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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검사의 폭행·폭언과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김홍영 검사의 사법연수원 41기 동기 법조인들이 2016년 7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대회의실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김 검사의 어머니 이기남씨가 참석해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책임자들에 대해 엄벌을 촉구했다.
▲ "진상조사로 아들 한 풀어달라" 부장검사의 폭행·폭언과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김홍영 검사의 사법연수원 41기 동기 법조인들이 2016년 7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대회의실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김 검사의 어머니 이기남씨가 참석해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책임자들에 대해 엄벌을 촉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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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업에서도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이게 사람의 문제인지, 시스템의 문제인지를 분석해 재발방지대책을 만드는데 국가조직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한 후 감찰만 하고 끝이라는 것인가요?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분석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했을 것 같은데 왜 이 자료는 제출하지 않나요?"

고 김홍영 검사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소송에서 4월 30일 김형석 재판장(서울중앙지방법원 제20민사부)이 피고 대한민국에 던진 질문이다. 

상관인 부장검사의 폭력과 폭언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김홍영 검사의 유족은 김 검사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난 2019년 11월에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유족들이 뒤늦게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가 없었고, 김홍영 검사의 명예가 회복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재판장의 질문 

지난 4월 30일 제5회 변론기일에 재판장은 피고 대한민국에 위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왜 재판장은 "사기업"과 비교하며 피고 대한민국에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일까?

약 1년 6개월에 이르는 국가배상소송기간 동안 피고 대한민국이 보여준 태도는 '사기업'에서 보여주는 태도와 사뭇 달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피고 대한민국이 소송과정에서 보여준 아래 두 가지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2020. 1. 8.자 피고 대한민국 제출 답변서 중 일부
 2020. 1. 8.자 피고 대한민국 제출 답변서 중 일부
ⓒ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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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대한민국이 소장을 송달받은 후 처음으로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는 위와 같은 내용이 담겼다. "적극적인 개선 노력 대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고 김홍영 검사의 죽음을 해석한 것이다. 부장검사의 상습적인 폭행·폭언으로부터 고 김홍영 검사를 보호하지 못한 국가의 답변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읽힌다. 

회사의 잘못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하는 건 사기업이 따르는 공식이다. 그런데 책임회피식 답변을 하는 국가의 모습은 사기업과 사뭇 달랐다. 

두 번째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자료제출과 관련하여 피고 대한민국이 국가배상소송에서 보여준 태도다.

고 김홍영 검사 죽음 이후 진행된 감찰의 결과가 담긴 결과보고서와 그 과정이 담긴 감찰기록은 국가배상소송에서 반드시 현출되어야 할 자료였다. 그러나 이 자료를 제출해 달라는 원고들의 요청에 피고 대한민국은 침묵했고, 유족들이 법원에 관련 문서를 제출하는 명령을 내려달라는 요청을 했을 때에도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에 의거해 감찰기록은 감사, 인사관리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비공개함이 원칙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2020. 6. 22.자 피고 대한민국 의견서(문서제출명령)
 2020. 6. 22.자 피고 대한민국 의견서(문서제출명령)
ⓒ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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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업이 보관하고 있는 자료와 달리 국가 등 공공기관의 자료에 대해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건 그 내용이 일반적으로 공개됨으로 인해 발생한 혼란을 막기 위한 것이다. 소송당사자로서 자신의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소송에서 국가자료이니 비공개라는 일반원칙을 운운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는 절대로 제출하지 않겠다는 책임회피식 태도로 읽힌다.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의 이런 주장을 배척하고 2020년 8월 24일 문서제출명령을 내렸다.  

재판장의 일침

사과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이 아닌 책임회피식 답변, 국가자료 비공개라는 일반원칙을 운운하며 재판에 필요한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책임회피식 태도 등 피고 대한민국이 국가배상소송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사기업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국가는 국가배상소송에서 당사자의 지위에 있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주체로서의 지위 또한 계속 유지된다. 그럼에도 사기업이 기본적으로 보여주는 태도에도 못 미치는 국가에 국가배상소송 재판장은 이번 변론기일에 이 묵직한 질문을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국가는 정말 이렇게밖에 답변하지 못하나요?'

재판장은 고 김홍영 검사 사망 이후 재발방지대책과 김홍영 검사의 명예회복에 대한 입장을 서면으로 5월 20일까지 제출할 것을 피고 대한민국에 요청했다. 6월 2일 조정기일을 잡았다. 고 김홍영 검사 유족들이 이 사건 소송을 통해 바라는 것이 단지 배상금이 아니라 국가의 사과 및 고 김홍영 검사의 명예회복이라는 점이 조정기일을 잡은 이유라고 재판장은 밝혔다. 

국가는 과연 이 질문에 대한 성실한 답변을 할 것인가? 이제라도 재발방지대책과 명예회복 조치가 이루어질 것인가? 이 재판은 아름다운 조정으로 마무리될 것인가? 오는 16일 고 김홍영 검사 사망 5주기를 마주하며 우리가 이 소송에 계속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인 최정규 변호사는 고 김홍영 검사 유족대리인으로 국가배상소송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태그:#고 김홍영 검사 국가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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