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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은 하루종일 떠들썩했죠. 바로 배우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소식 덕분이었습니다. 74세의 관록있는 배우의 수상이 더욱 뜻깊었던 건 한국 배우 최초라는 사실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유쾌하고 재치있는 수상소감도 조금은 영향이 있었을 겁니다. 사실, 그런 수상소감은 준비를 잘한다고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그의 수상소감이 더욱 빛났을 겁니다. 

윤여정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여러 매체에서 그녀를 다각도로 조명하는 기사를 내보냈고, 거기에 더해 그의 전 남편이었던 조영남의 인터뷰 기사도 나왔습니다. 사람들의 기억엔 연관검색어처럼 윤여정 하면 전 남편 조영남이 떠오르는지 그의 인터뷰 기사가 도돌이표처럼 여기저기에서 인용되어 나오기도 했습니다.

윤여정 수상 소식에 딸려오는 조영남, 왜 그럴까
 
미 아카데미상 시상식 레드카펫 밟는 배우 윤여정 2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리는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배우 윤여정(74)이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윤여정은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그가 출연한 영화 '미나리'는 이번 시상식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미 아카데미상 시상식 레드카펫 밟는 배우 윤여정2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리는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배우 윤여정(74)이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윤여정은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그가 출연한 영화 '미나리'는 이번 시상식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 EPA/연합뉴스

사실, 저는 윤여정에 대해 잘 알기엔 젊은 세대입니다. 제 또래의 사람들이 배우 이순재님을 '빵꾸똥꾸 할아버지'로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윤여정은 <꽃보다 누나>라는 예능프로그램으로 확실히 각인된 배우입니다. "나도 70살은 처음이야"라는 명언을 남겼죠. 

그렇게 우아한 농담을 하는 배우구나 했던 윤여정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는 사실 중에는 이혼한 경험과 바람난 남편, 그리고 미국에서의 이민생활과 (시급 알바를 하며) 두 아들을 홀로 키운 어머니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이혼녀가 환대받지 못하는 한국사회에서 그야말로 먹고살기 위해 배우로서 열심히 고군분투했던 지난한 삶이 있었습니다.

이토록 영화같은 삶이라니, 그가 매력적인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꽃길만이 아닌 가시밭길을 걸어온 그는 그 삶의 여정만으로도 매력이 차고 넘쳐 보였습니다.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운 위대한 어머니의 성공담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에요. 오랜 꿈을 키워나가 마침내 성공한 대기만성 배우를 말하고자 함은 더더욱 아닙니다.

물론 그런 시각도 의미 있다는 것을 압니다. 다만 저는 윤여정의 기쁜 수상소식과 수상소감 그리고 그녀의 인터뷰에서 그 지난한 시간을 담담하고 꿋꿋하게 살아낸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뿐입니다.

그 분의 가정사에 대해 시시콜콜 알 수는 없지만 미국으로 이민 가서, 집 나간 남편 대신해 두 아들을 홀로 키워내고, 무작정 한국으로 돌아와 배우로서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닌, 먹고 살기 위해 연기를 했다는 윤여정의 인터뷰는 많은 울림을 주었어요.

그 옛날, 가부장 시대에 목소리도 이상했다는 이혼한 여자 배우가 정글같은 연예계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겠죠. 아마 잘은 몰라도 그 수많은 모진 세월을 버텨내기 위해 감각의 날을 조금 무디게 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기를 공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를 갈며 '성공할 거야! 두고 보라지!'라는 독한 결기를 뿜어내기보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남을 수 있고, 할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을 것 같아요. 그 감사가 그의 내공이 되었고 버티게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감정이입의 과잉인가요? 설사 윤여정이 마음 속으로 '한국 최고의 배우가 될 거야!'라는 칼날만을 갈았더라면, 우리는 그녀의 오스카상 수상 소식은 들었을지 몰라도 그녀의 우아한 수상소감은 듣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우아한 수상소감으로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으면 좋았을 이 기쁜 이벤트에 슬쩍 존재감을 발휘한 이가 있었죠. 바로 그녀의 오래 전 남편 조영남입니다.

그는 윤여정의 수상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들이 보기에 내가 언급하는 게 안 좋다고 하고 부정적으로 보기도 해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면서도 "나는 그냥 축하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말했어요. 그러면서 "이 일이 바람 피우는 남자들에 대한 최고의 멋진 한 방, 복수 아니겠나"며 "바람 피운 당사자인 나는 앞으로 더 조심해야지"라고 덧붙였다고 신문은 전했습니다.

'축하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데 동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언감생심이죠. 윤여정 배우는 조영남에게 복수를 꿈꾸며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후지게 살았을라고요. 그리고 그녀의 수상이 그 어떤 복수가 되는 것도 원치 않았을 것 같아요. 그와 상관없이 그녀의 길을 묵묵히 걸었을 윤여정 배우를 생각하니 조영남의 인터뷰가 참 무례하게 느껴집니다. 

배우 윤여정 닮아가기

저는 조영남도 말한 것처럼 '(윤여정에 대해 말하는 게) 안 좋다고 하고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는 이런 인터뷰가 왜 나왔을까 궁금했어요. 아마도 결혼이라는 무서운 관습이 자리잡고 있을 것입니다. 결혼이라는 제도 아래 자식도 두었으니 남이어도 남 같지 않은 그런 습관적 시선이요. 압니다. 아무도 거기에선 자유로울 수 없겠죠. 

그렇지만 가족이 가족일 수 있는 건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한 시간에 있을 겁니다. 혼자 편하게 즐기며 살아온 사람에게 혈연이라는 잣대를 드리우며 가족이라는 보이지 않는 굴레를 강요한다면 그 또한 가족이라는 위대한 단어로 포장한 폭력이 아닐까요?

두고두고 회자될 윤여정님의 수상소감은 볼수록 새록새록 기분이 좋아질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말 어느 한 구석에도 자신을 높이는 노욕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겠죠. 그녀의 품격있는 유쾌함, 고단한 삶이 주는 경륜, 그런 격조있는 사람을 자주 보고 싶다는 바람도 가지게 됩니다.

어쩌면 '윤여정 닮아가기'는 삶을 대하는 그의 자세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도 그리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이 지난한 시간을 잘 견디고 나면 우리 삶에도 그런 여유와 품격이 자리하고 있을 수도 있을테니까요. 

비록 74세가 되어서 오스카상을 수상하지 못하면 어떤가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유쾌하고 격조있는 농담을 건넬 수 있는 우아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삶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시한번, 윤여정 배우님의 오스카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윤여정오스카#오스카상#조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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