽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 K팝의 인기가 높아지는 와중에, K팝 아티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K팝의 인기가 높아지는 와중에, K팝 아티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 pixabay

 
반면 취재결과 소속사들의 입장은 달랐다. 20년간 가요계에 근무한 한 소속사 관계자 A씨는 4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소속 아티스트의 성적인 문제를 노이즈 마케팅으로 받아들일 회사는 없다고 저는 생각한다"고 적극 해명했다. 그는 오히려 "소속사가 (디지털 성범죄에) 법적으로 대응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 문제"라고 호소했다. 딥페이크 문제뿐만 아니라 온라인 성희롱 등 다양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민·형사상 고소로 대응하고 있지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
 
워낙 오랫동안 지속된 문제이고 가요 관계자들을 만나서도 늘 하는 이야기인데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자를)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저희도 늘 댓글 성희롱 문제 등을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고 있고 모니터링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고소하거나 소송을 했을 때 처벌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경찰에 증거를 200~300장 제출해도 이건 신고의 대상도 안 된다고 하더라. 경찰 쪽에서 '우리나라에서 사이버 범죄는 현실적으로 단속의 대상이 안 된다고 생각해라'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제도가 없다고. 그게 너무 충격적이었다.(소속사 관계자 A씨)

지속적이고 심각한 가해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법정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화해나 합의로 끝나는 경우도 많단다. 가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특히 더 그렇다. A씨는 "판사부터 아이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면서 합의하라고 설득한다. 거기서 끝까지 (소송을) 계속하면 이 아이가 앞으로도 소속 아티스트에 대한 위해를 계속할 가능성도 있어서 합의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고 말했다. 

또다른 소속사 관계자 B씨는 "일개 소속사에서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공적 기관에서 디지털 성범죄 대응 가이드를 명확하게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문제가 있다는 걸 저희도 인지하고 있고, 트위터 등 해외 플랫폼에서도 이미 이런 문제가 많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일개 민간 회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지 않나. 공적 기관에서 (디지털 성범죄 대응에 대한) 가이드를 명확하게 줬으면 좋겠다. 사실 요즘 소속사에게 전지전능을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하다. 큰 회사는 법무 팀이 있거나 별도의 조직이 있고 당연히 문제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정의 회사도 많다. 그렇다고 작은 조직에게 왜 법무팀이 없냐고 지적할 수 없는 문제 아닌가. 소속사들은 다들 나름대로 적극 대응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소속사 관계자 B씨)
딥페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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