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5월 18일 인천광역시 의회에서는 '마을기금제도 구축과 자치분권 특별회계 토론회'(이하 '마을기금 토론회'라고 한다)가 열렸다. 마을기금 토론회는 인천에서 읍면동 마을기금을 꿈꾸는 마을활동가들의 노력으로 성사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지정토론자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법학 전공을 살려 작성한 '인천광역시 읍면동 마을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안'을 제안해 보았다. 토론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마을기금 조례 제정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쪽이었다. 토론회를 마치고 어쩌면 인천에서 전국 최초로 읍면동 마을기금이 조성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이래 나는 읍면동 마을기금의 제도화를 주장하고 있다. 내가 마을기금의 제도화를 주장할 때 드는 예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중앙정부가 지난 2019년 1월 29일 국가균형발전 정책 사업에 2022년까지 175조 원을 투입하기로 한 결정이다.

중앙정부가 무려 175조 원이나 되는 엄청난 돈을 투입하고 있으니 2022년 이후에는 수도권 쏠림 현상이 해소되고 전국이 고르게 발전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까? 유감스럽게도 회의적이다. 오히려 토건업자의 배나 불리고 전국의 땅값만 들썩거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국가균형발전이 어렵다면 그래도 175조 원이나 되는 거금이 뿌려지는 것이니 읍면동 주민에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어떤 혜택이라도 생길까? 잘 모르겠다.

국가균형발전 정책 사업에 투입되는 175조 원은 모두 국민의 혈세다. 엄청난 돈이 결국에는 혈세 낭비로 귀결될까 걱정이 크다.

전국의 마을이 175조원을 알아서 쓴다면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난 이 대목에서 미국의 경제학자 엘리너 오스트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오스트롬은 공동 자산의 관리는 국가의 관리나 시장 메커니즘보다는 지역공동체의 자율 관리가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점을 이론적·실증적으로 입증했다. 그 공로로 오스트롬은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정부 예산은 국민의 공동 자산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가나 시장이 아닌 읍면동 마을공동체가 175조 원의 예산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며 국토균형발전을 추진하는 방안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전국에는 약 3500개의 읍면동이 있다. 국가균형발전 정책 사업에 투입되는 175조 원을 3500개의 읍면동에 배분하면 읍면동마다 평균 500억 원의 마을기금을 조성할 수 있다. 만일 175조 원을 전국 읍면동에 적절하게 배분하여 주민이 공동소유하고 자주관리하는 읍면동 마을기금 조성사업을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내가 생각하는 읍면동 마을기금(이하 '마을기금'이라 한다)의 대강은 이렇다.

먼저 마을기금의 소유 형태를 살펴본다. 소유권은 관리권·처분권·사용권·수익권으로 나뉜다. 마을기금의 소유권 중 관리권과 처분권은 주민 전체가 갖는다. 반면 사용권과 수익권은 주민 각자가 갖는다. 이러한 공동소유 형태를 법적으로는 '총유'라고 한다.

총유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마을기금이 건물 한 동을 산다. 그럼 그 건물의 관리와 처분은 주민총회에서 결정한다. 반면 주민 개개인은 정당한 임대료를 내고 그 건물의 일부를 사용할 수 있고, 임대수익은 주민 전부가 1/n로 나눠 갖는다. 마을기금의 소유 형태를 이처럼 주민 총유로 하면 주민들은 마을기금에 대해서 소유자 의식을 갖게 된다. 돈 가는데 마음 간다고 마을기금의 조성·운용에도 관심을 크게 갖고 참여할 것이다. 나아가 마을기금이 매년 불어나 수천억 원 이상 적립되는 경우에는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가난해도 그는 부자다. 수천억 원 재산의 공동소유자니까.

둘째 마을기금의 조직에 대하여 살펴본다. 마을기금의 대표는 지역주민이 직접 선출한다. 그래야 대표가 지역 주민에게 책임을 지고 마을기금 운용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마을기금 운용위원회는 15~35명의 위원으로 구성하되 절반 이상은 추첨 선발된 마을 주민으로 충원한다. 최고의사결정기관인 주민총회에는 마을 주민 전부가 구성원으로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한다.

셋째 마을기금의 운용에 대하여 살펴본다. ​마을기금이 조성되면 주민 스스로 그 기금을 활용해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에 투자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마을기금으로 해당 읍면동의 부동산을 매입하여 공공임대주택을 조성해 집 없는 마을 주민들에게 적정한 가격으로 임대한다. 그럼 주민들은 구태여 내 집 마련에 등골이 휠 이유가 없다. 또한 공공임대상가를 조성해 마을 상인들에게 적정한 가격으로 임대한다. 그럼 마을 상인들은 임대료 인상이나 젠트리피케이션 걱정 없이 사업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마을 자영업자들에게 저리 신용대출 및 지분투자를 한다. 지분투자의 경우 마을기금이 배당 우선권을 갖되 마을 자영업자의 경영권은 보장한다. 법률·세무·노무·경영 등 전문 컨설팅도 지원한다. 이처럼 마을기금이 공공상가임대, 지분투자, 전문 컨설팅 등으로 지원한다면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들에게 든든한 비빌언덕이 될 것이다. 나아가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마을에 적합한 재생에너지사업 등을 할 수도 있다.

마을기금에서 나오는 임대수익은 매년 지역 주민 전부에게 1/n씩 현금으로 배당한다. 읍면동 차원에서 기본소득이 시행되는 것이다. 그럼 지역 주민의 호주머니 사정도 좋아진다. 코로나19처럼 마을에 재난이 생기면 재난지원금으로 쓸 수도 있다.
 
마을기금을 통해 국가균형발전, 풀뿌리민주주의 확대, 주민 살림살이 향상, 경제정의 실현이라는 네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게 된다.
 마을기금을 통해 국가균형발전, 풀뿌리민주주의 확대, 주민 살림살이 향상, 경제정의 실현이라는 네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게 된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넷째 마을기금의 통제에 대하여 살펴본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는 법이다. 마을기금 역시 부패를 막으려면 통제가 필요하다. 마을기금의 일차적 통제는 주민총회가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칫 주민 다수의 횡포 내지 독재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및 지자체의 보충적 통제가 있어야 한다.

특히 마을기금의 주된 재원은 국가 및 지자체의 출연금이므로 국가 및 지자체의 통제는 불가피하다고도 할 수 있다. 다만 국가 및 지자체가 통제를 빌미로 마을기금을 하부행정기관으로 전락시키는 우를 범하게 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그 통제는 사전통제가 아니라 사후통제가 되어야 한다.

​위와 같이 주민이 공동소유하고 자주관리하는 마을기금이 읍면동마다 설치·운용된다면 정부가 직접 돈을 푸는 것보다 훨씬 민주적이고 효율적으로 국가균형발전을 이루면서 풀뿌리민주주의 확대 및 주민들의 살림살이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마을기금 통한 토지 공유까지

한편 마을기금은 경제 정의 실현에도 유용한 수단이다. 경제 정의의 핵심은 토지 문제이고, 토지 문제의 핵심은 토지 사유화에 있다. 따라서 경제 정의를 실현하는 정도는 토지 공유라고 할 수 있다.

토지 공유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토지 국유화다. 하지만 나는 토지 국유화를 절대 반대한다. 토지 국유화는 국가에 거의 무제한의 권력을 주기 때문이다. 국가를 장악한 소수의 중앙 엘리트가 국민을 총체적으로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로 가는 길을 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토지 국유화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토지 공유의 대안은 토지 국유화가 아니라 마을기금을 통한 주민의 부동산 공유여야 한다. 주민이 공동소유하며 민주적으로 관리되는 마을기금이 마을의 부동산을 매입하여 주민 공동자산화하는 것이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 경우 토지 사유화로 인한 경제 정의 훼손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고 우리 모두가 고르게 잘 사는 세상은 성큼 다가올 것이다. 이처럼 마을기금은 증세도 필요 없고 사유재산권을 침해하지도 않으면서도 토지 사유화로 훼손되는 경제 정의를 회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이다.

마을기금이 필자가 생각하는 형태로 완전하게 실현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가칭 '읍면동 마을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하지만 당장 마을기금법 제정이 어렵다면 그 전 단계로 지방자치단체에서 미흡한 형태로나마 가칭 '읍면동 마을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선도적으로 마을기금을 조성·운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마을기금 조성 재원은 주민참여예산을 활용하는 형태로 시작할 수 있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다.

인천에서 시작된 마을기금 조례 제정 움직임이 결실을 보기 바란다. 또한 전국 지자체 곳곳에서 마을기금 조례 제정운동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나아가 종국적으로는 국회에서 마을기금법이 제정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전국 읍면동마다 주민이 공동소유하고 민주적으로 관리하는 마을기금이 조성·운용된다면 좋겠다.

그 경우 우리는 마을기금을 통해 국가균형발전, 풀뿌리민주주의 확대, 주민 살림살이 향상, 경제정의 실현이라는 네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게 된다. 마을기금이 우리 모두가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존엄하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디딤돌이 되는 것이다.

첨부파일) 내가 마을기금 토론회에서 제안했던 '인천광역시 읍면동 마을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안'을 첨부한다. 마을기금에 뜻이 있는 분이 자신이 속한 지자체에서 마을기금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자 할 때 이 조례안이 참고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태그:#마을기금, #국가균형발전, #풀뿌리민주주의, #자산공유, #경제정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헌법가치가 온전히 구현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