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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온 가족이 집안에만 머물러 있던 어느 일요일 오후 시간이었다. 욕실에서 아이들이 목욕 놀이를 하던 중이었다. 바로 그때, 우리 집 인터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층간소음' 때문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예감은 적중했다!  
 
우리 집 인터폰
 우리 집 인터폰
ⓒ 김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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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바로 윗층에 사시는 이웃분께서 직접 우리 집으로 인터폰을 하셨다. 상냥한 목소리의 그는 5분 뒤 직접 우리 집 현관 앞으로 내려오시겠다며 잠시 뵐 수 있냐고 하셨다.

예전에 아침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한두 번 뵙고 요즘 통 뵙지 못했는데 이렇게 다시 뵙게 된 것이다. 당시 웃는 모습으로 먼저 나에게 인사를 건넸던 따뜻한 인상의 여성분으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이웃분은 우리를 보고 매우 난감하고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안녕하세요. 일전에 엘리베이터에서 한 번 뵈었는데 오랜만이지요. 다름아니라, 저도 아이를 키워봐서... 저는 지금 다 키워서 웬만하면 정말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요... 저희 자녀가 고3 수험생이에요. 원래 짜증이 없는 아이인데, 오늘은 계속 귀까지 막고 짜증을 많이 내더라고요. 아무래도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져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예전 같으면 나가서 공부하는데 지금은 잘 나갈 수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안방 욕실에서 아이들이 노니까 그게 소리가 더 울려서요... 정말 웬만하면 안 오려고 했는데, 너무 죄송해요... 경비실로 하면 괜히 서로 기분이 상할 것 같아서 제가 연락드리고 직접 내려왔어요... 죄송합니다..."

작년에 이사 하신 후 처음 인사를 나눌 때 인상이 참 좋으셨는데, 역시나 예상대로 인품도 훌륭하신 듯하였다. 죄송할 것이 1도 없으신데... 나도 남편도 연신 죄송하다는 말로 머리를 숙였다. 집안으로 들어온 나는 즉시 안방 욕실로 향했다. 영문도 모른 채 해맑은 표정으로 연신 물장구를 치며 신나게 장난을 하고 있던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화장실에서 떠드니까 이게 더 소리가 울려서 시끄러우니까 오늘은 그만 놀고 나가자. 윗층에서 방금 내려오셨는데 집에 수험생이 있어서 공부에 방해되니까 조용히 해야해. 어서 씻고 나가자."
 

막내가 물었다.

"수험생이 뭐야?"
"응. 고등학교 3학년인데 윗집에 올해 대학교에 가야하는 언니나 오빠가 있나봐. 시험 때문에 공부를 하니까 시끄러우면 안 될 것 같애. 그러니까 앞으로도 목욕할 때는 조용히 해야해. 알겠지?"

   
사실 이웃에서 연락이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몇 년 전, 아래층 이웃이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층간소음으로 경비실을 통해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너무 죄송한 마음에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가족을 만났을 때,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그런데 도리어 손자를 키우고 계시는 아래층 할머니(이웃분의 친정어머니)께서는 '우리도 아이를 둘이나 키우고, 같이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너무 깐깐하게 굴면 안된다'는 말씀을 하시며 쿨하게 웃으셨다. 내가 무안할까 봐 그렇게까지 말씀을 해주시는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하고도 감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윗집'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참으셨을까. 그리고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 죄송하고 걱정과 함께 한숨이 나왔다.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진지하게 이사를 해야 하나 잠시 고민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여건상 당장 이사하기는 힘들다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무조건 조심하자는 다짐을 하였고 현재까지도 실행 중이다. 다만 그 실행은 늘 현실의 장벽에 많이 부딪힌다. 아이들이 집안에서 조금만 격하게 놀거나 혹은 뛰거나, 욕실에서 목욕 놀이를 할 때 큰 소리가 나면 즉시 제지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이런 노력에도 이웃이 시끄럽지는 않은지, 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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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이웃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면 몇 층을 누르나 유심히 보게 된다. 아래층 사시는 가족분들은 자주 뵈어서 얼굴을 알고 있지만, 내가 뵈었던 윗층 이웃분의 자녀 혹은 남편분은 아직 뵌 적이 없어서 잘 알지 못한다. 

오늘 우연히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게 된 어떤 남학생이 우리집 바로 윗층을 눌렀다. 하지만 정작 물어볼 수 없었다. 너무 염치가 없고 죄송한 마음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웃을 만나면 죄송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은 것이 어쩌면 나의 이런 불편한 마음과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내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지고자 하는 이기적인 행동은 아닌지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최근 코로나19까지 겹쳐서 내 마음이 더욱더 불편한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나의 이웃분들께 다시 한번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불현듯 내가 이 집에 우리 아이들과 5년째 잘 살고 있는 것은 그런 이웃분들을 만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태그:#층간소음, #이웃,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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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크고 작은 이야기를 전하는 행복예찬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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