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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의 연이은 죽음, 직장 내 괴롭힘, 경직된 조직문화 등에 의해 간호사들이 겪는 문제는 이제는 사회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중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야기되는 것이 간호계의 독특한 '폐쇄적인 조직문화'이다.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간호학생이 간호사로 성장하기까지 겪는 일련의 사건들, 그런 일들이 어떻게 간호사들을 폐쇄적이고 경직되게 만드는지 세밀하게 짚어보려고 한다. 어떤 구조 속에서 이런 독특한 조직문화가 생겨나는지, 그리고 그 결과 국민들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지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4회에 걸쳐 연속기고를 시작한다.[기자말]
선배들은 큰 사발에 술을 마구 섞어 부어두고 억지로 나눠 마시며 동기애를 다지라고 했고, 인사 온 교수들은 그 모습을 익숙하게 여겼다.
 선배들은 큰 사발에 술을 마구 섞어 부어두고 억지로 나눠 마시며 동기애를 다지라고 했고, 인사 온 교수들은 그 모습을 익숙하게 여겼다.
ⓒ 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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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간호사의 첫 강제동원행사는 대학교 1학년의 '새내기배움터'이다. 새내기배움터(이하 새터)에서의 나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학교생활 적응을 위한 예비 교육의 장에서 난생처음 보는 선배들은 새내기인 우리에게 단합과 규율을 강조했다. 그들은 큰 사발에 술을 마구 섞어 부어두고 억지로 나눠 마시며 동기애를 다지라고 했고 인사 온 교수들은 그 모습을 익숙하게 여겼다.

선배라는 이유로 동기들과의 단합을 강요했으며 어떤 선배는 자신들에게 복종하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새내기인 척하기도 했다. 새터에 가지 않았던 새내기들은 이유가 어떻든 간에 학기가 시작하면 '단체 기합'을 받아야 했다.
  
새터에서 끝날 것 같았던 불합리한 강제동원은 끝나지 않고 계속됐다. 추운 겨울 국가고시를 응시하러 가는 4학년 선배들을 위해 1학년인 우리는 새벽부터 길거리 응원에 동원됐다. 아무리 집이 멀어도 예외란 없었다.

동기와 단합하지 않으면 병원에서 큰 사고를 낼 것처럼, 선배와 교수의 말을 듣지 않으면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우리는 대학 생활 내내 아주 익숙한 강요 속에 살아야만 했다.
  
병원에 들어와서도 그 익숙함은 계속됐다. 선배나 수간호사가 하는 말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병원에 갓 입사한 신규간호사는 휴일에도 선택사항인 교육을 들으러 병원에 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병원에 나와서 공부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의 '프리셉터(교육을 담당하는 선배 간호사)'는 휴일에도 병원에 와서 공부하는 것이 나의 선택이라는 듯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나의 의지는 결코 아니었다. "너 내일도 병원 나올 거지?"라는 프리셉터의  말 한마디 때문에, 나는 신규간호사로 일하는 4개월 동안 병원에 가지 않은 날이 10일도 채 안 됐다.

아무런 저항 없이 끌려다니는 모습, 그것이 나의 미래였다 
  
지난 2019년 10월 30일 열린 간호정책 선포식 행사 당시, 간호사와 간호학과 학생들의 개인 의사를 묻지 않은 채 참석자 명단에 포함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2019년 10월 30일 열린 간호정책 선포식 행사 당시, 간호사와 간호학과 학생들의 개인 의사를 묻지 않은 채 참석자 명단에 포함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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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는 교육에만 강제성이 있는 걸까? 병원 직원들의 사기 증진과 단합을 위해 만들어진 야유회, 간호부 단체 소풍 등과 함께 한 달 근무표가 나오면, 그 근무표에 '형광펜'이 그어진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료하다. '병원 행사에 참석'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거스르는 간호사는 아무도 없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이 문화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제성은 점점 더 견고해지고, 우리는 그것에 점점 무뎌진다. 꼭두각시 같은 이 모습은 어느 순간 우리의 일상이 된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3학년이 되면 학생들은 병원 실습을 시작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미래의 자신을 만나게 된다. 학생들은 간호사들이 아무런 저항 없이 병원 행사, 각종 봉사활동에 끌려다니는 것을 보게 된 후 생각한다. '저것이 나의 미래구나.' 그렇게 또 우리들만의 관습이 견고해져 간다.
   
2019년 10월 30일, 대한간호협회가 주최한 '간호정책 선포식' 당시 많은 간호사와 간호학과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어떤 이들은 이를 간호계의 의미 있는 행사였다고 평가했다. 또 어떤 이는 정말 우리가 자의로 이 행사에 참석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생각을 하는 개인의 집합체이다. 같은 행사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모두 다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인의 판단 없이 익숙해지고 무뎌진 가운데 참여한 행사는 과연 개인의 자유로 참석하였다고 할 수 있는가? 보통 환자들의 증상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복합적인데, 이런 획일적으로 생각하는 관습이 환자 증상의 원인을 판단해야 하는 간호사가 가지고 있기 합리적인 사고인가?

지금이라도 이제는 우리가 깨어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기획 / '우리'라는 미명 하에 이뤄지는 간호사 악습]
① 환자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간호사 '응급오프' http://omn.kr/1mky1
② 밑 빠진 '병원'에 '간호사' 붓기 http://omn.kr/1mnxy
③ 군대보다 더한 간호사 조직? '사람'이 사라졌다 http://omn.kr/1mnyr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이번 연재를 통해 간호계의 독특한 '폐쇄적인 조직문화'을 철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이번 연재를 통해 간호계의 독특한 "폐쇄적인 조직문화"을 철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 행동하는 간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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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을 작성한 유연화 간호사는 현재 대구의 한 병원에서 근무중이며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간호사, #강제동원, #간호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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