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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재석 266인, 찬성 164인, 반대 44인, 기권 58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1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재석 266인, 찬성 164인, 반대 44인, 기권 58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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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국회에서 논의도 되지 못한 채 폐기되었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020년 10만 국민동의운동의 힘으로 국회 논의를 강제했다. 이어진 산재재난 피해가족들의 농성투쟁, 비정규직들과 유가족들의 단식투쟁, 노동자들의 민주당사 점거투쟁, 시민들의 동조단식으로 2021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의결되었다.

피해가족들과 노동자‧시민들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생명과 안전을 우선가치로 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으로 마음을 다독였다. 법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으나 재해가 더 많이 발생하는 곳에는 법 적용이 제외‧유예되는 것을 포함하여 앞으로 바꿔나가야 할 것들이 많다.

당장은 2022년 1월 27일부터 적용될 법의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이 남아있다. 2020년 산안법 전면개정과정에서 우리는 이미 시행령을 통해 법 취지가 더 무너지는 것을 겪었기에 이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 3월 25일 경총 등 7개의 경제단체들이 '중대재해처벌법 보완입법안'을 제출했다. 그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하지 않은 채 제정되어 문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007년부터 논의되어 왔고 사회적으로 계속 제기되어 왔던 문제다.

외면하고 무시한 것은 재계와 국회였다. 지금까지 무시 외면하다가 법 제정이 현실화되자 줄곧 반대만 해왔던 경제단체들이다. 산업재해와 시민재해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지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지금까지처럼 그들만의 주장을 할 수는 없다. 경제단체들은 더 적은 책임, 더 적은 처벌, 더 많은 무책임한 권한, 더 많은 회피의 기회를 가지고 싶은 것뿐이다.

노동자 한 명이 사망하는 건 중대산업재해가 아니다?

경총을 위시한 경제단체들은 중대산업재해라고 부를 수 있는 재해를 최소화하라고 한다. 얼핏 들으면 중대산업재해 자체를 줄이자는 말로 들릴 수 있지만 그게 아니다. 중대산업재해의 기준을 바꾸자는 주장이다. 이미 중대재해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못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 후에나 적용이 된다.

지난 2월 4일 고용노동부가 산재사망사고 감축 추진방향발표에서 밝힌 2020년 9월 기준(건설업 제외) 사업장규모별 산재사망사고자 현황을 보면, 전체 사망자 중 5인 미만 사업장에서 30.2%, 5인~50인 미만 사업장에서 47.6% 발생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을 유예하거나 제외한 50인 미만 소규모사업장에서 전체 사망사고의 77.8%가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지금 경제단체의 훼손입법안은 더 나아가 1명의 노동자가 재해로 사망하는 건 중대산업재해가 아니라고 말한다. 2명 이상 사망해야 하고, 급성중독도 5명 이상 발생해야 중대산업재해로 인정하자고 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2018년 김용균의 죽음은 중대산업재해가 아니게 된다. 또한 수만 종의 유해물질들이 있는데 그 물질의 유해성을 확인해야 하는 기업의 책임은 방기하고, 670여 종의 중점관리물질을 쓸 경우에만 중대시민재해로 규정하자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대로 한다면, 중대재해로 인정되는 기준이 높아져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해 재해를 예방하고 처벌할 수 있는 경우가 적어진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자체가 무력화되고 실효성이 없어진다.

그로 인해 훼손입법안을 낸 경제단체들은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하고 또다시 산재가 반복되어도,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가면서도, 비용과 경제활동위축 우려만 읊어댈 것이다. 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었는지 그들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

꼬리자르기를 허용하라?
 
산업재해나 대형사고가 났을 때 기업과 경영자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 처벌법이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중대재해법은 산재나 사고로 사망자가 나오면 안전조치를 미흡하게 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한다. 법인이나 기관도 5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이날 오후 서울 시내 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 크레인에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산업재해나 대형사고가 났을 때 기업과 경영자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 처벌법이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중대재해법은 산재나 사고로 사망자가 나오면 안전조치를 미흡하게 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한다. 법인이나 기관도 5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이날 오후 서울 시내 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 크레인에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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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재해는 권한이 있는 사람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안전보건조치를 위해 회사의 시스템도 구조도 바꾸고 인력과 재정 배치권한이 있는 경영책임자는 재해와는 언제나 거리가 멀었다. 어떤 산업재해, 시민재해가 일어나도 경영책임자가 권한만큼 책임지고 수습하고 처벌받고 예방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삼성중공업 크레인충돌사고도 현장에서 일을 한 크레인 신호수들이 처벌을 받고, 공기단축을 결정하고 사고원인을 제공한 이들은 책임지지 않았다. 그래서 경영책임자가 권한만큼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담았다.

그랬더니 훼손입법안을 통해 경영책임자를 1명으로만 하고,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은 안전보건관리책임자도 경영책임자로 하자고 한다. 영락없는 꼬리자르기다. 다만 현장담당자라는 꼬리에서 조금 올라와서 안전보건관리책임자라는 위치변경만 있을 뿐이다. 새로운 방패막이를 세우는 것뿐이다.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경영책임자의 권한만큼 노동자를 뽑고 배치하고 안전비용을 지출할 수 있는가. 재해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하청도급을 없애자는 대안을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실현할 권한이 있는가. 경영책임자의 권한은 위임될 수 없기 때문에 책임도 위임될 수 없다. 지금도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있는 사업장이 있고, 그곳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그들이 경영책임자 대신 처벌받고 있다.

거기다가 원청의 권한은 그대로 쥐고 있으면서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길 수 있도록 '하청업체의 안전보건관리체계 마련과 이행'은 원청업체의 책임과 의무에서 제외해달라고 한다. 예산과 인력, 시설 배치와 운영 등은 모두 원청이 하고 있기에 하청업체가 원청과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런데 원청은 하청이 잘하는지 살펴보는 의무만 가지겠다고 한다.

한익스프레스 화재사고로 38명이 사망했지만 한익스프레스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현재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김용균의 죽음에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이 책임이 있다고 진상조사되었지만 처벌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안전관리 전문기술을 보유한 업체에 안전보건업무를 위탁한 경우는 경영책임자는 면책해달라고 한다. 책임의 외주화까지 왔다.

이렇게 하청업체‧방패막이 사람‧외주책임업체를 만들고, 떠넘길 책임도 축소하자는 게 경제단체가 내놓은 훼손법안이다. 책임처벌의 방패막이를 만들고, 경영책임자가 져야 할 안전보건조치를 줄이자는 것이다.

경영책임자 처벌은 늦추고 형량은 낮춰야?

경제단체가 내놓은 훼손법안은 '종사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및 처벌규정'을 만들어서 노동자들에게 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산업재해의 원인이 작업자의 과실이라는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보여주는 주장이다. 벨트컨베이어가 돌아가는 점검구에 몸을 집어넣어야 점검작업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놓고는 컨베이어벨트에 빨려 들어간 김용균 노동자에게 책임을 묻는 꼴이다.

이래놓고도 만에 하나 법인과 기업주, 경영책임자가 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를 위해 하한징역형을 없애고, 벌금은 낮추고,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은 5배에서 3배로 낮추자고까지 요구한다. 2022년 1월 27일 시행예정인 법을 무조건 2년간 유예하고 50인 미만 하청업체 재해에 대해서는 원청은 책임이 없다는 특례까지 요구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솜방망이 처벌로 경영책임자와 법인이 개선노력도 기울이지 않아 재해가 반복되는 것을 바꾸기 위해 처벌을 강화했고, 하한징역형도 도입했다. 하청에게 책임을 떠미는 원청이 책임지고 산업재해를 줄이도록 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그런데 지금 경제단체가 내놓은 법안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없애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낸 것뿐이다.

경총 등 재계는 산업재해, 시민재해를 줄일 생각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을 거론하면서도 죽음을 막기 위한 계획은 없다. 한해 2400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죽고 11만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한다. 대기업인 SK케미칼이 하청업체를 통해 만든 유해화학물질 원료와 제조과정으로 인해 노동자도 시민도 피해를 입은 것이 가습기살균제 참사다. 국민의 목숨으로 돈만 벌려는 자본의 생각이 달라지지 않는 한 '산재1위 공화국' 대한민국은 달라질 수 없다.

국민들이 요구하고 국회가 만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최소한의 생명안전사회를 위한 기업의 책임을 묻고 있다. 노동자와 시민들의 생명을 지키고 살리기 위해 피해자들이 모이고, 피해유가족들이 추위에 덜덜 떨며 비정규노동자들과 같이 단식투쟁을 해서 만든 법이다. 우리도 지금의 중대재해처벌법이 만족스럽지 않다. 더 많이 개선되어야 하고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재계가 내놓은 법안은 산업재해와 시민재해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경영책임자와 기업의 요구를 반영했을 뿐이다. 기업의 이윤추구가 만든 죽음과 피해를 그들은 아직도 보지 못하고 있고 책임질 생각이 없다.

시행령제정으로 생명을 더 지켜낼 수 있도록 우리는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 지키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동자‧시민의 연대를 확대하여, 재계에 대응하고 법을 개선하도록 힘을 기울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에서는 국회에서 통과된 '중대재해 등에 관한 처벌법'(중대재해법)에 대해, 법 취지를 고려하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고 명기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태그:#김용균재단,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중대재해처벌법, #기업의 사회적책임, #보완입법안
댓글2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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