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새 명칭 체계를 발표했습니다. 새 체계에 따라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는 '알파', 남아공발은 '베타', 브라질발은 '감마', 인도발은 '델타'로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이름이 기존의 학명을 대체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B.1.1.7' 또는 'B.1.617.2'보다는 훨씬 기억하기 좋고 보도 혹은 토론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름(Label)만 별도로 붙인 겁니다. 애초에 '인도 변이' 혹은 '영국 변이'는 WHO가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변이가 발견된 지역을 따라 언론에서 붙인 이름이 그대로 굳어진 겁니다.
WHO는 2015년부터 새로운 질병의 이름을 정할 때 지명을 쓰지 않기로 정했습니다. 질병 이름에 국가나 지역 이름이 들어가면 낙인 효과와 함께 해당 지역에 대한 차별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발생한 지 100년도 더 된 '스페인 독감' 때문에 지금도 스페인이 받고 있는 유·무형의 피해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WHO의 이 새로운 명칭은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쓰이고 있을까요? 아래 사진은 JTBC 뉴스룸과 MBC 뉴스데스크의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관련 보도를 갈무리해서 비교한 것입니다. 차이가 느껴지나요?
비교를 위해 앵커의 멘트를 자세히 보겠습니다.
"'인도형 델타 변이'가 아주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오늘(25일)까지 77개국 세계 모든 대륙에 퍼졌습니다. 이보다 더 강력한 '델타 플러스 변이'도 11개 나라에서 발견됐습니다."
– 6월 25일 jtbc 뉴스룸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델타형이 최근의 확진 추세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델타 플러스까지 등장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이, 델타 플러스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 6월 24일 MBC 뉴스데스크
세계보건기구가 명칭 변경을 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고 있지만 방송사 대표 뉴스 프로그램에서 아직도 '인도형 델타 변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MBC처럼 '인도'란 지역을 넣지 않아도 이해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물론 JTBC 뉴스룸만 이러는 건 아닙니다. 검색을 해 보면 아직도 많은 언론이 '인도 변이' 혹은 '인도발 델타 변이'를 언급한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론만 이러는 건 아닙니다. 코로나 사태 해결의 최전선에 있는 정부 당국자의 브리핑에서도 '영국발 알파 변이'와 '인도발 델타 변이'란 표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 과학적 연구 결과와 해외사례를 분석해 보면 방역 수칙 준수와 예방접종이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유행하고 있는 영국발 알파 변이와 인도발 델타 변이는 예방접종을 통해 예방할 수 있습니다." -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 6월 23일 브리핑
애초에 '영국 변이', '인도 변이'라고 부르다가 갑자기 '알파', '델타' 등으로 바꾸면 국민들이 뉴스를 접할 때 혼란을 느낄 수 있어서 보조 설명 차원에서 붙여 부르는 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계속 그렇게 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는 모두 '우한 폐렴' 혹은 '우한 코로나'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모두 '코로나19'라고 부릅니다. 그래도 이 전염병이 달라지지는 않고 오해의 소지도 없습니다. '인도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그냥 '델타 변이 바이러스', '영국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그냥 '알파 변이 바이러스'로 부른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인도 변이' 혹은 '영국 변이'로 계속 부른다면 해당 국가와 구성원에게는 심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WHO의 5월 31일 발표 내용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발견한 장소에 따라 변이의 이름을 붙이는데, 이는 (해장 장소에) 낙인을 찍고 차별을 유발합니다. 이를 방지하고 공공 커뮤니케이션을 단순화하기 위해 WHO는 각국 정부, 언론 매체 및 기타 기관이 이러한 새 명칭을 채택하도록 권장합니다."
정부 당국과 언론이 이 권장 사항을 따라 주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