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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 최제우로부터 도통을 물려받아 동학을 민중 속으로 더 넓게 전포한 해월 최시형 선생 (이 사진은 해월 선생이 처형 당하기 직전 찍은 사진에, 1900년에 몸통 부분을 편집하여 제작한 사진이다)
▲ 동학 2세 교조 해월 최시형 수운 최제우로부터 도통을 물려받아 동학을 민중 속으로 더 넓게 전포한 해월 최시형 선생 (이 사진은 해월 선생이 처형 당하기 직전 찍은 사진에, 1900년에 몸통 부분을 편집하여 제작한 사진이다)
ⓒ 박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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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동학사상의 큰 맥은 1대 교조 최제우의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기에 인간은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시천주), 2대교조 최시형의 "하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요 사람이 곧 하늘이기에 사람을 서로 존중해야 한다.(사인예천)"라고 인식된다. 

최시형은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더욱 발전시켜 '사인여천(事人如天)'을 정립하였다. 사람을 하늘같이 섬기라는 철학사상이다. 반상과 적서의 차별이 극심하던 시절이다. 양반은 영원한 양반이고 상놈은 대를 이어 상놈이었다. 신분을 벗어날 합법적 사다리가 없었다. 해서 허균이 지적한대로 가끔 호민이 나타나 원민과 항민을 일깨워 저항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토살되고 말았다. 삼족이 멸살되기 일쑤였다.

최시형, 그는 반상과 적서의 차별을 극렬히 반대하였다. '시천주'나 '사인여천'의 사상은 인위적인 차별을 거부하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나라에는 두 가지 큰 병폐가 있는데, 하나는 적서의 구별이요, 다음은 반상의 구별입니다. 적서의 구별은 집안을 망치는 근본이 되고, 반상의 구별은 나라를 망치는 근본이 되니, 이것이 바로 우리 나라의 고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회상에는 두목 아래에도 그보다 백 배나 나은 큰 두목도 있을 수 있으니, 여러분들은 주의해서 어떤 차별적인 생각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주석 13)

'사인여천'은 그의 후계자 의암 손병희에 의해 '인내천'으로 승계되면서 동학의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현대 인권사상의 큰 가치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최시형은 사람과 하늘의 관계를 설명한다.

사람들이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한울님이 그곳에 있다고 절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한울님이 높다는 것만 듣고 한울님이 진정으로 한울님되는 까닭을 알지 못한 때문입니다.

나의 모든 행위가 바로 귀신이며 조화이며 이치 기운이기 때문에, 사람은 한울님의 영이며 정기요, 한울님은 만물의 정기이니, 만물에 순응하는 것이 바로 천도(天道)가 됩니다. 그런데 인도(人道)는 바로 천도를 그대로 체(體)와 용(用)으로 본받았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는 헌 가닥 한 가닥의 머리털도 들어갈 수 없게끔 연관되어 있습니다. (주석 14)

최시형의 '사인여천'의 사상은 아직 『독립신문』이나 만민공동회 등 서구의 근대적 민권사상이 이땅에서 소개되기 전의 일이다. 적서와 반상과 함께 여성차별이 극심하던 시절이다. 한 연구가는 그 의미를 네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각성이다. 즉, 수운의 시천주사상이 해월에 와서 인시천사상으로, 또 의암에 와서는 인내천사상으로 진화되었고, 그 시행방법으로는 사인여천으로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사상의 진화과정 속에서 당시의 절대군주체제 하에서 매몰된 개인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자각인 것이며, 한국적 휴머니즘의 정화인 것이다.

둘째, 민본사상이다. 아무리 유교의 민본사상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역사상 인민의 권익이 부각된 것은 그리 흔하지 않았으며 당사자들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절대왕정에 대한 충성만이 신민의 도리라고 생각함으로써 스스로를 비하하여 왔다. 

셋째, 계급타파의 사상이다. 조선조 후기의 최대의 사회적 모순은 곧 지나친 사회계급의 형성이었다. 수운이 이러한 모순을 타개하기 위한 사회개혁의 방편으로 동학을 창도한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으려니와 동학의 지도자들이 대개가 사회적으로 냉대 받던 계층의 인물이었다.

미루어 생각해 볼 때 동학의 교리에 나타나고 있는 계급타파 사상은 하나의 필연으로 해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학사상에서는 인류의 재화(災禍)는 계급에 있는 것이요, 경제적 계급의 차별에 있는 것이므로 계급 차별이 없고 이해가 일치하면 인간의 행복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1894년의 동학혁명 때 주장했던 폐정개혁 요구 12개조에서도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넷째, 여성의 지위를 각성시켰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한민족의 의식을 지배하여 온 유교의 남존여비 관념은 비단 인도주의적인 면을 떠나서 생각하더라도 한국사회의 균형 있는 발전을 저해하였으며, 여성 특유의 능력으로 개발될 수 있는 분야가 외면되었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불행한 일이었다. (주석 15) 


주석
13> 최준식, 앞의 책, 97쪽.
14> 앞의 책, 103쪽.
15> 임형진, 앞의 책, 73~74쪽, 발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월 최시형 평전]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해월, #최시형평전, #최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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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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