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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드문 야산은 적막강산이다. 가는 눈발까지 내린다. 바람에 흩날리는 싸라기 눈발은 고요한 산속을 신비감에 젖어들게 한다. 조용히 새봄을 기다리는 겨울나무는 하늘을 향해 묵묵히 서 있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숨죽이며 스산한 바람 한 점, 조각 볕에도 감사한다.
  
인적이 드문 겨울산은 고요함이 흐릅니다.
 인적이 드문 겨울산은 고요함이 흐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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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우거진 산길. 싸한 바람이 볼을 스친다. 볼에 닿는 차가움이 싫지 않다. 고요한 숲에 아주 작은 새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새소리에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그런데 이게 뭔 소리인가?

'따다닥 딱딱! 따닥 딱딱딱!' 가만히 귀기울여보니 딱따구리 소리가 분명하다. 목숨을 건 듯한 집중력으로 딱따구리가 나무를 찍어내는 소리다.

어디서 들리지? 녀석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소리 나는 곳을 찾아 살금살금. 눈발 사이로 이 나무 저 나무 올려다본다. 한참 만에 참나무 삭정이 끝에서 녀석의 얼굴을 가까스로 찾았다.

내가 훔쳐보는 걸 녀석은 아직 눈치 채지 못했다. 그저 온 힘을 다해 부리로 나무를 쪼아댄다. 나무 찍는 소리에 리듬이 실려 있다. 딱따구리 한 마리의 몸짓이 작은 울림이 되어 고요한 숲속에 메아리를 남긴다.
  
▲ 딱따구리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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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 녀석이 노리는 목표는 뭘까? 날카로운 부리로 나무껍질을 뚫는 게 분명하다. 먹이를 찾는 걸까, 아니면 알을 낳으려고 둥지라도 준비하는 걸까. 녀석의 알다가도 모를 행동은 멈출 줄을 모른다.

다른 날짐승들이 저렇게 일을 하면 어떻게 될까? 부리는 뭉개지고 뇌진탕으로 쓰러지고 말 것이다.

신비스런 딱따구리의 몸짓

딱따구리는 까막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쇠딱따구리, 크낙새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9종이 텃새로 서식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특히, 거의 자취를 감춘 크낙새는 천연기념물 197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내게 얼굴을 보여준 딱따구리는 몸 색깔이나 크기로 보아 쇠딱따구리가 아닌가 싶다.
 
딱따구리가 나무에 붙어있을 때는 우아한 자태를 뽐냅니다.
 딱따구리가 나무에 붙어있을 때는 우아한 자태를 뽐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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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는 발톱이 날카로운데다 꽁지깃이 빳빳하고 뾰족해 나무에 걸터앉기 쉽고, 나무에도 잘 기어오른다. 부리는 날카롭고 단단해 나무껍질을 쪼아댈 때 '딱딱딱' 소리가 나 딱따구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탁목조(啄木鳥)란 한자이름도 그럴 듯하다.

딱따구리는 나무껍질을 쪼아 구멍을 내고, 갈고리 같은 혀로 나무 속 딱정벌레의 유충 같은 벌레를 잡아먹는다. 암수구별은 머리 색깔로 구분하는데, 머리에 붉은색이 있으면 대개 수컷이다.

딱따구리 녀석, 무슨 재주로 딱딱한 나무에다 박치기를 해대며 구멍을 뚫을까? 머리에 받는 충격은 엄청날 것 같다. 그들이 수도 없이 반복하여 낸 커다란 구멍을 보면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딱따구리가 나무에 구멍을 내는 재주는 두개골 구조가 독특함에서 찾는다. 부리는 단단하면서도 신축성 있고, 또 부리와 뇌 사이에 안전띠 역할을 해주는 설골(舌骨)이라는 게 있어 스펀지처럼 충격을 완화해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딱따구리가 나무구멍을 뚫는 비밀이라고 믿는다.

초당 10~20회, 시속 25Km 속도로 나무를 쪼아대는데, 딱따구리가 멀쩡한 머리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신비스러울 뿐이다. 
 
삭정이 나무에 붙어 있는 딱따구리의 모습
 삭정이 나무에 붙어 있는 딱따구리의 모습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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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의 모습을 담으려는데 휴대폰으로는 역부족이다. 높은 위치에서 일을 벌이는데다 눈발까지 날려 좀처럼 녀석의 얼굴을 담기가 만만찮다. 가까스로 딱따구리 모습을 붙잡았다. 만족스럽지가 않다. 희미한 얼굴을 영상으로 담아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야산에서 딱따구리 소리를 가끔 들었지만, 녀석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딱따구리가 펼친 라이브 '난타공연'! 숲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이 함께 즐긴 향연이었을 것 같다. 이 시간만큼은 나의 귀를 뚫고, 눈을 붙잡아두기에 충분하였다. 나는 오늘 운이 참 좋았다.

딱따구리

운수 좋은 날
나무숲에 가면 딱따구리를 만난다.
박치기 기술
피를 물려받은 걸까
누구한테 가르침을 받았을까
정신없이 나무를 찍어대는데
머리는 다치지 않았나?
내 작은 발자국 소리에
푸드득 활개치며 날아간다.
안심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2월 29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나즈막한 야산에서 딱따구리를 만났습니다.


태그:#딱따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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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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