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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껏 살면서 많은 직업을 가져보지 못했다. 막 군대를 제대하던 무렵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친구들은 아직 취직도 못 하고 도서관을 다닐 때 돈까지 벌면서 원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하지만 세상 경험 부족으로 예상치 못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게 되었는데 그러고도 미련이 남아 미적거리다가 29살까지 집에서 뒹굴거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포기할 때 포기하고 끊어낼 때 끊어내는 것이 용기고 지혜다. 그러나 막상 내 일이 되다 보면 이게 참 어렵다. 이쯤에서 관두는 쪽이 훨씬 현명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면서도 괜스레 인정하기 싫어진다. 결국 시간만 가고 손해는 커진다. "일단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목표를 이어 나가라"는 지인들의 말도 무시한 채 고집만 부리다 생활고로 엄청 힘들었다.

지금도 29살 여름의 일이 생생하다. 잠깐씩 인력사무소에서 근근이 생활비 정도만 벌다가 안 되겠다 싶어 공장이라도 들어가 보자는 생각에 여기저기 취업 문의를 했다. 나이에서 걸렸다. 곧 있으면 서른이 되는 사람을 신입으로 들이기에 부담스러워하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그제야 현실을 깨달았다. 어리석은 나는 '공장이라도…'라는 건방진 생각을 했지만 현실은 '공장은 아무나 들어가냐'였다.

다행히 운 좋게 잠깐 1년 반 정도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고 그때 알았던 인연으로 인쇄 디자인을 배웠으며 지금까지 해당 업종 일을 하고 있다. 그 사이 잠깐씩 단기 아르바이트는 해봤지만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 점에서 막 결혼을 하고 아내가 임신한 상태에서 부부가 함께 저질렀던(?) 10개월간의 퀵서비스 경험은 지금껏 살아온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흔적 같이 느껴진다.

지금은 23개월 아들을 키우면서 수제 쌀 빵집을 하는지라 퀵서비스를 이용하는 입장이지만 당시를 생각해보면 아직도 생생하게 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같이 고생했던 아내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부부에게는 정말 특별한 10개월이었다.
 
10개월간의 퀵서비스 경험은 다른 일을 자신감있게 진행하는데 큰 자산이 되었다.
 10개월간의 퀵서비스 경험은 다른 일을 자신감있게 진행하는데 큰 자산이 되었다.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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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함과는 또 다른 영역, 퀵서비스 운영

정확히 말해 우리 부부가 한 것은 퀵서비스 운영이었다. 사업자를 내고 어플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리를 하면서 기사일까지 한 것이다. 그야말로 하루도 맘 편하기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세상사 많은 일이 그렇듯 지나고 나면 이렇게 추억이 되지만 당시에는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쳐갔던 기억이 난다.

하루 세끼에 간식까지 먹어대는데도 오히려 체중이 7~8kg이나 빠지기도 했다. 사실 퀵서비스 시작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그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나와 아내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일에 대해 궁리를 해보기는 했지만 퀵서비스는 후보군에조차 없었다. 예상치도 못한 일을 하게 된 사연은 한 지인에게 이른바 뒤통수를 맞은 게 결정적이었다.

한동안 고생을 하다가 큰돈을 벌게 된 지인은 나와 사회에서 만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성실성을 워낙 좋게 보고 있었던지라 노총각인 그에게 친척까지 소개 시켜주려고 했을 정도다. 친척이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지라 무산되고 말았지만 적어도 가족으로까지 받아주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쉽게도 지인은 같은 마음이 아니었다. 큰돈을 벌고 있음에도 별반 이익도 없을 조그만 나의 영역까지 욕심을 내서 치고 들어왔고 그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기에 이른다. 한술 더 떠 무단으로 내 자료까지 도용하면서 큰 실망을 줬다. 배신감에 만나서 얘기도 나눠봤지만 미안한 마음 같은 것은 조금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외려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만 끔뻑 거릴 뿐이었다.

연애 때부터 아내의 실천력은 장난이 아니다. 뭔가를 깊게 생각하고 움직이는 나와 달리 아내는 이거다 싶으면 일단 저질러버린다. 필요하다 느끼면 일단 시작하고 생각한다. 그때도 그랬다. 믿었던 지인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밤에 잠도 잘 못 이루는 나를 보더니 "오빠 우리도 퀵서비스 시작하자"며 팔을 걷어붙이는 것이었다.

맞다. 해당 지인은 퀵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고 우리도 같이 시작해서 경쟁해보자는 뜻이었다. 당시 아내는 임신 5개월을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아내는 늘 내 편에 서서 생각해주었고, 내가 뭔가 망설이고 있다 싶으면 옆에서 용기를 주고 먼저 저질러주었다(?). 당시에도 퀵서비스 운영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니 현실은 더 냉혹했다.

비슷한 업종인 대리운전 운영도 마찬가지겠지만 퀵서비스는 나만 부지런하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인력이 필요하다. 일이 순차적으로 들어온다면 하루 20시간인들 못 하겠냐마는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다. 배달대행 성격도 같이 띠고 있는지라 일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특히 피크타임 때가 있는데 그때는 대여섯 개씩 동시다발적으로 주문이 들어오는 경우가 태반인지라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한두 명이 감당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 동업 형식으로 지인들을 모셔오다시피 하면서 함께 하기로 했으나 이런저런 핑계로 시작 전부터 다들 빠져나가 버리고 결국 고정적인 인원은 나와 아내 단 둘뿐이었다.

고정 인력이 없다는 것은 사업 자체의 근간을 흔들었다. 일이 잘 진행되려면 영업을 해야했는데 사람이 없으니 마음껏 영업을 하기가 힘들었다. 제대로 영업을 못 하면 일이 안정적으로 들어올 리 만무했고 또 그로 인해 인력 충원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친한 친구들은 없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가까운 이들은 각자 사업을 하거나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멀쩡히 잘살고 있는 그들을 빼 올 수는 없지 않은가. 가끔 도움은 받았지만 그뿐이었다.

'부지런함으로 승부하는 일은 믿을만한 사람 다섯 명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피부 깊숙이 느끼는 순간이었다. 내가 20대만 같았어도 자리를 잡지 않은 친구들이 많았던지라 의기투합해서 인력난을 해결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말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는 것 같다.

힘들었던 순간, 이제는 자신감의 원천으로 남았다

일이 적든 많든 우리 부부는 10개월 내내 비상 대기조였다. 볼일을 보면서도 귀는 언제 울릴지 모르는 어플 벨 소리에 집중되어 있었고 몇 천 원짜리 일 1건을 처리하기 위해 밥을 먹다가, 쇼핑을 하다가도 뛰쳐나가가 일쑤였다. 심지어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갔다. 지인 얼굴 한번 보기 힘들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나의 본업은 광고디자인 사무실 운영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상가책자를 배포하는데 그 일 역시 사람이 없어서 늘 고생 중이다. 하지만 그런 날도 책자를 배포하면서 퀵서비스를 병행했다. 사람이 없는지라 아내는 관제를 보면서 만삭의 몸으로 짜장면 배달을 나가기도 했는데 출산 3일 전까지 일을 멈추지 않았다.

산후 조리원에 있을 때도 급할 때는 한 번씩 빠져나와 일을 도왔다. 아내가 자발적 의지로 한 것이기는 했지만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너무나 미안하다. 일은 아들이 태어나고 3~4개월 후까지도 유지해나갔는데, '아이를 위해서도 안되겠다. 육아라도 똑바로 하자'는 생각에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

결국 우리 부부에게 퀵서비스 10개월은 몸과 마음이 고생한 것은 물론 금전적 손해까지 안겨주었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어찌 살았나 싶을 정도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에는 손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시기를 겪고 나니 어지간한 일은 상대적으로 편하게 느껴진다.

지금 하고 있는 빵집은 시간이 정해져 있는지라 하루 종일 긴장 상태에 있을 필요도 없고, 어느 정도 계산된 상황 속에서 일과 휴식을 병행할 수 있다. 조금 힘든 상황이 닥쳐도 '퀵서비스 운영도 했는데 이까짓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내와 나에게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더 강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 같다.

세상 모든 일이 다 노력한다고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배우는 것은 분명 있다. 설사 만족할만한 성과가 없었다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을 얻고 다음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으면 된다. 자라나는 우리 아들에게도 꼭 해주고 싶은 얘기다.

태그:#퀵서비스 운영, #임신한 아내의 고생, #세상사 이치, #소중한 경험, #자신감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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