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을 앞두고, 경제계와 보수경제언론을 중심으로 대통령의 특별사면 요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시민사회와 지지층의 반발을 의식해 사면 대신 가석방이라는 정치적 선택을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부회장이 제대로 된 경영활동으로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사면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요구다.
하지만 경제·시민사회에서는 '이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 자체가 엄청난 특혜'라고 반박하고 있다. 특히 재계의 사면 요구에 대해선 "온갖 불법을 자행해온 재벌 총수 리스크를 없애는 것이 기업 경쟁력과 국가 경제를 위해 우선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는 10일 치 '사면 아닌 가석방... 경제보다 정치적 계산 앞선 것 아닌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 부회장 가석방에 대해 "반기업, 반시장으로 치닫던 정부가 모처럼 국민 여론을 경청하고 내린 균형 잡힌 결정"이라면서도 "사면이 아니라 가석방이라는 점에서 반가움보다는 아쉬움과 찜찜함이 더 크다"고 적었다.
이 신문은 '아쉬움과 찜찜함'의 이유를 "이 부회장을 수감할 떄처럼 풀어줄 때도 정치적 계산을 앞세웠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면서 "재계와 국민여론은 물론이고 여당 일각에서도 사면을 주장하는 상황"이라고 썼다. 이어 "사면 결정 시 감당해야 할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핵심 지지층의 반발과 정치적 부담을 의식해 가석방을 선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고 사설은 전했다.
대통령 사면 결단 주장하는 보수경제지
또 이 신문은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판결에 대해서도 "정치색 짙은 재판"이라며 "이전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수동적으로 행한 경영행위에 정치적 이해관계를 덧씌워 장기 수감하는 것이 정의인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 다수의 여론이 있고, 정당성이 있는 경우라면 과감히 결단할 필요가 있다. 그게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부여한 이유"라고 신문은 강조했다.
<한국경제>는 삼성을 비롯해 현대차 등 국내 주요 재벌들이 주요 주주로 돼 있는 친기업 성향의 보수경제신문이다. 이 신문뿐만 아니다. <매일경제> 역시 '이재용 부회장 투자 전념하도록 경영활동 걸림돌 없애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삼성전자는 200조 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급변하는 시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 부회장의 부재로 투자 결정이 지연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는 "일부 시민단체는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와 삼성 투자는 연관성이 없다고 한다.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면서 "전문 경영인이 수조 원대 투자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썼다. 또 신문은 이 부회장의 가석방이 사면과 달리 운신의 폭에 제약이 따른다면서, "아직 진행 중인 재판이 변수이긴 하지만 실질적 경영 복귀를 위해서는 이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재계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도 '이재용 반도체코리아 위기탈출에 전력투구해야'하는 사설에서 "삼성전자를 둘러싼 국제 반도체 시장 환경이 비상상황"이라면서, 이 부회장의 경영복귀는 필수적이라고 적었다. 이어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해 리더십을 정상화하기 위해 정부는 가석방을 넘어 사면을 조속히 결단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총수 리스크 없애는 것이 경쟁력" 반발
이같은 보수경제언론의 이 부회장 사면론은 이미 주요 경제단체를 비롯한 재계에서 계속 주장해왔던 내용이다. 이미 지난 4월 한국경영자총협회 손경식 회장을 중심으로 경제5단체는 청와대에 사면건의서를 냈고, 한미 정상회담 후 4대 재벌 총수와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에서도 사면 이야기가 나왔다.
이 부회장에 대한 법무부의 가석방 결정 이후에도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은 "이 부회장이 사면이 아닌 가석방 방식으로 기업 경영에 복귀하게 된 점은 아쉽다"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이 부회장의 가석방에 대해 다행이라면서도 "가석방은 취업 제한, 해외출장 제약 등의 어려움이 있어 이 부회장이 경영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대한 행정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론에 대해 경제·시민사회단체 등의 반발도 거세다.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변호사는 "재계에서 말하는 세계 반도체 전쟁에서의 총수역할론은 말 그대로 그들만의 논리"라며 "어느 글로벌 기업 CEO가 거액의 뇌물과 횡령의 범죄를 저지르고, 형기를 제대로 마치지 않고 경영에 복귀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그동안 재벌총수에 대한 사면과 가석방 조치라는 특혜를 줘 오히려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만 주고 있다"면서 "이는 보수진영이 그토록 말해온 자본주의 시장의 건전한 발전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 변호사는 "백번을 양보해서 국가경제를 위해 이 부회장 사면이 이뤄지더라도, (이 부회장은) 삼성 불법승계 의혹 등으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이들 재판 최종 판결까지 2~3년이 걸릴지 모르는데, 이미 제대로 된 경영활동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도 "삼성은 그동안 이 부회장 구속 등 부재 시에도 전문경영인 체제로 기업 경영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왔다"면서 "이제 와서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와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주장이며 자가당착"이라고 말했다.
권 국장은 이어 "이미 재벌 총수 구속과 기업 경영과는 크게 상관없다는 것이 삼성뿐 아니라 다른 재벌의 사례에도 확인된 사실"이라며 "오히려 뇌물과 횡령, 배임 등의 불법으로 인한 총수 리스크가 기업과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 부회장의 부재 중에도 삼성전자는 최대 실적과 이익을 올렸다"면서 "독립적인 이사회와 전문 경영인에 대한 역할이 더 강조돼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