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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질서 너머'
 책 "질서 너머"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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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우리에게 주어진 쉽지 않은 숙제다. 숙제를 매번 즐기기란 참 어려운 일. 시간의 비중으로 본다면 행복한 순간보다 힘들고 짜증 나고 외롭고 절망스러운 순간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고 위험하고 정의롭지 않은 것 투성이며,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고 노력하는 이의 삶의 의지를 꺾어 놓기도 한다.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알 수 없는 바이러스들은 인간을 놀리듯 계속해서 퍼지면서 우리가 자유로이 누리던 많은 것들을 침식시킨다.

소수의 누군가는 남을 착취하면서 부를 독점하고 성공자의 반열에 오르는데, 아무리 스팩을 쌓고 쌓아도 일자리 하나 얻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청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뭐 어쩌란 것인가? 받아들이라는 것인가, 말라는 것인가? 노력하라는 것인가, 말라는 것인가? 그래도 희망을 가지라는 것인가, 말라는 것인가?

삶은 어렵고 난해한 문제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조던 피터슨의 <질서 너머>는 사회를 비판하거나 변화시키려는 목적의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자각과 변화에 초점을 둔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12가지 인생 법칙들의 가장 원초적인 가정은 삶은 어렵고 난해한 문제들로 가득차 있다는 것.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가족(부인과 딸)이 각자의 병으로 고통을 겪었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책을 출발한다. 통제할 수 없는 문제들과 시련들이 어느 때든 닥칠 수 있으나 그럴수록 우리가 의미를 따라가며 살아가야 한다고 강력히 제안한다.
 
"의미를 따라가야 우리는 우리 너머에 있는 것에 압도되지 않고, 시대에 뒤처졌거나 너무 편협하거나 너무 과시적인 가치와 믿음 체계에 바보처럼 현혹되거나 지배당하지 않게 된다." - p.19, 서문 중

그 법칙들을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피터슨의 위력이 드러난다. 그의 글쓰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마이너스 사고에서 플러스 사고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함을 알 수 있다. 즉, '~하면 ~하게 될 것이다'를 주장하기 위해 그는 '~하지 않을 때'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로 귀결되는 사례와 논거들을 충분히 제시한다.

어쩔 땐 그 디테일한 근거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꼼짝없이 당하는 느낌을 받게 한다. 우리의 양심을 건드리고 허점을 찌르며 부끄럽게 만들고 숨고 싶게도 한다. 그가 주장하는 내용에 공감하든 아니든 자신의 내면에 숨겨두었던,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들을 한 번쯤 점검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이슈라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닌 우리 인생에서 20대든 50대든 각자의 자리에서 할 말은 너무나 많다. 한국에서는 피터슨이 20대 청년들의 구루(Guru)로 인정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자아 성찰을 통한 깨달음의 적정한 시기는 정해져 있지도 않고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물론 성찰을 당하는 일이 유쾌할 리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 과정을 피하지만 않는다면 지금보다 좀 더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으리란 희망에도, 그는 확실한 힘을 싣는다. 삶을 긍정한다는 것이 세상은 선하고 살아볼 만한 곳이라며 피상적으로 믿는 일과는 다른 것임을 그는 구분해 낸다. 삶에의 긍정은 갖가지 불행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로서의 용기를 발휘하는 것이다.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하기

그렇기 때문에 그는 순진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최소한 인생의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측면들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피하지 말고 알 건 알고 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을 회피한 채 시간이 흐르면 인간은 성장할 수 없다. 어려운 문제에 대응할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악 혹은 삶의 나쁜 단면들을 명확히 알지 못하면 선을 구분해 내기 어렵다.

그런데 피터슨은 그 악이란 것이 원래 인간 자체에도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단순화시키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해상도를 먼저 높이라고 주문한다.

우리가 아는 해상도란 컴퓨터상의 사진이나 이미지의 선명한 정도를 일컬을 때 쓰는 용어다. 그런데 해상도가 높다는 것의 실체는 그 이미지들이 픽셀이라는 미세한 사각형들로 매우 잘게 쪼개어져 있는 상태다. 즉, 픽셀 수가 많을수록 이미지가 더 선명해지는 것이다.

이 해상도란 개념이 인생과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그는 '문제를 정의할 때는 남을 탓하지 말고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크기로 개념화'하라고 조언한다. 뭉술하게 아는 것으로 남을 비난하고 세상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의 인생부터 더 잘게 쪼개어 그 선명도를 높히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려면 자신의 과거와 지금의 문제들을 '명확'하고도 '충분'히 이해해야만 한다. 나를 들여다보지 않은 채 세상을 향해 분개하고 냉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냉소에 빠진 채로 우리는 행복하기 어렵다. 나 자신 뿐 아니라 남을 믿지 못하게 된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이 세계를 더 낫게 만들 수 있다

냉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짐스러운 일들에 대해 힘들지만 책임을 다하라고 그는 말한다. 물론 그의 주장이 학교 교실의 칠판 위에 붙어 있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던 학급 교훈일 리는 없다.

피터슨은 인생의 짐을 회피하지 않고 책임을 다함으로써 우리 내부에 잠재력이란 것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 잠재력 때문에 우리는 인생의 갖가지 문제들와 역경들을 돌파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세상이 되는 데 아주 조금이라도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이 세계를 더 낫게 만들 수 있으며, 적어도 더 나빠지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조던 피터슨의 <질서 너머>의 일독을 끝내며 내가 꼽은 최고의 문장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결혼 후 10년 동안 한 아이의 엄마와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온 내 자리에 대해 늘 반신반의하던 사람에서 내 현실에 정확히 발 디디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를 낳기 전 세상사에 별 관심 없던 내가 아이를 키우며 불안하고 위험한 세상에 대해 예민해진 끝에 어쩌면 세상이 망할지도 모르겠단 생각까지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의 연결고리를 스스로 끊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건 내게 있어 엄청나게 큰 변화다. 그리고 이것이 내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임을 믿고 있다. 이제는 세상의 비극적 측면들을 들여다보는 데 좀 덜 겁이 나는 것 같다. 삶의 비극을 받아들이되 자신이 세상을 조금 더 낫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물론 이건 내 삶의 새로운 방향성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본인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https://blog.naver.com/fullcount99


질서 너머 -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12가지 법칙

조던 B. 피터슨 (지은이), 김한영 (옮긴이), 웅진지식하우스(2021)


태그:#조던피터슨, #질서너머, #독서 리뷰, #삶의 의미,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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