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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고유한 정치가 이중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하나는 문재인 정부와 현 여권이 절차주의라는 유사 정치에 매몰되어 기술관료와 법전문가에 권력을 내주는 탈(포스트)정치에 압도당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개신교 극우 세력과 결합된 태극기 집단의 포퓰리즘 정치가 촛불 시민이 연 고유한 정치의 공간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촛불 시민의 고유한 정치적 영역을 연 '사건'이 일어났다. 여기서 사건이란 알랭 바디우의 용어로 '진실'이 드러나 프레임 전환이 발생하는 사태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건의 예로는 '박근혜 탄핵 집회'와 '검찰 개혁과 조국 수호를 위한 서초동 집회'가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검찰의 권력 남용 진상이 밝혀지자, 촛불 시민의 분노는 보수에 유리했던 기울어진 운동장을 뒤집어 놓았다. 이로 인해 보수 세력은 연달아 선거에서 지고 말았다. 

검찰의 선별적 수사, 과잉 수사, 공작 수사, 기소 편의주의의 민낯이 이른바 조국 가족에 대한 과잉 수사로 인해 드러나자 검찰개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찰 개혁은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의 요구로 나타났고,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거부 사태는 탄핵 요구로 프레임이 바뀌고 있다. 촛불 시민은 법전문가들의 탈정치를 자신들이 연 고유한 정치적 공간과 민주주의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최근 뉴라이트 지식인과 일부 진보 지식인들은 촛불 시민을 '광장의 파시즘'과 같은 학술적인 언어를 동원하여, 태극기 집회와 유사한 포퓰리즘으로 매도한다. 보수 언론은 촛불 시민의 정치적 사건을 '극성 지지층'이나 '빠 정치'라는 선정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촛불 시민의 목소리를 극우 정치와 같은 포퓰리즘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참고를 위해 저명한 현대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젝이 제시한 현대 정치의 병리적인 다섯 가지 형태를 살펴본다. 지젝에 따르면 '탈정치'라는 유령이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탈정치는 정치적인 갈등의 고유한 논리를 부인한다. 그래서 정치적인 '사건'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도리어 정치적인 사건의 출현을 방해한다. 
  
탈정치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부정'이라는 방어 메커니즘 중 도착증적인 부인(disavowal)에 해당한다. 부정(Negation)은 무의식이 저항하는 방어 메커니즘이다. 부정에는 억압, 부인, 거부 등이라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 

'억압'은 부정하고 싶은 감정이나 지식을 억누르는 심리 과정이다. 신경증적인 정신 구조가 이러한 억압을 본질로 한다. 억압에 많은 심리적 에너지를 집중하기 때문에 히스테릭한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다. 

'거부'는 폐제로서 부정적인 감정이나 지식을 아예 봉쇄하는 방어 심리이다. 정신병적인 정신 구조는 거부(폐제)의 형태이기 때문에 비논리적인 언어나 태도를 보인다. 

'부인'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방어 메커니즘이다. 도착증적인 정신 구조가 부인의 형태를 취한다. 도착증자는 자신을 큰 타자의 도구, 예를 들어 조직의 도구나 시청률의 도구로 보는 경향이 있다. 마찬가지로 종교적 근본주의자는 자신을 신의 도구로 본다. 일본의 가미가제 전투기 조종사는 자신을 국가와 천왕의 도구로 보고 스스로 폭탄이 된 것이다.

자신을 이윤의 도구로 보는 자본가도 도착증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수전노는 자신을 돈의 도구로 본다. 돈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한다. 경영자는 비용과 이익의 숫자에 집착하여 인력 구조조정에 매몰돼 직원들의 고통을 알면서도 외면한다. 특수부 검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기 조직의 이익을 위해 과잉 수사를 하면서도 정의의 이름으로 불의를 덮는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지젝의 <이라크>에 따르면, 신경증적인 억압의 사례는 큰 타자의 금지로 인한 억압과 관련해, 감정적인 차원이 아니라 관념적인 방식으로 사실을 모른 척한다.

"난 결코 당신에게서 주전자를 빌린 적이 없어요."
"온전한 상태로 주전자를 당신에게 돌려주었잖소."

정신병적인 거부의 사례는 상징적인 큰 타자를 배제하고 있어 전혀 논리가 서지 않은 말을 한다.

"당신이 내게 주전자를 빌려주었을 때 이미 그 주전자는 구멍이 나 있었어." 

일부 정치 검사는 조직의 도구로 전락한 도착증적인 증세를 보이고, 일부 편향된 판사는 비논리적인 판결을 내린다. 일부 보수 언론과 기자는 이것이 정의라고 말한다.

고유한 정치에 대한 일련의 도착증적인 '부인'들이 있다. 랑시에르의 구분을 본받아 지젝은 이러한 정치 도착증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다. 

1. 원형(arche)정치. 공동체주의자는 전통적인 폐쇄된 유기적으로 구조화된 동질적인 사회 공간을 정의하려고 시도한다. 이 공간은 정치적인 순간, 즉 사건이 출현할 수 있는 공허에 대한 여지를 주지 않는다. 신좌파적인 공화주의나 신보주의적인 공화주의 모두 이러한 원형 정치의 형태로서 타락 이전의 태고적인 형태의 공동체에 대한 일종의 향수이다. 

2. 유사(para)정치. 절차 민주주의적인 사회계약론이 이러한 정치 형태를 잘 보여준다. 전략적인 합리성을 강조하는 홉스적인 모델과 보편적인 절차를 강조하는 하버마스/롤스 모델이 있다. 이는 정치를 경찰의 논리로 바꾸어 탈정치화하려는 시도이다.

보편주의자는 정치적인 갈등을 받아들이지만 이를 대의제 공간 안에서 행정권의 자리를 일시적으로 차지하기 위한 이미 인정된 정당과 기관들 사이의 경쟁으로 재구성한다. 이는 경쟁적인 소송 절차에 불과하며 고유한 의미의 정치로 폭발하지 못한다.

3. 메타(meta)정치. 경제가 정치의 메타이다.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나 신자유주의의 과학적 경제학이 그 예이다. 경제결정론을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자나 공상적인 사회주의자는 정치적 갈등을 충분히 인정하지만, 이는 그림자 극장에 불과하다.

여기서 사건들의 고유한 장소는 다른 장, 즉 경제적 과정에 있다. '진정한'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치가 스스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집단 의지의 충분히 자명한 합리적인 질서 안에서 사람에 대한 관리가 사물에 대한 관리로 변형되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 행동을 효용 극대화라고 규정하는 신자유주의나 사회의 경제적인 토대에 의해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논리를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는 고유한 의미의 모든 정치 차원을 무시한다. 이러한 무시의 결과는 억압된 정치적 차원이 다시 폭력적으로 귀환하는 스탈린주의와 같은 현상에서 잘 나타난다.  

4. 가장 교묘하고 급진적인 버전의 거부인 극단(ultra)정치. 이는 랑시에르가 언급하지 않고 지젝이 만든 용어이다. 극단 정치의 대표는 나치즘과 파시즘 또는 미국의 네오콘과 같은 극우 전쟁광의 테러리즘이다. 이는 정치의 직접적인 군사화를 통해 갈등을 극단화시킴으로써 이를 탈정치화하려는 시도이다.

다시 말해 갈등을 우리와 우리의 적인 그들 사이의 전쟁으로 재구성한다. 여기에는 상징적인 갈등을 위한 공통의 근거가 없다. 극우는 계급 투쟁이 아니라 계급 전쟁 또는 인종 전쟁이라고 선언한다는 점은 지극히 증상적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인 것의 도착증은 그래도 아직은 정치적인 차원에 속한다. 정치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뿐이다. 그런데 아예 정치를 아예 정신병적으로 거부하는 형태가 있다.

5. 탈(post)정치. 이는 정치를 기술관료적인 관리의 형태로 바꿈으로써 정치적인 갈등을 해소하려는 형태이다. 탈정치에서는 권력을 향해 경쟁하는 상이한 정당들로 구현된 지구적인 이데올로기적인 비전들의 갈등이 계몽된 기술관료들(경제학자, 여론 조사 전문가, 법 전문가 등)과 자유주의적인 다문화주의자들의 협조로 대체된다.

이해관계의 협상에 의한 타협이 보편적인 합의의 위장된 형태로 이루어진다. 탈정치는 낡은 이데올로기적 구분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탈정치란 주권자에 의해 선택되지 않은 기술관료와 법 전문가들이 전문성을 내세워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빌미로 지배 권력으로 등장하는 경향이다. 

지젝에게 정신병적인 탈정치는 오늘날의 정치적 경향들을 총체적으로 진단하는 용어가 되며 앞의 네 가지를 포함한다. 브라질에서 일어난 연성 쿠데타가 바로 이러한 탈정치의 산물이다. 탈정치를 내세우며 관료와 검사나 판사가 정치적인 정책이나 수사, 판결을 통해 국민이 선택한 정당한 정부를 위협하고 전복시키고 말았다.

현 정부와 여당이 탈정치의 세력을 견제하고 억누르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촛불 정신의 시대적 과제이다.

촛불 시민이 연 고유한 정치 공간에 세워진 현 정부와 거대 여당은 절차라는 유사 정치에 매몰되지 말고, 그들이 준 힘으로 탈정치의 쿠데타를 신속하고 과감하게 제압해야 한다.

태그:#탈정치, #유사정치, #부정의 심리 메커니즘, #촛불 시민, #진실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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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연구자로서 정치존재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장자와 푸코를, 지젝과 원효, 바디우와 나가르주나, 헤겔과 의상 등 동서양 정치존재론의 트랜스크리틱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전에 상지대학교 교양대학에서 인문학과 철학을 강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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