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간호사회는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 '청와대로 찾아간 간호사들'이라는 주제로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공공병원 설립', '안정하게 일할 권리', '간호사 배치기준 강화' 등을 요구했습니다.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최원영 간호사 또한 지난 1일 '제대로 된 교육 환경 보장'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해당 글은 당시 최 간호사가 낭독한 글입니다. [편집자말] |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10년 차 간호사 최원영입니다.
저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알 수 없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부족한 간호인력과 부실한 간호교육 체계가 환자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얼마나 큰지 입이 닳도록 이야기했으나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답답해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래, 그게 한 번에 쉽게 바뀌는 게 아니겠지'라고 나름 이해하려 애쓰곤 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때 접촉자 전수조사를 하고 온 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방역에 애쓰는 모습을 보니,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온갖 행정력을 총동원해서 할 수 있는데 그동안 마음을 안 먹어서 안 하고 있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K-방역이다 뭐다 하며 우리나라의 코로나 대응을 칭송하곤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환자의 목숨만 귀중한 것이 아닙니다. 병원에는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병에 걸린 환자들이 수두룩하고, 코로나 환자보다 더 심각하고 중증인 상태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우리 국민이 아닙니까?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가 총선과 겹쳐져 있었던 것이 한국인들에겐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사태를 기회 삼아 정치인들이 뭐라도 해보려고 최선을 다하는 게 뉴스 화면 너머로도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저는 정부 고위인사들이 하는 '덕분에 챌린지'를 보면 화가 납니다. 국민들이야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의료진을 응원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어 그런 운동에 동참한다지만, 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일반 국민들이 하듯이 엄지척만 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한국 2개월 vs. 캐나다 1년... 이대로 괜찮습니까?
저는 이 자리에 간호사의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러 나왔습니다. 저는 캐나다에서 온 중환자실 간호사가 '캐나다는 중환자 간호사 교육 기간이 1년'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중환자실 간호사가 되기 위해 3개월 온라인 수업, 3개월 오프라인 수업을 들은 후 6개월간 임상에서 실습 교육을 받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고작 2개월입니다. 그나마 대형병원이 2개월이고 중소규모 병원은 그것보다도 짧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가 중환자실 신규간호사로 발령받고 2개월간의 짧은 OT(Orientation·오리엔테이션)가 끝나갈 무렵, 교육을 더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공부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니,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땐 주변에서 공부를 못하게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공부할 때 뭐가 필요한지, 뭐든 말만 하라는 식이었습니다. 수능 날에는 비행기 이착륙시간도 조정할 정도로 온 나라가 교육열이 뜨거운 한국이지만, 그 교육열은 학생으로 국한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공부는 대학을 나온 후 우리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아닐까요? 간호대학에 가기 위해 하는 공부보다,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실제로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자기가 맡은 환자와 해야 할 일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공부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학교에서 제가 받는 성적표는 저의 것이지만,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받게 되는 성적표는 50점, 60점 점수가 적힌 종이가 아닙니다. 보호자들이 흘리는 눈물이고, 환자의 고통이요, 죽음이 바로 그 성적표입니다. 임상에서 직접 환자를 간호하게 되면 그것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인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규간호사들은 간절하게 호소합니다. 교육 기간이 너무 짧다고. 교육이 부족하다고. 더 배우고 싶고 더 공부하고 싶다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원래 다 그런 거야, 처음엔 다 힘들어'라며 그저 신입직원의 투정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2018년 2월 15일, 국내 최고의 병원이라 자부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입사 6개월 차 박선욱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에 생전 그녀를 알지 못했던 저를 비롯한 전국의 수많은 간호사가 함께 슬퍼하고 눈물 흘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 모두 그녀가 느꼈을 두려움과 고통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신규간호사 시절 교육을 받을 때 선배들로부터 의료사고 예시를 듣곤 합니다. 저는 그렇게 위험에 빠지는 환자도 안타깝지만 그런 사고를 저지른 신규간호사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고로 인해 받았을 충격과 겪었을 일들, 그것도 모자라 각종 교육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기까지 하는 모습에 '그 간호사는 앞으로 다시 간호사로 일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전에 충분한 교육을 받았다면 그런 사고가 일어났을까요?
교육 기간이 모두 끝나고 신규간호사들은 두려움을 안고 독립을 하게 됩니다. 병원에서 신규 간호사는 늘 민폐 취급을 받습니다.
신규들은 어떤 기상천외한 실수를 저지를지 모른다며, 어떤 사고가 날지 모른다며 폭탄 취급합니다. 유독 일을 못 하는 특정 신규간호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든 신규 간호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모든 신규 간호사가 그러하다면 그건 신규 간호사의 문제가 아니라 병원 시스템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왜 충분한 교육을 해주지 않는가?'
'왜 업무가 제대로 숙지 되지 않은 채로 독립을 시키는가?'
'왜 갓 독립한 신규 간호사에게 경력이 오래된 간호사와 똑같은 업무량을 수행할 것을 강요하는가?'
'왜 신규 간호사들이 죽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가?'
'입사한 지 고작 두 달 된 간호사의 실수로 환자가 죽을 수 있는 환경은 과연 정상인가?'
지금까지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혹독한 신규 간호사 시절을 견딘 사람들만 병원에 남아 관리자가 되기 때문일까요? 힘들다고 얘기해 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원래 그런 거다, 우리 때는 더 했다'처럼 꼰대 같은 말뿐입니다.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에 대한 업무상질병 판정서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긴박한 업무수행이 고인에게 상당한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여지고, 특히, 간호사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로 직장 내에서의 적절한 교육체계 개편이나 지원 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자기 학습 과정에서 일상적인 업무 내용을 초과하는 과중한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여지는 점 등을 종합하면, 고인의 정신적인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적 이상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정이 되므로 고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타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것이 심의회에 참석한 위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박선욱 간호사의 경우, 산재 인정에 있어서 까다로운 근로복지공단조차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업무상 재해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큼 병원의 신규 간호사 교육부족 및 과중한 업무 부담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관련 기사:
13kg 빠지며 시들어간 그녀, 나도 너였다 http://omn.kr/1hwrc)
간호사들은 공부하고 싶다
더 큰 문제는 여전히 수많은 간호사가 똑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규 간호사들은 박선욱 간호사가 죽어간 그 자리에서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더는 감추고, 외면할 일이 아닙니다. 이는 제가 청와대를 찾아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간호사들은 공부하고 싶습니다. 충분히 배우고 싶습니다. 더는 보호자의 눈물과 환자의 고통으로 얼룩진 성적표를 받아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정부가 간호사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환경을 보장할 것을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