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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말하면 입만 아프다.
 운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말하면 입만 아프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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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안시력자이다. 다시 말해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본다는 뜻이다. 이 어머니에서 저 어머니로 옮겨 사는 시기에 눈에 이상이 생겼고 어머니들은 각자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우기셨다. 두 어머니 중 한 분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지만 따져 싸우고 싶지 않다. 낳아 주고 길러 주신 분인데 싸움을 걸어 무슨 이득이 있을까.

두 눈의 시력을 잃는 것에 비하면 축복받은 삶이라 무한 긍정으로 살았지만 그 삶이 순탄하지 많은 않았다. 한 눈으로 세상을 살기란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열심히 잘 살았다.

지난해, 우연히 나 같은 단안 시력자인데도 운전을 하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단안 시력자도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한쪽 눈에 시력이 없어도 운전을 할 수 있다니 신기한 일이 아닌가.

운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말하면 입만 아프다. 그 사실은 안 날은 너무 흥분해서 잠이 오지 않았고 카페인이 든 블랙커피를 마신 사람처럼 가슴이 벌렁거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강서면허시험장 근처 전문 안과를 찾았다. 내가 운전면허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시력인지 알고 싶었다. 몇 가지 정밀 검사를 한 의사는 가능하다는 진단서를 써 주었다. 몇 년 만에 가져보는 짜릿함인가. 콜라가 뱃속을 지나는 알싸한 기분이었다. 살다 살다 내가 운전을 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60년을 살아온 상식을 동원하여 겁 없이 도전한 첫 번째 학과시험은 65점으로 낙방이었다. 운전은 상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그 문제집이라는 것을 구입했고 이틀을 코를 박고 문제를 풀었다. 두 번째 학과시험은 80점으로 합격했다. 바로 집 근처 운전학원에 등록했다.

'철커덕' 붙을 줄 알았는데

비록 옆자리에 날 가르쳐 줄 사람이 타긴 했지만 태어나 처음 운전석에 앉았다. '살다 이런 날도 오는구나.' 언덕을 오르고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도 건너고 주차도 하고.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신비로웠다. 이틀인가 연습하고 기능시험을 보았는데 떨어졌다. T 주차에서 경계석을 건드렸다. 억울했다. '철커덕' 붙을 줄 알았는데.

연습만이 살길이다 싶어 이틀인가를 더 연습하고 두 번째 만에 장내기능시험을 통과했다. 이제는 도로주행만 남았다. 도로주행. 내가 운전하는 차가 다른 자동차들과 함께 도로를 달렸다. 운전학원 안에서 운전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운전이었다. 내가 이렇게 운전을 할 줄을 누가 알았을까.

그렇게 8시간의 연습을 거치고 처음 도전한 도로주행에서 나는 미역국을 먹었다. 3일 뒤에 치른 두 번째 시험에서도 미역국을 먹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내 문제는 간단한 것이었다. 1차선에서 2차선으로 차선 변경 시 오른쪽 백미러(Back mirror)를 통해 보이는 뒤따르는 자동차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두어 번 추돌 사고를 낼 뻔도 했고. 이것은 수십 시간을 연습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오른쪽 눈에 시력이 없는 내 시력의 한계일 뿐.

처음 가졌던 흥분을 잃기도 싫었고 '하면 되지 않을까'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고 싶어 다섯 번의 도로주행 시험에 응시했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항상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는 것이다. 억울하고 속상했다. 내가 이 정도 행복을 가지는 것도 그 분은 싫으신가.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3일을 고민하고 운전은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사고가 나면 나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기에 내 욕심을 위해, 내 작은 행복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싶었다.

건강한 몸을 주셨으니 더 열심히 일해 기사가 딸린 자동차를 타거나 공짜로 탈 수 있는 지하철을 이용해야겠다. 마음을 비우니 속상할 것도 억을 할 것도 없다. 옆자리에 안전요원을 태우고 도로를 달렸던 지난 몇 날이 나에게 가져다준 기쁨은 컸고 그것에 만족하려 한다.   

태그:#운전면허, #도로주행, #자동차 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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