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요즘 종종 '먹거리에 진심인 민족'이란 말을 듣는다. 음식에 진심이 아닌 민족이 없겠지만 개인 먹방이 유행할 정도로 우리나라만큼 음식에 진심인 민족도 없을 것이다. 거리에서 익숙한 음악을 들으면 추억이 떠오르듯이 음식도 지난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어릴 적 마을에 큰 행사가 있는 날엔 돼지를 잡았다. 집에서 키우던 개를 잡을 때는 슬펐지만 돼지를 잡는 날은 신이 났다. 돼지 생간을 도마 위에 송송 썰어 놓으면 아저씨들이 주위를 에워쌌다. 소주를 한잔 들이켠 후 돼지 간을 소금에 찍어서 한입에 쏙 넣었다.
   
동네 아이들에게도 돼지 간이 한 점씩 돌아왔다. 나는 별로였지만 아저씨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던 생간을 맛있게 먹었다. 그날 저녁 밥상엔 고깃국이 올라왔다.

홍명진 소설가의 산문집 <엄마가 먹던 것을 내가 먹네>를 읽으며 어린 시절 마을에서 돼지를 잡던, 그것도 윗마을 아랫마을에서 두 마리나 잡던, 그날의 장면이 떠올랐다.
 
책 <엄마가 먹었던 음식을 내가 먹네>
 책 <엄마가 먹었던 음식을 내가 먹네>
ⓒ 걷는 사람

관련사진보기

 
집에서 누룽지를 싸오던 짝꿍

초등학교 오, 육 학년 무렵이다. 짝꿍이 집에서 누룽지(깐밥, 전라도 사투리)를 싸 오곤 했다. 짝꿍이 가져온 누룽지를 수업 중에 선생님 몰래 먹었다. 누룽지를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면 달달하고 고소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도시락 반찬은 일 년 내내 김치에 노란 다꽝(단무지)이었다. 교과서는 새빨간 김칫국물이 베였고 시큼한 냄새가 났다.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을 여는 손이 부끄러웠다. 어쩌다 도시락에 햄이나 계란말이가 들어 있는 날엔 어깨가 으쓱했다. 
 
그 시절, 도시락을 까먹는 점심시간이 없었다면 어떻게 학교를 다녔을까 싶다. 학교에 가면 점심시간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한창 먹을 때이기도 했지만 누가 무슨 반찬을 싸 왔는지에 관심이 쏠리는, 반찬의 여부로 부끄러움을 알 때이기도 했다. - p.168

사회 초년 시절... 회와 소주에 얽힌 이야기

바닷가에 살았지만 회를 좋아하진 않았다. 어머니가 회를 좋아하지 않으셔서 회를 먹지 않았다. 사람들이 회를 좋아하는 것도 회사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한 달에 서너 번은 회식을 했다. 횟집에서 회식을 하는 날은 고역이었다. 채소나 매운탕만 먹었다. 접시에 있는 회를 매운탕에 넣었다가 형들에게 욕을 한 바가지 먹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취업을 앞두고 두 가지를 다짐했다. 어른이 되어도 술과 담배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순진한 다짐이었다. 담배는 지금도 피우지 않는다. 하지만 술을 먹지 않겠다는 결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싫어? 싫으면 소주잔을 엎어 놓으면 돼."

회사 형이 술을 먹지 않으려면 잔을 엎어 놓으면 된다는 말을 믿었다. 기숙사에서 선배가 준 술잔을 들고 있는데 그 선배가 웃는 얼굴로 술을 마시지 않을 거면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이는데 잠시 후 그 형이 내 이름을 들먹이더니 한참 험담을 했다. 

볕 좋은 가을날 갔던 회사 야유회에서 생물 꽁치를 석쇠에 구워 먹었다. 잘 구워진 꽁치에 소금을 뿌려서 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스티로폼 박스에 가득하던 꽁치는 구워지자 마자 사람들 입으로 사라졌다.
 
생물 꽁치를 먹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신문지에 돌돌 말아 연탄불에 구워 먹기도 했다. 아버지가 꽁치를 굽는 방식이다. 마른 신문지에 물기가 묻어 종이가 쉽게 타지 않고 기름기가 쫙 빠지면서 신문지가 까맣게 변해갔다. - p.74

제주도에서 먹던 짭쪼름한 '성게 미역국'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청소년들과 제주도에서 캠핑 중 먹었던 성게 미역국도 기억의 한 공간을 차지 한다. 입안 가득히 짧쪼름한 제주의 바다 향이 넘치던 성게 미역국은 별미 중 별미였다.
 
아버지가 짠 성게 내장을 한 숟갈 떠서 밥에 맛나게 비벼 먹는 걸 보고 나도 따라서 먹곤했다. 짧짜름한 바다 향기, 심연 같은 깊은 바다의 냄새, 다시는 어디서도 맛볼수 없는 그 맛이 세월 지날수록 새록새록 생각난다. - p.152

출장이나 여행을 다니면서 다양한 음식을 먹었다. 자연스레 몸이 아프거나 입맛이 없을 때면 찾는 음식도 생겼다. 순대국밥이다. 처음엔 꼬릿 꼬릿 한 냄새가 나는 순대국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인생을 경험할 때마다 소주 한잔에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던 음식이 순대국밥이었다.
  
임실장터에서 파는 피순대국
▲ 피순대국 임실장터에서 파는 피순대국
ⓒ 김인철

관련사진보기

 
혼밥이 유행하고, 먹방을 보는 이유

유튜브 채널 중에 먹방이 몇 개 있다. 남이 먹는 것을 왜 보는 걸까? 의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먹방을 본다. 모든 음식을 먹을 순 없으니 먹방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어느 음식평론가는 먹는 행위를 '야한 장면'이라고도 했다. 쾌락을 탐닉한다. 탐식도 비슷하다. 쾌락의 본질에서 탐식과 탐닉은 한 끗 차이다. 탐식은 내밀한 행위이자 모두에게 허락된 관음이다. 

밥을 함께 먹는 일은 쉽지 않다. 불편한 동료나 상사와의 일 대 일 식사는 더욱 그렇다. 몇 초간의 침묵이 몇십 분처럼 길다. 먹을 때만큼은 눈치를 보고 싶지 않다. 자유를 원하지만 외롭지 않고 싶은 심리다. 혼밥과 먹방이 유행하는 이유다.

밀가루와, 베이킹소다, 슈가, 막걸리. 어머니는 집에서 '술빵'을 해 주셨다. 숭숭 구멍 뚫린 채반에 부풀어 오른 술빵은 식어도 맛있었다. 어릴 적 먹던 그 빵 맛을 잊지 못해 어머니에게 술빵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할머니가 만든 술빵을 들고 오셨는데 그 맛이 났다. 

씨엠립(캄보디아)의 올드마켓에서 먹던 쌀국수, 연변의 한 식당에서 먹던 냉면과 꿔바로우(탕수육), 백두산(장백산) 천지에서 먹던 흰꽃 빵과 구운 옥수수도 생각난다. 
 
연변의 한 식당에서 먹었던 연변식 '냉면'이다. 남한의 냉면도 아니고 북한의 냉면도 아닌, 연변식 냉면은 면이 굵었고 식감이 꽤 질겼다.
▲ 냉면 연변의 한 식당에서 먹었던 연변식 "냉면"이다. 남한의 냉면도 아니고 북한의 냉면도 아닌, 연변식 냉면은 면이 굵었고 식감이 꽤 질겼다.
ⓒ 김인철

관련사진보기

 
나이가 들어도, 맛집을 다녀도, 먹방을 즐겨 봐도, 여전히 먹지 못하는 음식이 있다. 토란국, 추어탕, 복어, 보신탕이다. 작가의 말처럼 "맛보지 못한 음식을 향한 그리움은 없으니" 이 음식들은 다른 이의 '그리움'이다.

책에 나오는 음식보다 내 추억 속 음식이 더 많다. 하지만 좋은 책은 독자의 생각을 환기시킨다. 책의 맛과 향기에 취한 탓일까. 곱새기 고기(55) '가자미식해(97)', 참도박(181) 맛이 궁금하다. 몇 년 전 한 점 먹고 포기했던 '과매기(79)'도 먹고 싶다. 고민은 오늘 저녁 메뉴다. 순대국밥, 해장국, 부대찌개. 식전 배가 홰를 치더니, 스르륵 침이 고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인철 시민기자의 <네이버블로그와 다음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엄마가 먹었던 음식을 내가 먹네

홍명진 (지은이), 걷는사람(2021)


태그:#홍명진, #산문, #음식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