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은 세계여성의날이다. 1908년 미국의 섬유여성노동자들이 참정권과 임금인상, 인간다운 노동환경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이를 기념해 세계여성의날이 제정되었다. 해마다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세계여성의날을 기해 시민으로서의 존중과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7년부터 해마다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요구하며 ‘3시STOP 조기퇴근시위’를 조직해 온 ‘3시STOP 공동행동’은 2020년을 맞아 ‘3시STOP 여성파업’으로 전환하였다. 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 파업대회는 취소되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개별파업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내가 있는 노동현장에서의 성차별에 문제제기하고 목소리를 내는 일에 전세계 여성노동자들이 함께 연대할 것이다.
‘3시STOP 공동행동’은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3분 설문조사 분석과 채용성차별, 최저임금, 직장문화, 페미니즘 사상검증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5편에 걸친 시리즈 기사로 구성했다. 이번 글은 여성노동가치를 저평가하고,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 페미당 창당준비위원회 한솔이 작성했다.[편집자말] |
2009년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최저임금은 시간당 4000원이었다. 이후 나의 새해 맞이 일과에 '최저임금에 맞춰 내 시급도 올랐는지 확인하기'가 추가되었다.
부유하지 않은 가정의 학생으로서 아르바이트를 안 할 수 없었고, 아르바이트 노동자인 내 시급은 늘 최저임금 언저리였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 '알바노조'의 조합원이 되어 "최저시급 만 원"을 외친 건 자연스러운 경로였을지 모른다.
당시 알바노조 위원장과 이가현씨가 국회 앞에서 최저시급 만 원을 두고 단식투쟁을 할 때 대부분의 정당에서 뭐라고 응답했는지도 기억한다. '2020년까지 최저시급을 만 원으로 올리겠다.' 그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2020년에 최저시급이 만 원인 건 당연한 거 아냐? 안 되면 절망적이지."
2020년, 최저 시급은 8590원으로 여전히 만 원이 안 되고 월급은 179만5310원이다. 절망적인가? 그렇다. 익숙하여 끔찍하게 다가오진 않는 종류의 절망이다. 나는 서울에 사는 1인가구 여성 세대주다. 부동산플랫폼 '다방'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0년 1월 서울시 원룸의 평균 월세는 보증금 1000만 원 기준 55만 원이고 방이 2~3개일 경우 70만 원이다. 2019년에는 50만 원에서 53만 원을 오락가락했다. 2019년 최저시급은 8350원, 월급은 174만5150원이었다. 작년에 계약직으로 일한 공공기관에서 나는 월 187만 원 정도를 기본급으로 받았는데, 전 직장 경력을 인정한 값이었다.
성과를 내며 뿌듯했던 마음, 회사에 대한 신뢰는 '남성'상사가 들어오기 전까지
그 전에, 그러니까 약 1년 9개월 동안 다녔던 직장은 중소기업 중에서도 소기업에 해당하는 스타트업 회사였다. 160만 원 대의 월급으로 수습 기간을 보내고 180만 원 대로 2017년을 마무리, 2018년엔 깔끔하게 월 200만 원을 받았다. 연봉을 제시하며 대표는 '이 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많이 주는 거라며 자부심을 보였다. 당시 최저 월급은 2017년 135만2230원, 2018년 157만3770원이었으니 나름대로 괜찮은 급여였을지도 모른다. 야근수당, 주말수당을 포함한 금액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정시 퇴근하는 날은 주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증 붙는 시간에 택시를 타고 퇴근하던 나날이 재직 기간의 2/3는 되었을 터다. 작업 속도가 빠르다고 인정받는 편이었는데도 그랬다. 그렇게, '내 월급을 일한 시간으로 나누면 최저 시급도 안 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래도 당시에는 내 손으로 이뤄 나가는 일의 성과를 보며 마냥 뿌듯한 날이 더 많았다. 회사의 규칙과 양식에 내 의견을 반영할 수 있고 내 뜻대로 기획할 수 있는 스타트업의 젊고 자유로운 환경이 나에게는 잘 맞았다. 극악한 노동 환경이긴 했으나 회사의 안 좋은 면모는 직원들이 노력하여 차차 바꿔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한 남성 상사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당시 입사한 지 1년이 채 안 되었던 나와 그 상사는 몇 다리를 건너야 할 만큼 직급도, 업계 경력도, 나이도 차이가 많이 났다. 스타트업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상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몰랐을 거다. 그러니 그 남성과 나를 비교하며 여성의 노동이 저평가된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비교 대상은 그가 들어오기 전부터 나와 함께 일하던, 내 사수이자 직속 상사였던 한 여성 중간 관리자다.
그녀는 회사의 창립 멤버로 거의 모든 사내 양식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대외 사업뿐 아니라 인사 관리, 경영지원까지 도맡아 하고 있었다. 중간 관리자라는 책임에 비해 나이는 어렸지만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안정화되면 당연히 그녀가 제일 먼저 임원이 될 거라 생각했고, 그래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상사로 웬 남자가 들어온 것이다. 그녀의 연봉도, 직급도 그대로였는데 윗사람과 업무량만 함께 늘었다. 그가 실책을 하면 수습을 책임져야 했던 그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잦은 실책을 만회할 만큼 훌륭하게 수습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의 뛰어난 역량과 충성심에 대표는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았다. 그는 대표와의 술자리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았다.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과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고자 수개월 간 노력하던 그녀는 결국, 뼈를 묻겠다는 마음으로 일궈온 회사를 떠났다.
그녀가 떠난 후 나는 2년은 채우려던 계획을 몇 개월 앞당겨 그만 뒀다. 아직도 나는, 국제 업무 중심인 회사에 영어도 못하는 그 남자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대표가 그 남자를 왜 그렇게 싸고 돌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임신'하면, '이 업계에서는' 원래… 차별을 체념하게 만드는 여성노동의 저평가
나의 경험이 특이하고 극단적인 사례일까? 정도에 있어 조금 이례적인 사례일 수는 있겠다. 그럼에도 이를 적은 이유는, 많은 기업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많은 여성 노동자가 위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당장 내 주변만 봐도 사례가 쏟아져 나온다.
의료기기를 수출입하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한 친구는, 회사에서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본인뿐이라 영문서 작성부터 해외 출장까지 모든 영어 관련 업무를 혼자 다 한다. 영어에 자신이 없다는 상사들은 밤낮도 주말도 없이 메신저로 그녀를 찾는다. 공교롭게도, 그 회사에 여성은 그 친구 하나다. 대기업 계열사 영업부에 있던 다른 친구는 여자라는 이유로 영업 지원 업무만 할 수 있었다. 영업부를 원하는 여성은 월급도 자리도 적은 지원 파트를 두고 서로 싸워야 했다.
여성에게는 영업 능력을 선보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거다. 모든 회사에서 영업을 남성에게만 맡기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른 회사의 영업부에서 영업 지원이 아니라 메인으로 자리잡고 수 년간 '영업 1등'을 놓치지 않던 친구도 있었는데, 그녀는 임신과 함께 관리직으로 옮겼다.
스카우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은 거였으니 축하할 일이었지만 씁쓸함이 없진 않았다. 그 친구가 이직을 고민하며 말해준 그 부서의 관습 때문이다. 성별에 관계없이 여성도 영업을 할 수 있고 성과급이 핵심인 부서 특성상, 그 회사에서 동일 직급 간 성별 임금격차는 딱히 없었던 듯하다. 다만, 임신하면 사실상 '좌천' 됐다. 임신한 여성이 올라갈 수 있는 최고 직급은 대리였다. 임신하면 영업에 전념하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공간 미술을 전공하고 인테리어 관련 회사에 취직했던 다른 친구는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며 주 6일 근무를 했다. 대표가 '이 업계에서는' 돈을 제대로 주기 어려우니 이해해달라 했고, 친구는 순전히 일이 좋아서 머물렀다.
그러다 그녀가 들어오기 직전, 동일 직급의 남성은 최저임금을 훌쩍 넘는 월급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심지어 그녀가 병행하던 시공 현장 관리 없이 내근만으로 더 많은 임금을 받았던 그 남성의 퇴사 사유는 '다른 곳에 비해 월급이 적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안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는 퇴사했다. 문화예술산업 내 공공기관 정규직을 꿈꾸며 경력을 쌓는 중인 또다른 친구는 최저임금 언저리의 1년 계약직으로 몇 군데의 공공기관을 돌았다. 경력이 차며 임금이 제법 높아진 지금도 '이 업계에서는' 연봉 3000만 원의 벽을 넘기가 참 힘들다고 했다.
'이 업계에서는' 이라는 말은 마법 같다. 불합리한 임금이나 노동환경을 문제제기하기 어렵게 한다. '구조가 그러니까', '원래 그런 곳이니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는 생각에 체념하게 만든다. 이는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말이다.
문제는 평균 임금이 낮고 노동환경이 불안정한 '이 업계'들의 실무자 성비는 대개 여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최저임금 문제에 여성은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최저 생활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최저임금 앞에서도 항의보다 앞서 '내 월급이 언제까지 최저임금 언저리에 머물까' 한탄하면서도 한 푼, 두 푼 오르는 최저임금에 울고 웃게 된다. 어찌저찌 월급이 최저임금에서 멀어져도 투자하는 노동 시간이나 능력을 고려하면 충분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노동시간이 길고 임금 기준은 낮기 때문이다.
생계부양자의 기본값을 남성으로 설정해놓고 기혼 여성은 생계보조자이므로 임시노동자, 비혼 여성은 잠재적 생계보조자로 여겨지는 시장에서 동일 스펙의 여성은 남성보다 덜 좋은 조건의 직장에 취직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가족 부양의 짐을 남성에게 몰아주는 사회 분위기는 승진에서 남성을 먼저 생각하게 만든다. 실제로 그 집의 가장이 아빠인지 엄마인지 묻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상대적으로 규제와 감시에서 대기업보다 느슨한 중소기업의 경우 상태는 더 심각하다. 동일 직군 동일 업무를 해도 여성의 연봉이 남성보다 낮은 경우가 흔하다. 이렇듯, 여성의 노동은 다양한 방식과 제각각의 형태로 저평가된다.
구조를 바꾸는 여성노동자들 : 척박한 노동환경을 바꾸는 목소리
이렇게 갑갑한 현실인데도 왜 한국에서는 대규모 여성 파업이 일어나지 않을까, 여성 노동 정책 연구를 하는 교수에게 물어본 적 있다. 사실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다. 비정규직의 불안정성이 높고 파업은 커녕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인 노동 환경에서 파업에 참여한다는 건, 일자리를 내놓는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정규직이면 모를까, 계약직이면 재계약은 자동으로 물 건너 갔다고 보는 게 맞다.
그래서 시민단체에서 주도하는 1회성 파업이나 조기퇴근 시위에 연차를 내고 참여하는 기묘한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2015년 이후로 '리부트'된 페미니즘의 물결에서도 노동 문제는 주류를 차지하지 못했다. 노동이라는 커다란 범주 안에 너무 다양한 층위와 이해관계가 있고 이 이해관계가 쉽게 상충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동 문제가 '지금 나의 문제'가 된 사람들은 정작 척박한 노동 환경에서 살아남느라 바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전망이 없다고 느낄 때 잘못된 걸 잘못됐다 말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여성 노동 문제를 언급하는 목소리는 해마다 커지고 있다. 채용성차별, 성별임금격차, 유리문-유리천장-유리벽의 삼중고에 이어 페미니즘에 특화된 사상검증 문제까지, 하나하나 짚고 깨부수자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모이고 있다.
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임을, 내 성별의 문제 아니라 구조가 바라보는 성별의 문제임을 지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아니라, '머물고 싶은 절을 만들겠다'는 움직임이다. 이 움직임은 점점 더 커질 것이고, 결국 구조를 바꾸게 되리라 믿는다.
[3시STOP 여성파업 기획연재]
① 여성노동자 74.0% 직장서 성차별 경험... 반말·성희롱·임금차별 등
② 저는 채용성차별에 맞선 아나운서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20년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여성파업 대회를 준비하며 기획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