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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종합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보면 의사선생님들이 얼마나 격무에 시달리는 지 알 수 있다. 거의 분 단위로 빼곡한 진료일정에 보는 내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런 상황은 동네병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이든 지방이든 마찬가지이다. 지방에 있는 동네병원에도 가끔 간다. 서울이든 지방이든 의사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2~3분이다.

그런데 의사협회에서는 우리나라 의사의 수는 부족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면서 통계수치를 제시한다. 그러면 정부에서는 또 다른 통계를 제시하며 부족하다고 반박한다. 병원을 찾는 우리가 느끼는 것은 의사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내 생각만이 아닐 것이다. 서울의 병원에서든 지역의 병원에서든 나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10년 넘게 살았다. 내과, 피부과, 치과 등 동네병원에 자주 갔다. 아이가 다치거나 조금 심하게 아파서 종합병원에도 여러 차례 갔었다. 아내가 출산을 할 때도 종합병원에 갔었다. 독일에서는 동네병원에서든 종합병원에서든 의사선생님과 충분한 대화를 나눴다. 어떤 때는 내가 시간이 없어 서둘러 나오기도 했다.

독일에서 돌아와 우리사회에 적응을 할 무렵 우리의 병원문화가 낯설어 힘들었다. 아예 예약을 받지 않는 병원도 많았고, 예약을 했다하더라도 30분씩 기다리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렇게 의사선생님과 마주하면 선생님은 내 얼굴도 보지 않고 이런저런 말을 했다. 질문을 하면 퉁명하게 대답하거나 면박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의사'선생님'이니 잠자코 듣고 말하는 대로 하기나 하라는 식이었다. 의사선생님들이 원래 그런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진료해야 할 환자가 너무 많아 진료에 필요한 절대 시간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서울에서든 지방에서든.

나는 사실 우리나라 의료계 상황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2000년에 의약분업이 됐고, 의료보험이 확대되어 웬만한 치료는 보험공단에서 다 부담해준다는 것, 일단 동네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필요한 경우 의뢰서를 받아 상급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 의대에 진학하려면 수능성적이 아주 좋아야 하고, 의대 공부가 어렵다는 것, 요즘에는 성형외과나 피부과 같은 분야가 인기분야라는 것 등, 정말 상식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래서 무식하다는 소릴 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정말 의사선생님들에게 묻고 싶다. 왜 지금 정부에서 추진하는 공공의대나 지역의사 제도에 의사선생님들이 이 엄중한 전염병 시국에 진료를 거부하며 파업까지 하며 반대를 하는지 말이다. 의료의 지역격차를 줄이고, 지방의료원 및 공공병원의 의사공백 문제를 해소하고, 특정 인기 분야 쏠림 현상을 완화하며, 전염병 대응능력 강화하겠다는데 왜 반대하나요?

그래서 독일의 의료시스템을 살펴봤다. 놀랍게도 (내가 무식해서) 독일에는 이미 지역의사 제도가 있다. 독일어로 Landarzt이다. 역사도 오래됐다. Landarzt라는 용어는 19세기 초에 이미 형성됐다고 한다. 현재 독일에서는 지역의사 선발을 위해 대부분의 연방 주가 각기 조금씩 차이가 나는 Landarzt-Quote, 지역의사 할당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 선발 제도는 Numerus Clausus(NC)와 달리 우리의 수능성적에 해당하는 아비투어 성적이 주 선발기준이 아니다. 아비투어 성적이 최고가 아니더라도 의대 학업을 마친 후 10년간 의료취약 지역에서 근무하는 조건을 수용하면 된다. 독일 학생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다고 한다.

여기서 선발과정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인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점수, 경험 및 필요한 경우 의료 과정 시험 결과를 기준으로 지원자들의 순위를 정하여 2차 시험 대상자를 선발한다. 2차 선발과정에서는 4시간에 걸쳐 인성에 대해 광범위하게 테스트를 받는다고 한다. 문제는 예를 들어 말에서 떨어져 고통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지원자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본다고 한다. 그 사람을 검사하거나 진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시키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고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를 지역의사들도 포함된 심사위원이 평가를 하며, 이때 의학지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우리도 이렇게 지역의사를 선발하면 좋겠다. 수능성적은 조금 떨어지지만 마음이 따뜻한 의사선생님을 만나고 싶다.

독일도 지역의사 교육을 위해 의대정원을 증원했다. 독일에서도 당연히 지역의사 할당제에 반대가 있었다. 반대이유도 우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처럼 파업을 하고 진료거부를 하면서 반대했는지는 모르겠다. 현재 시행되고 있으니 반대가 제도의 도입을 막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독일 바이에른 주에서만 2020/21학기에 114명의 지역의사 입학생을 선발했다고 한다. 독일에는 16개 주가 있으니 독일 전체로 보면 매년 지역의사 입학생이 1000명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놀란 것은 지역의사 제도가 독일에 있다는 것이었다.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보다 지역 균형발전이 잘 된 나라가 독일이다. 작은 지역 마을 어디에도 모두가 누려야 할 공공재가 큰 차이 없이 잘 마련돼 있다. 의료시설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도시의 삶과 지역에서의 삶이 질적으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곳이 독일이다. 의사의 수도 우리보다 훨씬 많다. 우리는 인구 1000명당 의사가 2.3명이라고 한다. 독일은 4.3명이라고 한다. 그런 독일임에도 지역의사 제도가 있다. 의사가 그렇게 많아도 의료 취약지역이 있다는 것이다. 독일인들이 새삼 부럽다.

나라가 균형 있게 발전하려면 정말 많은 것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의사협회에서 주장하듯이 지역 의료 환경을 개선도 해야 한다. 그래야 의사가 지방으로 가고 그래서 의사가 없는 지역이 해소되며 지방에 사는 주민들도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긴 시간동안 지방에 사는 주민들은 아파도 바로 갈 수 있는 병원도 없고, 조금만 심각하다 하면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새벽차 타고 와서 3~4분의 진료를 위해 하루 종일 고생을 해야 한다. 그래서 지역의사가 필요하다. 의사협회가 요구하듯이 환경도 개선하고, 지역의 의사 숫자도 이렇게 해서라도 늘려야 한다. 지역차가 작은 독일에서도 지역의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의료인문학교실 강신익 교수는 2020년 8월 29일자 오마이뉴스 글에서 의사들의 반대이유는 피해의식(불합리한 관행 속에서 도덕적, 사회적, 경제적 자존감을 상실해 온 것에 대한 불만과 피해의식이 폭발한 것으로 보아야), 엘리트주의(자신들이 가장 똑똑하고 우수한 인재라는 주관적이고 객관적이기도 한 사실 인식이 그들의 피해의식을 더욱 증폭시킨다), 위계적 조직 문화라고 하였다.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런 비판을 의사선생님들은 정말 새겨 들어야 한다.

우리는 의사를 의사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의사는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우리 공동체가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들이다. 8월 28일 의사파업 속에 응급실을 찾다 숨진 환자도 있다. 의사협회는 9월 7일 3차 무기한 총파업을 강행하기로 결의했다고 한다. 나는 의사선생님들이 생명을 담보로 파업을 한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생명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정말 의사선생님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다른 직업을 택하기를 권한다.

태그:#지역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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