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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나 'SKY'만 조명하는 우리 사회에서 한 켠에 밀려나 조명받지 못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8월부터 학력으로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청년들을 마주했습니다. '전문대 출신 기자는 처음이시겠죠'는 전문대 간호학과 출신인 제가, <대학알리>에서 활동하며 저와 닮은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가감 없이 전하는 인터뷰 기획입니다. 이번 편은 전문대 출신으로 배우를 꿈꾸는 이채정씨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입니다.  [기자말]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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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밸류라고들 하죠. 배우를 직업으로 해서 밥 벌어 먹고살 거라면 연극영화과로 유명한 대학은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배제할 수 없었어요." 

전문대인 OO여대를 다니는 이채정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배우를 꿈꿔온 청년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진학하는 게 '일반적인 루트'로 취급되는 한국에서, 그도 크게 다르지 않은 길을 밟았습니다.

대학에 진학해, 연기라는 분야를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OO여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습니다. 채정씨는 지금, 그 선택을 어떻게 복기할까요. 

밥 벌어 먹고 살 거라면 대학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처음부터 OO여대를 희망해서 온 것은 아니었어요. 모두들 그렇듯 4년제 대학교나 예술 쪽으로 유명한 대학교로 진학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지 못해 OO여대로 입학하게 되었어요. 

졸업 후 편입을 계획했어요. OO여대 교수님들의 강의력도 만족했고, 전반적으로 즐겁게 학교생활을 했지만 어느 한구석에서 풀리지 않고 남아 있던 배움의 갈증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아요. 둘째로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했어요. 다른 전공분야에 계신 분들도 비슷하시겠지만, 특히 예술계 쪽은 대학 선후배 인맥으로 인해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전문대 졸업 후의 미래가 막막했죠. 마지막으로는 네임밸류라고들 하죠. '배우를 직업으로 해서 밥 벌어먹고 살 거라면 연극영화과로 유명한 대학은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배제할 수 없었어요. 이 생각은 입시 준비 시절, 아버지께서 '연기할 거면 한예종은 나와야지' 하셨던 말씀이 뇌리에 박혀 무의식적으로 생긴 게 아닌가 싶어요."


채정씨에게 전문대생으로서 갖는 두려움을 물었을 때, 채정씨는 말했습니다. "전문대를 졸업한 제 친구들 중, 자신의 대학을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고. 

"친구의 그런 모습은 사회의 시선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어요. 사회에서는 여전히 전문대를 차별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없진 않으니까요. 학원 보조교사 아르바이트 공고를 봐도 조건이 '4년제 대학교 재학 또는 졸업'이더라고요. 보통 학원 보조교사 아르바이트생이 하는 일은 답안지를 보고 채점하는 일, 시험감독과 분리수거 정도인데 말이죠."

채정씨는 최대한 학벌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30초 영화제 출품작, 지인의 졸업작품 M/V 등에 배우로 참여했습니다. 또, 연기는 아니지만 프로필 스튜디오 모델 및 메이크업학과 졸업 작품 모델 등의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에서는 미처 할 수 없었던 경험들입니다. 모든 활동이 즐거웠고, 개인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채정씨의 걱정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닙니다. 

"졸업 후 걱정되는 부분들이 많아요. 배우로서 실력이 아주 뛰어나다면 그래도 큰 걱정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학연 지연이 중요한 예술계에서 학교 연극 교사/강사, 연극 심리치료사, 연기학원 강사 등의 교육 분야로 갈 경우에는 최종학력이 전문대라면 보이지 않는 벽이 있을 것 같아요. 특히, 학원 강사 같은 경우는 학력을 더욱 중요시 여기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인터뷰 말미, 채정씨는 "열심히 달려가고 있지만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왜, 단지 전문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걱정을 품고 살아야 하는 걸까요. 

'우리 딸은 당연히 인서울 하겠지. 인서울은 해야지'.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시절, 제가 듣던 말입니다. 저도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 말씀처럼 인서울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12시간 이상을 책상 앞에 앉아 하루를 보내야만 마음이 놓여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인서울'이라는 말은 계속해서 스스로를 괴롭혔습니다. '당연함'을 해내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고, 입시에서의 실패가 실수였음을 재증명하고 싶어 대학 입학 후에 등급이 아닌 학점에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학점에 목매어도 돌아오는 건 "전문대 4.5랑 일반대 4.5랑 같은 취급하면 안 되지"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미 전문대에 진학한 이상, '루저'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학력 때문에 낙오자가 되고 평생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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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저는 전문대 출신입니다, 그리고 기자를 꿈꿉니다 

덧붙이는 글 | '대학생이, 대학생을, 대학생에게 알리다.‘ <대학알리>는 학교에 소속된 학보사라는 한계를 넘어 대학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집권을 가지고 언론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창간되었으며, 보다 자주적이고 건강한 대학 공동체를 위해 대학생의 알 권리와 목소리를 보장하는 비영리독립언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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