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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기관의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다. 5.8%(224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51.8%에 한참 못 미친다(2018년 기준).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대응은 공공의료기관의 규모·역량 등 의료공공성의 수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이런 의료환경에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세계가 주목하는 코로나19 방역 '모범국'이 됐을까?

코로나19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힘에 대해 정부의 체계적인 대응, 의료진의 헌신, 성숙한 시민의식 등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 각 영역의 치밀한 노력과 협력이 일궈낸 결과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에 대해 정부가 아닌 의료진과 시민들에게 성과의 공이 돌아가야 한다면서, 삐딱한 시선으로 갈등을 부추긴다.

이는 정치적 의도성이 다분한 접근으로, 정책의 관점에서는 무의미한 언쟁에 불과하다. 정책분석의 기법을 사용하여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방법으로 사회 주체들이 기울인 노력의 경중을 따지겠는가. 그게 가능하다고 한들 명분도, 실익도 없는 사안이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도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무사히 진행됐다. 김대중 정부가 1997년 외환위기 상황에서 경제 극복의 부담을 안고 시작한 것처럼 새로운 국회도 이미 진행 중인 사회·경제적 위기 국면의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세계 각 정부의 '밑천'을 드러내고 있듯이 국내에서도 그동안 조명을 받지 못했던 문제들이 해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몇 가지를 살펴본다.

공공의료 역량 강화

21대 국회가 집중해서 다뤄야 할 과제는 다양하다. 그중 공공의료 역량 강화는 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 국제적으로 열악한 수준의 공공의료 인프라를 그대로 두고, 다음 위기를 맞을 수는 없다.

의료 현장의 한계치를 위협하는 위기 대응 방식은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공공의료의 수준과 역량을 높여 더 강력한 감염병에 대비해야 한다. 의료기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간병원과 위기 상황에 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도 필요하다.

돌이켜보면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를 겪은 후에도 공공의료·보건시설을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감염병 치료에 필요한 음압 병상 부족 문제도 금방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 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지역 간 불균형도 여전하다. 수익성 논리에 매몰되어 공공병원 건립도 속도를 내지 못했다. 코로나 이후는 달라진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경제 위기 대응

감염병이 촉발하는 경제 위기에 대응할 전략 수립도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감염병에서 시작한 경제 위기는 처음이다. '물리적 거리 두기'가 필요한 코로나19의 특성상 이번 위기는 수요와 공급 모두를 위축시켰다.

전대미문의 현상에 전문가들마다 진단과 처방이 각양각색이지만, 우리의 미래를 바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가 당황하고 있다.

각 나라가 큰 틀에서 국가 재정을 활용하는 방식은 유사한 면이 있지만,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다를 수밖에 없다. 소득분배 실태, 산업구조, 일자리 상황 등에 따라 정부의 지원 방식과 규모는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 특성과 여건에 맞는 대응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단기간 위기를 모면할 미봉책으로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소득·자산 수준에 따라, 위험 수준에 따라 선별 지원할 상황과 전 국민 보편 지원할 상황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위기 시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 소득 하위 50%로 할 건지, 70%로 할 건지, 또 보고 싶지 않다.

경제시스템 전환

우리나라는 경제에서 수출 비중이 큰 개방형 통상국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액 비중은 44%나 된다(2018년 기준). 주요 수출국의 경기 침체로 소비가 줄어들면 경제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또한, 중국, 동남아, 인도 등에서 소재·부품·장비를 공급받아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 경제 구조상 수요가 있어도 공장 가동이 어렵게 된다.

일부 차종은 주문이 있어도 해외에서 부품이 조달되지 않아 판매가 어렵다고 한다. 국가 간 상호의존성이 높아진 세계화 시대에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성장한 경로가 더 이상 어려울 수 있다. 산업구조 개편도 주요 과제로 떠오른다.

노동법 사각지대 해소

그동안 근로기준법과 고용보험법의 사각지대에서 제대로 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직업군 종사자들은 코로나19 위기로 생계가 더욱 불안정해졌다.

코로나19로 임금이 급감한 학습지 교사, 방송 프로그램이 중단되어 퇴사에 몰린 방송 작가, 유치원·학원 버스 운행 수요가 없어 생계가 걱정인 셔틀버스 운전자 등 기존 사회적 안전망에서 비켜난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한계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더욱 가속할 디지털 기반 비대면 경제에서 소외당하기 쉬운 노동자들에 대한 선제적 분석·대응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위기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모방하기 힘든 개방성과 투명성을 보여준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모델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코로나 이후 국제질서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그동안 서구 사회가 주도해온 정치·경제 생태계의 중심점이 이동할 수도 있다. 이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기회가 될 수도, 위기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다. 21대 국회가 감당할 소명이다.

태그:#코로나19, #21대 국회, #미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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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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