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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 숲 속을 걷다가 발 아래 자그마한 나뭇잎들이 움직인다면 재빨리 길을 멈추고 몸을 낮춰야 한다. 나뭇잎을 이고 나르는 가위 개미들(Leafcutter Ant)이다. 새끼 손톱 정도의 크기로 잘려진 나뭇잎을 입에 문 수천, 수만 마리 일개미들의 행렬이 펼쳐진다.

어디로 가져 가는 걸까? 산등성이를 타고 수십미터 떨어진 흙틈 새로 개미집 입구가 보인다. 나뭇잎을 개미집으로 옮기는 모양이다. 다시 행렬을 거꾸로 따라가 보니 10미터는 족히 넘을 거대한 유카 나무 위에서 유카잎을 작은 크기로 자르는 모습이 보인다.

자기 몸뚱이만한 나뭇잎을 나르는 개미부터 자신보다 20배는 족히 커보이는 나뭇잎을 나르는 개미까지… 각양각색으로 잘려진 나뭇잎을 줄지어 나르는 거대한 개미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그 속에서 인간 세계의 모습이 보인다. 

개미들의 행렬에서 본 인간 세계
 
너는 체구도 작은데 왜 그리 큰 잎을 물고 가니? 개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 삶이 보인다.
▲ 자신보다 훨씬 큰 잎을 나르는 가위 개미  너는 체구도 작은데 왜 그리 큰 잎을 물고 가니? 개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 삶이 보인다.
ⓒ 김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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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미터 높이의 유카나무에서 자른 나뭇잎을 개미집으로 나르는 행렬
▲ 가위 개미들의 행진  수십미터 높이의 유카나무에서 자른 나뭇잎을 개미집으로 나르는 행렬
ⓒ 김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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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출근 전쟁을 벌이는 기다란 차량들의 모습처럼 다양한 삶의 무게가 보인다. 자기 몸뚱이만큼 일하는 사람부터 자기 몸뚱이 수십 배의 삶의 무게를 지고 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때론 삶의 무게를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남의 삶에 얹혀가는 인생들도 있을 것이고.

개미들의 행렬을 보면 그런 인생들이 보인다. 앞 뒤로 열심히 나뭇잎을 물고 가는 개미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물지 않고 빈 몸으로 행렬을 따르는 개미들도 있고, 아예 다른 개미가 물고 가는 나뭇잎에 매달려가는 웃기는 개미들도 있다. 열심히 앞에 가는 동료의 꽁무니만 따라가는 개미들이 있는가 하면, 대열을 이탈하며 제멋대로 갈지자로 오가는 개미들의 모습도 보인다. 

나는 어떤 개미의 모습으로 살아왔을까? 오가는 개미들의 행렬 속에서 나의 모습을 찾아보게 된다. 자기보다 몇 배 큰 나뭇잎을 문 개미를 보면서는 '너는 체구도 작은데 왜 그리 큰 잎을 물고 가니' 생각하면서 내 눈에도 눈물이 핑 돈다. 

얄팍한 월급에 생활비 걱정을 하면서도 아이들은 보다 나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 시키려고 발버둥치던 모습이 떠올랐을까? 다른 개미가 문 나뭇잎에 그냥 매달려 가는 개미를 보면서는 '아! 나도 부모님께 얹혀 지내며 우리 부모님 허리를 휘게 만들었던 베짱이 개미였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개미들은 항상 정해진 길을 다닌다.  길을 따라가보면 어떤 곳에서는 개미들이 장애물을 만나거나 사고를 당해 나뭇잎들만 쌓인 곳을 만날 수 있다.
▲ 물 웅덩이를 지나는 가위 개미들  개미들은 항상 정해진 길을 다닌다. 길을 따라가보면 어떤 곳에서는 개미들이 장애물을 만나거나 사고를 당해 나뭇잎들만 쌓인 곳을 만날 수 있다.
ⓒ 김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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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을 진 개미들의 행렬은 끝이 없다. 개미들은 한번 길을 만들면 비가 내려 물웅덩이가 생겨도 그 길을 그냥 지나간다. 사람들이 모르고 발로 밟아 동족들이 비명횡사를 해도 다른 길로 피하지 않고 계속 그 길을 지나간다. 

어떤 곳에는 개미들이 떨어뜨린 잘려진 나뭇잎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곳들이 있다. 삶의 기나긴 행진을 하다가 어떤 사고나 어떤 장애물들을 만나 장렬하게 죽어간 개미들이 떨군 나뭇잎들일 것이다. 우리네 인생에도 잘려진 잎들이 쌓인 흔적들이 있겠지.

매일 반복되는,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일들의 위대함
 
나뭇잎 뿐 아니라 때론 예쁜 꽃잎도 나르는 개미들의 모습이 작은 요정처럼 보일 때도 있다.
▲ 나뭇잎을 이고 가는 가위 개미들  나뭇잎 뿐 아니라 때론 예쁜 꽃잎도 나르는 개미들의 모습이 작은 요정처럼 보일 때도 있다.
ⓒ 김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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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미들의 행진은 중단이 없다. 매일 매일 똑같은 노동이 반복된다. 젊었을 적엔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되고 뭔가 거창한 일을 해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다 인생에서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일들의 위대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매일 매일 차려주셨던 음식, 매일 매일 하셔야 했을 설거지며 청소며 빨래며... 아내의 일을 도와본 남편이라면 이런 일들이 얼마나 티가 나지 않는 일들인지 알 것이다. 그런 일상의 반복이 나를 만들었고, 또 내 일상의 반복이 내 자식의 미래를 만들 것이다. 

매일매일 같은 일이 반복되고,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노동이 반복되는 것을 참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네 인생의 위대한 여정이었음을 개미들의 행렬을 보며 다시 생각해본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못나 보이더라도 너무 자책하지 말자. 

때론 놀며, 때론 열심히 가며, 때론 나보다 수십 배 큰 잎을 지고 가기도 하고, 때로는 남의 등에 업혀가더라도, 삶의 수레바퀴는 계속 되어야 되고, 계속되는 여정 그 자체가 위대한 삶의 행진이 될 것이다.

태그:#개미 , #가위개미 ,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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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있는 산부터 이름없는 들판까지 온갖 나무며 풀이며 새들이며 동물들까지...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것들을 깨닫게 합니다 사진을 찍다가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 슬며시 웃음이 나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는 순간 등, 항상 보이는 자연이지만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함께 느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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