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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 끝에 지난 6월 30일 예비 개관한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 159억 원의 예산을 들였지만, 박정희 시대의 영광만 재현하고 있다.
 논란 끝에 지난 6월 30일 예비 개관한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 159억 원의 예산을 들였지만, 박정희 시대의 영광만 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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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0일, 숱한 논란 끝에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이하 자료관)이 문을 열었다. 9월 정식 개관에 앞선 예비 개관이라는 소식을 듣고 자료관 누리집에 접속하여 다음 날 관람을 예약했다. 누리집에서는 코로나19 때문에 시간당 관람 인원을 50명으로 제한하여 예약을 받고 있었다.  

애당초 관람객으로 자료관이 붐비는 일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예비 개관 2일째,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이른 시간이긴 했으나, 직원 몇 명과 청색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 안내자들 외에 자료관에서 만난 관람객은 불과 서너 명에 지나지 않았다. 

박정희(1917~1979) 전 대통령의 출생 100돌인 2017년부터 국비 64억 등 159억 원을 들여 지은 자료관은 6164㎡ 부지에 3층 규모(연 면적 4358.98㎡·약 1321평)의 거대한 건물이다. 자료관은 로비와 수장고(1층),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2층), 아카이브실과 세미나실(3층)로 이루어져 있다. 

로비에는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과 과거 구미 시가지 모습 등의 사진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고, 안내대 뒤편, 박 전 대통령의 유품이 보관된 수장고는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수장고에는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에서 위탁받아 선산출장소에 보관해온 박 전 대통령의 유품 5649점을 옮겨왔다. (관련 기사 : 14년 만에 공개된 박정희 유품, 맥 빠지네)
 
 상설전시실에는 제5대 대통령 취임식(1963) 방송 화면을 배경으로 박정희 부처의 밀랍인형이 전시되어 있다.
 상설전시실에는 제5대 대통령 취임식(1963) 방송 화면을 배경으로 박정희 부처의 밀랍인형이 전시되어 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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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 상설전시실에 전시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2층 상설전시실에 전시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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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상설전시실은 대형 미디어월(media wall)로 시작된다. "구미시의 경제 성장 과정과 희망찬 미래를 주제로 구성한 미디어아트 영상"(누리집)이었다. '조국 근대화의 길'을 주제로 한 상설전시실은 '가난 극복을 위해'(영상실), '조국 근대화를 위한 첫걸음', '산업화의 시작, 외자 도입', '수출만이 살길' 등과 유품 전시실로 구성됐다. 

상설전시실의 공간 구획은 조국 근대화, 산업화의 기수로, '보릿고개'를 극복하게 해 준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를 환기하고 소환하는 내용 일색이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건설업의 중동 진출 등의 꼭지와 함께 포니 자동차와 금성사 텔레비전, 현대중공업 1호 선박 애틀랜틱 배런호 등이 실물과 모형 등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수출  성장의 주역으로 소개된 여성 노동자 코너. 전자와 섬유 공장의 여성 노동자는 비슷한 작업복에 머릿수건을 쓰고 있다.
 수출 성장의 주역으로 소개된 여성 노동자 코너. 전자와 섬유 공장의 여성 노동자는 비슷한 작업복에 머릿수건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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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일색... 허물은 없다

새로울 게 없는 전시물을 훑어보다 두 군데서 걸음을 멈추었다. 산업체 부설 학교와 근로 청소년을 소개하는 코너와 '수출 성장의 주역'으로 소개된 여성 노동자 코너였다. 초임 근무 시절에만 해도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부산과 대구, 구미 등의 산업체 부설 학교로 떠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었다. 떠나는 아이들을 끌어안고 통곡한 동료 여교사를 떠올리며 나는 마음이 먹먹해졌다.

전자 부품 공장과 섬유 공장의 여성 노동자는 모두 작업복에다 머릿수건을 쓰고 있었다. 살인적인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생계를 책임지거나 동생들의 학비를 도맡았던 이들 여성 노동자는 '주역'으로 소개되고 있었지만, 기실은 박정희가 주도한 근대화의 '조연'으로 소환된 거였다. 

상설전시실의 마지막 방은 유품을 전시한 공간이었다. 전시실은 생활 집기에서부터 외교활동에서 받은 여러 가지 선물 등으로 구성했다. 보료방석과 바둑판과 돌, 문갑, 장식용 시계, 여행 가방, 전화기 등 가운데 재떨이가 눈길을 끌었다. 1977년 구미의 한 호텔에서 묵을 때 사용했다는 커다란 나무 재떨이는 당당히 전시물에 끼어 있었다.
 
 유품전시실. 보료방석과 바둑판과 돌, 문갑, 장식용 시계, 여행 가방, 전화기 등 가운데 맨 왼쪽에 1977년 구미의 한 호텔에서 묵을 때 객실에서 사용했다는 커다란 나무 재떨이가 보인다.
 유품전시실. 보료방석과 바둑판과 돌, 문갑, 장식용 시계, 여행 가방, 전화기 등 가운데 맨 왼쪽에 1977년 구미의 한 호텔에서 묵을 때 객실에서 사용했다는 커다란 나무 재떨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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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구미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구미시와 경상북도의 '박정희 100년 사업'이 시대적 변화와 요구를 거스르는 지난 정권의 적폐라고 확인하면서 꾸준히 사업의 취소를 요구해 왔다. 이들 시민단체에서 '박정희 유물 전시관'으로 부른 '자료관'은 박정희 기념사업의 핵심이었다. (관련 기사 : 박정희 재떨이 모시는 200억짜리 '자료관'이라니…)
  
시민단체에서는 전임 구미시장들이 시작하고 경상북도에서 함께한 '새마을운동'과 '박정희 100년 사업'을 단체장의 '박정희 마케팅'이라 평가했다. 특히 박정희를 '반신반인'이라 칭송하면서 그 우상화 사업에 골몰해 온 남유진 전 구미시장이 그 대표적 정치인이었다. 

실제 박정희 관련 사업에 들어간 예산은 1400억여 원에 이른다.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에 286억,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에 907억, 박정희 역사자료관에 159억 등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900억 넘게 들여 조성한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은 콘텐츠 부족으로 오래 개점휴업 상태로 있었고, 운영비 부담을 두고 구미시와 경상북도가 다툼을 벌이기까지 했다. 

간신히 개관했지만, 찾는 사람이 드문 새마을 테마공원은 한적하기만 하다. 남 전 시장은 퇴임을 앞두고서도 자료관 건립을 강행하려 했고 시민단체에서는 백지화를 요구했다. 지방선거 국면에서 현 시장이 테마공원 등의 용도 변경을 포함한 해결책을 찾겠다고 했지만, 결국 테마공원은 마땅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문을 열었다. (관련 기사 : 1천억 건물 비워놓고 기어이 '박정희 유물관' 지어야 하나?)

자료관은 애당초 전시할 자료가 빈약하여 유물 기증 캠페인까지 벌였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기껏 기증된 자료가 시민 소유의 기념 우표나 재떨이 같은 물건뿐이었다. 유물을 구할 게 아니라 자료관 건립을 취소해야 한다는 참여연대의 요구가 나온 이유였다. 일단 공사를 중지하고 대안을 찾아보자는 시민단체의 제의에도 자료관 공사는 강행되었다.

자료관에 대한 구미시의 구상은 크고 화려했다. 유품 5670점을 보존·전시하고 역대 대통령들의 자료와 함께 전시해 한국 근현대사를 재조명하고, 생가와 새마을운동 테마공원과 연계해 역사관광자원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숭앙하는 시설은 이미 조성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업비 58억 원을 들여 생가 추모관 앞에 개관한 '민족중흥관'은 물론, 새마을운동 테마공원도 있었다. (관련 기사 : 879억 들여 만든 애물단지 '새마을 공원'…이게 끝이 아니다)

역사 대신 신화를 바라는가

자료관의 유품전시실은 '청와대 집무실을 재현하고 재임 시절 국내외 귀빈들로부터 받은 선물 등 보관 유품과 주요 업적을 기록한 사진을 전시'한 민족중흥관 '대통령의 향기실'과 기능이 겹친다. 역사자료관의 '조국 근대화의 길'은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의 전시실과 그 기능상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자료관이 최소한, '역사'라는 이름값을 할 수 있다면 하였던 바람은 결국 순진한 기대에 그쳤다. 민족중흥관이 말 그대로 박정희의 '공'을 기리는 시설이라면, 쿠데타로 집권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누르며 영구 집권을 꾀한 독재 정권의 '과'가 기술되는 공간으로 꾸려졌더라면 자료관은 '역사'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구미시는 자료관에서 '역사'를 제거해버린 대신, 바래어가고 있는 박정희 시대의 신화를 반추하고 있다. 3개월간 시범 운영을 거쳐 오는 9월 중에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하겠다는 구미시의 계획이 공허해지는 대목이다. '역사자료관'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반세기 전 독재 시대를 소환하여 재현할 것은 '박정희 시대와 '영광'이 아니라, 18년 '독재의 유산과 그 오욕'을 아우르는 '역사의 교훈'이어야 마땅한데도 말이다.
 
 역사자료관 바로 옆느티나무 진입로 저편에 5m 높이 박정희 청동상이 서 있다. 언제쯤 구미시민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인물로 그를 맞이할 수 있을까.
 역사자료관 바로 옆느티나무 진입로 저편에 5m 높이 박정희 청동상이 서 있다. 언제쯤 구미시민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인물로 그를 맞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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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자료관이 개관함으로써 박정희 생가, 민족중흥관, 새마을 테마공원을 잇는 10만 평에 이르는 '박정희 타운'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건설비만 1400억, 한 해 운영비만 수십억에 이르는 거대한 '우상화'의 상징 시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이 파행의 '박정희 기념사업'이 구미시민에게 남긴 것은 영예일까, 멍에일까. 

역사자료관 오른쪽 150m 길이의 느티나무 진입로 저편에는 5m 높이의 청동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 있다. 구미는 언제쯤 영광으로만 그를 소환하는 대신 온전하게 그와 그 시대의 명암을 기술함으로써 그를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인물'로 새롭게 맞이하게 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https://qq9447.tistory.com/)에도 싣습니다.


태그:#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 #예비 개관, #영광과 오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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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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