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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일 "주민자치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 되었고, '한국주민자치중앙회'는 3월 22일부터 국회의원 예비후보자들과 '이 법안을 조속히 통과 시키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협약을 맺고 있다.

이 법안은 대표발의자인 이학재 의원을 비롯해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10명과 민생당 국회의원 2명,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1명 등 13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했고, 지난 1월 6일부터 1월 20일까지 입법예고 되었다. 입법예고 기간 중에 총 152개의 의견이 있었는데, 152개 의견 전부 반대의견이었다. 발의한 국회의원의 지지자나 '한국주민자치중앙회'에서 찬성의견을 올릴 만도 한데, 단 한건의 찬성의견도 없었던 것이 흥미롭다.

반대 이유는 다양했지만 핵심적인 것은 이것이었다.

"자치단체도 있고, 지방의회도 있는데, 또 무슨 단체를 만드느냐."
"관변조직 하나 더 만들어서 혈세로 배 채워주려 한다."
 

이 반대 의견이 "주민자치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감각적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국민들의 즉각적인 반응일 것 같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

주민자치의 사전적 의미는 '지방행정을 지방 주민 스스로의 의사와 책임으로 처리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밑장빼기 하듯이 '주민'을 '특정 조직(단체)'로 슬그머니 바꿔치기하는 편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 편향은 뿌리 깊은 관치의 역사, 관치에서 파생된 관변단체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1963년 '한국반공연맹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세계의 제 민족과의 반공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반공연맹(현 자유총연맹의 전신)'을 만들기 위한 법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반공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 민간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반공연맹이라는 조직을 만드는 법인 것이다. 1989년 반공연맹이 자유총연맹으로 바꿨어도 이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반공연맹법'이 '한국자유총연맹 육성에 간한 법률'로 바꿨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항구적으로 지키고 발전시키는'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사단법인 한국자유총연맹을 지원·육성하기 위한 법을 만든 것이다.

새마을운동도 마찬가지다. 1970년 4월 22일 지방장관회의에서 박정희가 '농촌 자주노력의 방안을 연구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 계기가 되어 전국 읍·면장에게 새마을 가꾸기교육을 실시한다. 그리고 1971년 내무부 산하에 새마을운동 전담부서(지역개발담당관, 도시개발관, 농촌개발관, 주택개량관실 등)들을 신설하여 관주도의 주민동원 체계를 갖춘다.

이렇게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1980년 '새마을운동의 지속적인 추진과 향상을 도모'하고자 '새마을운동조직을 지원·육성'하는 '새마을운동조직 육성법'이 제정되면서 법제화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새마을운동을 지원하는 법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새마을조직 육성법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법의 주요 내용은 새마을운동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새마을조직이 무엇이냐다.

이 흐름이 주민자치위원회에서도 반복된다. '주민자치 기능을 강화하여 지역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도록 '자치회관 설치'와 자치회관 운영을 심의하는 '주민자치위원회'를 구성하는 조례를 만든다. 이것이 주민자치위원회의 출발이다. 뿌리 깊은 관치의 역사, 관치에서 파생된 관변단체의 역사를 계승한 것이다. 그리고 "주민자치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도 이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조직을 만들어 지원하기 위한 법

대한민국 헌법은 1장은 총강이다. 총강 1조에 가장 유명한 문구가 나온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이 총강에 있는 1조의 내용이다. 그리고 바로 뒤 어어 나오는 2조가 바로 국민에 대한 규정이다. 영토규정은 국민에 대한 규정 다음이 2조에 나온다. 1장 총강 다음에 있는 2장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다.

총강 다음에 가장 먼저 규정하고 있는 것이 국민은 어떤 권리가 있으며, 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어떤 의무를 다해야 하는지가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다. 3장이 국회이고, 4장이 정부이다. 참고로 4장 정부 1절이 대통령이다. 물론 여기서도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국민이 네이션(Nation)의 번역이냐 피플(People)의 번역이냐는 논쟁 지점이다. 이 논쟁은 무엇의 번역이어야 하느냐는 법철학적 지향과도 맞닿아 있다.

지방자치법도 구조는 다르지 않다. 1장이 총강이고, 2장이 주민이다. 3장이 조례와 규칙이며, 4장이 선거이다. 그리고 지방의회는 5장이 되어야 비로소 등장하며, 집행기관은 6장이다. 물론 6장 집행기관의 1절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법은 그 한계가 보다 명확하다. 법의 목적 자체가 '지방자치단체의 종류와 조직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을 정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기본적관 관계'를 정하여, 균형발전과 대한민국을 민주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단체자치를 규정하는 법인 셈이다.

지방자치법은 여전히 단체 중심을 탈피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제정 발의된 "주민자치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보다는 훨씬 앞서 있다. 단체 중심이라는 한계는 명확하지만 그래도 주민의 권리가 무엇인지, 그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의회와 지방자치단체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비교해봤을 때 제정 발의된 "주민자치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은 "한국반공연맹법"이나 "새마을운동조직 육성법"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1조에서 법의 목적, 2조 법에 나오는 용어 정의 후, 3조에서 주민자치회라는 조직에 대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져야하는 책무를 바로 언급하고 있다. 주민자치회라는 조직을 지원해야 된다는 의무의 부과이다. 그리고 4조에서 주민자치회 설립·운영에 관해서 다른 법에 우선한다고 명시한 후, 이후의 모든 조항은 주민자치회라는 조직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규정이다. 여기에는 어디에도 주민의 권한은 없다. 물론 자치도 없다. 주민자치회라는 조직과 이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의무만 있을 뿐이다.

진짜 필요한 것은 주민자치지원법

공동체활성화가 아니라, 단체나 소모임 활성화가 아니라 진짜 자치를 하기 위해서는 주민의 권한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방자치법에는 주민의 권리로 선거, 조례 제정과 개폐 청구, 감사청구, 주민소송, 주민소환 등의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이 권한은 지방자치단체, 즉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에서 가지는 주민의 권한이다. 그렇다면 광역과 기초 말고 읍·면·동 차원에서 주민은 어떤 권한이 있는지가 핵심이다. 읍·면·동 차원에서 '지방행정을 지방 주민 스스로의 의사와 책임으로 처리'하려면 스스로의 의사와 책임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정말로 주민자치를 활성화하려면, '지방행정을 지방 주민 스스로의 의사와 책임으로 처리'하려면, 주민에게 권한이 부여되고, 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기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게 의무가 부과되는 것이 우선이다. 이 다음에야, 주민의 권한과 이 권한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가 정립된 다음에야 주민의 권한을 보다 잘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조직으로 주민자치회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주민자치를 실현하는 조직이 아니라 주민자치를 지원하는 조직으로서 말이다.

읍·면·동에는 주민자치회 말고도 수많은 모임이나 단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수많은 모임이나 단체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소속되지 않은 훨씬 많은 주민들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직접 권한을 가지고 자치를 하는 것이다. 이 권한을 주민자치회라는 특정 단체에게 독점시킨다고 자치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럴듯한 관변단체 하나 만들어 주민자치로 포장된 관치를 하고 싶은 욕망을 떨쳐낸다면, 관치를 주민자치로 포장해주고 그 대가로 독점적인 예산 지원을 받고 싶은 욕망을 버린다면, 진짜 주민자치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짜 주민자치 말고 진짜 주민자치 향한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태그:#주민자치회, #주민자치, #지원법, #입법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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