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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보건교사노동조합 심볼마크
▲ 경남보건교사노동조합   경남보건교사노동조합 심볼마크
ⓒ 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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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설립신고를 완료한 경남보건교사노동조합(경보노조)은 설립신고증 발급일로부터 한달이 지난 7월 10일 경남교육청에 첫 단체교섭요구안을 제출하였다. 경남보건교사노동조합은 설립 신고 당시 124명의 조합원으로 출발한 작은 조합으로 아직 조직체계도 미비한 채, 날마다 조합원 수가 바뀌어 10일 현재 186명의 보건교사 조합원을 등록하고 있는 설립 진행형 노동조합이다.

아직 조직체계 만들기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고 경보노조에서 단체교섭 요구안부터 제출한 것은, 코로나19 이후 드러난 학교보건 현장의 앙상한 실태를 하루라도 빨리 개선해야 하는 보건교사들의 절박함 때문이다.

경보노조는 단체교섭안을 통해 경남교육청이 학생건강관리와 보건교육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라고 요구한다. 보건교사 1명을 배치하고, 1명뿐인 보건교사의 책상으로 온갖 잡무와 책무를 억지로 구겨 넣어 학교보건 현장을 지탱해 왔으나, 코로나19 방역 체제 내에서 그 허상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 5월에 이미 거제 모 학교의 보건교사가 과로로 쓰러져 119로 후송된 경우를 굳이 사례로 들지 않더라도, 이제 더 이상 냉장고에 코끼리 넣듯이 업무를 할 수는 없다는 목소리들이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는 방법은 간단하다. 냉장고의 문을 열고 코끼리를 넣고, 냉장고의 문을 닫는다. 그리고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었다고 보고하면 과제는 종료된다.

그간 보건교사들은 수 많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어 왔고, 냉장고의 문을 열고 닫느라 지치고 쓰러지곤 했다. 그런데 정말 냉장고에 코끼리는 들어 있는 것일까? 아무도 묻지를 않는다. 어쩌면 냉장고의 문을 닫고 코끼리를 넣었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그 보건교사조차 냉장고에 코끼리가 들어있다고 믿고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집단최면에 걸린 사람들처럼 아무도 냉장고 속을 보려 하지 않았다.

학생수 1000명이 넘는 학교에서도 보건교사는 한명 뿐이고, 보건교사의 역할은 학생건강관리와 보건교육이라고 학교보건법15조에 명시하고 있음에도, 건강에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온갖 업무들로 인해 역할 경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얼마 전 전남의 보건교사들이 수질검사와 저수조 청소, 교내 시설 방역 등의 업무를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고, 경남에서도 그 업무들을 더 이상 교사가 할 수 없으니 교육지원청이 가져가라고 요구하는 움직임이 전교조 경남지부와 보건교사회를 중심으로 활발해졌다.

경남보건교사노동조합은 전교조 경남지부와 보건교사회의 그 같은 움직임에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한편, 보건교사의 역할과는 무관해야 마땅했던 그 같은 시설관리 업무들을 학생건강관리를 제대로 할 시간 조차 없는 보건교사가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선언까지 해야만 했던 그 실태가 오히려 웃프지 아니한가?

경남보건교사노동조합은 단체교섭 요구안을 통해 각급 학교의 전교직원이 역할을 분담하는 감염병관리조직을 구성하도록 하여, 상시적으로 감염병에 대응하는 체계를 갖도록 경남교육청이 지도 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단체교섭으로 굳이 요구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교육청의 임무에 해당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마땅한 것'들이 '마땅하지 않은 것'인 작금의 현실에서 불가피하게 경보노조가 단체교섭으로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경보노조는 보건교사가 학생의 응급처치를 하거나, 보건실에서 안정을 취하는 학생을 살피느라 예정된 보건수업을 제 시간에 시작할 수 없고 학교 내에서 발생한 응급처치나 의료적 처치요구가 보건수업을 하는 시간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조건 속에서, 보건수업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 마련, 보건실을 방문한 학생에게 최소한 10분의 시간을 투입하여 건강상담과 건강교육 또는 처치를 할 수 있는 여건, 제1형 당뇨를 비롯한 주기적이고 지속적 관리를 요하는 학생에 대하여는 하루 30분의 시간을 매일 투입할 수 있는 여건, 보건교사가 학생건강증진계획, 학생건강검사 계획과 관리, 감염병 대응계획, 학생 심폐소생술과 응급처치 교육 계획과 추진, 학생 예방접종 확인 조사 등의 학생건강관리를 위한 기획과 실행과정 관리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모두 노동조합이 요구하지 않더라도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들에 해당하나, 지난 수십년간 우리나라의 학교보건 현장은 그 마땅한 여건이 보장되지 않았기에 경남보건교사노동조합은 단체교섭으로 요구하였다.

학교환경위생관리자, 교육환경보호구역 관리, 미세먼지 담당자, 라돈이나 석면 검사 담당, 공기질 관리, 먹는물 관리, 교직원 성희롱 예방, 교직원 건강검사, 교직원 결핵검사, 교직원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 교육 등의 업무가 1명뿐인 보건교사의 책상으로 밀려 들어오면, 보건교사는 보건실을 방문한 학생에게 10분은 커녕 1분 정도의 시간도 투입하기 어려웠고 학생의 건강을 살피기보다는 수많은 시설관리나 행정업무에 허우적거려야 했다.

보건실 침상에 누워 있는 아동을 모른 체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가, 누군가 피를 흘리며 다친 아동이 발생하면 애써서 준비한 수업도 중단하고 보건실로 가서 숨차게 처치를 하는 것도 당연한 현실이었었다. 그럼에도 그 모든 학교 보건의 부실은 오롯이 보건교사의 책임인 듯, 여건은 개선하지 않고 끊임없는 책무의 부과만 계속되었다.

이제 경남보건교사노동조합은 경남교육청에 표준화된 업무편람을 요구하고, 학교보건지원센터를 통해 학교보건을 지원 할 것을 요구한다. 학교보건법 17조를 준수하여 경남교육감은 학교보건위원회를 구성하고 학교보건의 경험이 있는 이를 위원으로 하여 경남 학교보건의 중요 시책을 심의할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모든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화 할 것을 요구한다.

경남보건교사노동조합은 설립 후 첫 단체교섭 요구안을 제출하면서 '코끼리는 냉장고에 넣을 수 없음'을 선언한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라는 비정상적 요구는 거절될 것이니, 경남교육청은 더 이상 학교보건 현장의 실태를 모른 체하지 말고, '학생건강관리와 보건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경남보건교사들의 외침에 응답하기를 바란다.

태그:#경남보건교사노동조합, #경보노조, #단체교섭요구안, #단체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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