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지난 겨울,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럽을 덮치기 직전 한 달 동안 이탈리아에서 지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기자말] |
지금도 지중해를 통해 아프리카로부터 끊임없이 생사를 건 난민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 중에서도 이탈리아에 검은 피부 사람들이 유독 많이 눈에 띄는 건, 아프리카를 향해 튀어나온 반도국의 숙명이다. 상대적으로 이민자들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물론, 이탈리아가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아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는 데다 일자리도 비교적 풍부한 독일 등 북유럽 국가로 가기 위한 경유지 성격이 강하다. 이탈리아는 경제 규모로만 따지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세계적 경제 대국이지만, 경제적 위기가 일상화되어 있다.
한때, 포르투갈과 그리스, 스페인과 함께 '돼지들(PIGS)'이라 통칭되며, 다른 EU 국가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PIGS'란 네 나라의 앞글자를 묶은 것이다. 현재 나름 슬기롭게 극복해가고 있지만, 당시엔 경제적 토대가 허약하고 국민성이 나태하다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지중해를 건넌 난민들이 독일 등 북유럽으로 기차를 타고 넘어가자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도시가 이탈리아 북부의 중심 도시인 밀라노와 베로나다. 둘 모두 교통의 요충지로, 밀라노는 스위스와, 베로나는 오스트리아와 연결된다. 이든 저든 험준한 알프스를 넘어야 한다.
지중해 건넌 난민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다
그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어떻게든 수도 로마까지 들어왔다면, 기차를 타고 피렌체, 볼로냐, 베로나를 거쳐 국경을 넘는 것이 최단거리 코스다. 숫자로야 이탈리아 최대도시인 밀라노를 잇는 기차 편이 더 많겠지만, 조금은 덜 번잡한 베로나를 경유하기로 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볼차노(Bolzano)로 잡았다. 로마 테르미니 기차역을 기점으로 고속열차 이딸로가 운행하는 최북단 도시다. 여기서 완행 지역 열차로 갈아타고 한 시간만 더 가면 오스트리아다. 트렌티노 알토아디제 주에 속해 있으며, 2017년 현재 인구는 10만여 명이다.
참고로, 이탈리아는 15개의 주와 5개의 자치주로 구성되어 있다. 주는 우리로 치면 도에 해당하는데, 지방색이 강한 이탈리아에서는 국가에 버금가는 권능을 지닌 행정 단위다. 주 아래로는 말단 행정구역인 '코뮤네'가 있는데, 과거 도시국가의 흔적으로 '자치공동체'라는 의미다.
5개의 자치주는 섬 지역인 시칠리아와 사르데냐를 빼면, 모두 프랑스와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댄 지역이다. 소수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데다 역사적인 배경이 달라 자치권을 보장하고 있는 곳이다. 자치주에서는 이탈리아어 외에도 프랑스어와 독일어 등이 두루 통용된다.
볼차노가 속한 트렌티노 알토아디제 주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다. 아예 공식적인 주도인 트렌토(Trento)를 중심으로 한 트렌티노와 볼차노가 중심인 알토아디제로 따로 명명하기도 한다. 남쪽인 트렌토 지역은 이탈리아어권이고, 볼차노가 속한 북쪽 지역은 독일어권이라, 서로 다른 나라처럼 느껴진다.
듣자니까, 막강한 권한을 지닌 주 의회의 구성도 트렌토와 볼차노로 양분되어 있고, 의장도 임기를 절반으로 나누어 번갈아 맡는다고 한다. 회의할 때 사용하는 언어도 회기 때마다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기차가 트렌토를 지날 때부터는 안내방송도 두 언어가 함께 사용된다.
이탈리아 안의 독일, 볼차노
과연 볼차노는 이탈리아 안의 독일이었다. 오스트리아의 공용어가 독일어니, 이곳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실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는 경관과 생활 풍습이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흡사하다. 하긴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둘은 한 나라였다.
이곳에서는 건물의 이름과 도로 표지판은 물론, 식당의 메뉴판조차도 두 언어가 나란히 적혀 있다. 다만, 위쪽의 큰 글씨가 독일어여서, 이곳에선 이탈리아어 사용자가 소수임을 알 수 있다. 독일어를 쓰는 볼차노 지역 주민들 중 상당수가 오스트리아와의 이중국적자라고 한다.
이는 볼차노 지역의 다사다난했던 역사에 기인한다. 본디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 땅이었다가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점령한 뒤 이탈리아로 복속된다. 이후 빈 체제가 성립되면서 오스트리아의 영토로 회복되었다가,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다시 이탈리아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독재자 무솔리니에 의해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반강제적 이주 정책이 시행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독일 색이 강한 지역으로 남아있다. 적어도 이곳에서 알프스는 문화적 경계가 아니다. 주민들 중 절반 가까이는 오스트리아로 편입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볼차노 기차역 안내판에는 낯선 도시 이름이 눈에 띈다. 인스부르크와 뮌헨. 로마나 나폴리야 멀더라도 같은 이탈리아니 그렇다 쳐도, 이름조차 생소한 소도시에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도시를 잇는 기차 편이 있다는 게 놀랍다. 명실공히 이탈리아와 북유럽을 잇는 철도 교통의 결절점인 셈이다.
역을 나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성당의 높은 첨탑이다. 이탈리아에서 성당이야 발에 치일 만큼 많지만, 볼차노의 대성당은 여느 곳과는 사뭇 다르다. 대개 단정한 로마네스크와 돔을 갖춘 르네상스 양식이 대부분인데, 이곳은 첨탑으로 상징되는 고딕 양식을 띠고 있어서다.
고딕이란 본디 알프스 너머의 이민족의 문화를 조롱하는 멸칭이었다. 중세 시대를 풍미했던 건축양식이었지만, 현재 이탈리아에서 고딕 양식의 성당은 매우 드물다. 알프스에 인접한 북부지방에 조금 남아있을 뿐이다. 군데군데 흔적은 남아있을지언정 고딕 양식은 르네상스 이후 이탈리아에서 거의 자취를 감춰버렸다.
오랜만에 만나면 더 반가운 법이다. 프랑스와 독일 등에서 숱하게 봐왔던 웅장한 고딕 건축물 앞에 서서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비록 여느 곳처럼 이름 높은 성인의 유해나 빼어난 유물을 소장하고 있진 않았지만, 볼차노의 대성당은 외관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이 외진 소도시에도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있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서빙을 하거나 좌판을 열어 과일 등을 파는 이들도 있고, 역이나 터미널에서 허드렛일을 하거나 하다못해 거리를 돌아다니며 조잡한 기념품을 팔고 있다. 힘겹게 도시의 밑바닥 경제를 담당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느 곳이든 구걸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탈리아에서 한 달을 살면서 검은 피부의 걸인은 만나질 못했다. 프러포즈하듯 멋진 자세로 모자를 벗어 구걸하는 사람, 아기를 품에 앉고 다짜고짜 옷깃을 잡아당기는 사람, 나아가 입고 있던 패딩 호주머니까지 손을 집어넣곤 달아난 소매치기까지 집시나 히스패닉이었을지언정 흑인은 없었다. 편견이 깨지는 경험이었다.
하나같이 마른 체구여서 더욱 도드라져 보였겠지만, 그들이 입은 패딩이 유난히 얇아 보였다. 눈 덮인 알프스가 코앞인 이곳의 겨울은 그들의 신산한 삶만큼이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런데도 꼭두새벽부터 일터로 나와 악착같이 삶을 꾸려가는 그들의 모습이 대단하면서도 처연했다. 그나마 여러 문화가 혼재된 이 도시가 그들에겐 외려 더 편안할지도 모르겠다.
볼차노의 명물 케이블카
볼차노엔 또 다른 '명물'이 하나 있다. 도심과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인 케이블카가 그것이다. 주변이 죄다 가파른 산악 지역이어서 기차나 자동차가 무용지물인 곳이 많다. 도로라고 해봐야 우리네 임도처럼 꼬불꼬불 나 있어 두 대의 차량이 교행하기도 힘들 정도로 좁다.
그 중 하나인 오베르보젠(Over-Bozen)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타보기로 했다. 기차역에서 가깝고, 무엇보다 값이 쌌다. 구간 거리가 무려 4km에 이르고, 고도차도 수백m인데 왕복 승차권 가격은 10유로에 불과하다. 오르는 10여 분 동안 이국적인 풍광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볼차노와 주변 지역을 잇는 케이블카는 관광용이 아니라, 현지 주민들의 손과 발로 쓰이는 엄연한 교통수단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시장엘 가고, 통학을 한다. 오베르보젠은, 말 그대로, 볼차노의 윗동네라는 뜻이다. 볼차노의 독일어 이름이 보젠(Bozen)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공기마저 달다. 해발고도 1200m에 자리한 청정지역이기 때문이다. 그 흔한 공장 하나 없고, 도로는 있지만 오가는 자동차도 거의 없다. 드문드문 호텔과 식당, 카페는 있지만, 손님이 없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계절 탓인지 관광객은 눈에 띄지 않았다.
흥미로운 건,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산꼭대기인데도 이웃 마을을 연결하는 기차가 다닌다는 점이다. 볼차노에서 올려다볼 때는 전망대 하나만 서 있을 것 같았는데, 내려 보니 제법 널찍한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중고등학교 지리 수업 때 배운, 영락없는 고위평탄면의 모습이다.
오베르보젠부터 종점인 클로벤슈타인(Klobenstein)까지 두 량의 협궤 열차가 30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다. 넓은 목초지가 펼쳐져 있고, 그 뒤로는 눈 덮인 알프스가 아스라이 보인다. 들판 사이에 세워진 집들이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시간조차 더디 갈 것 같은 풍경이다.
번잡한 이탈리아의 여느 도시와 볼차노의 풍경 차이만큼이나, 아랫동네 볼차노와 윗동네 이곳의 느낌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전란을 피해 숨어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인 양 평온하고 여유로웠다. 건널목을 지날 때 기차가 울리는 경적 소리만이 조용한 마을에 정적을 깼다.
감춰진 보석 같은 오베르보젠과 클로벤슈타인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어 스마트폰을 켰다. 놀랍게도 정보는커녕 그 흔한 여행기 하나 검색되지 않았다. 대신에 익숙한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변신>으로 유명한 체코 출신의 대문호, 프란츠 카프카.
그의 <편지>에서 이곳의 이름이 깜짝 등장한다. 평생 병마에 시달렸던 그가 요양 차 찾은 곳이 바로 오베르보젠과 클로벤슈타인이었던 거다. 한 세기 전 그가 보았을 알프스의 풍경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음마저 맑아지는 느낌, 당시 그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