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 사회에서 치료비를 지원해 줄 거라는 말을 믿지 못해 조기 퇴원하고 가나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앰폰저씨가 공항에서 출국하기 전 모습.
 한국 사회에서 치료비를 지원해 줄 거라는 말을 믿지 못해 조기 퇴원하고 가나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앰폰저씨가 공항에서 출국하기 전 모습.
ⓒ 송인선

관련사진보기

 
"막상 공항에 오니 정말로 치료비를 지원해 준다는 얘기를 믿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전까지는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무사히 치료를 받고 내 나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준 한국의 시민단체에 감사합니다. 한국을 다시 한번 기억하겠습니다."

가나에서 온 앰폰저61)씨는 지난해 12월 14일 인천의 한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컨테이너 박스 모서리에 오른쪽 발목 윗부분을 심하게 부딪쳤다. 큰 상처를 입어 산업재해 신청을 해야 했지만 미등록 체류자인 그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미등록 체류 근로자 3명이 자신의 산재 신고로 불이익을 받고 쫓겨나게 될까봐 회사 측에 아무런 요구도 하지 못했다.

이때부터 앰폰저씨의 불행이 시작됐다. 집으로 돌아와 몸져누운 그는 상처가 심해도 며칠 뒤면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상태는 점점 심각해져 염증으로 인한 피부 괴사가 점차 진행돼 인대가 밖으로 노출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좀 더 있으면 패혈증으로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었으나 마침 이주민 지원단체인 (사)경기글로벌센터의 송인선 대표가 앰폰저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집을 방문해 치료의 실마리가 열렸다.

그러나 앰폰저씨는 일단 치료부터 받고 치료비는 나중에 생각하자는 송 대표의 말을 믿지 않았다.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도 공휴일에는 치료비가 비싸니 평일에 입원하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치료는 순탄치 않았다. 부천의 지역병원은 앰폰저씨가 지병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고 더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서울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치료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여서 다시 국립중앙의료원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앰폰저씨는 꾸준히 항생제를 투여하면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병원비가 걱정이었다. 미등록 외국인은 정부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다. 송인선 대표는 '동행과 행동'이라는 이주민 지원단체에 도움을 요청해 치료비 200만 원 지원 응답을 받았다.

이후 국립중앙의료원 사회복지사를 만나 자부담 200만 원 외에 나머지 비용에 대한 면제를 요청했다. 뜻밖에도 일이 순조롭게 풀려 앰폰저씨는 한국 사회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앰폰저씨는 이러한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 자신이 가나에서 이러한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괴사된 피부가 세균에 감염돼 악취가 났지만 앰폰저 씨는 송인선 대표가 오기 전에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왼쪽은 송인선 대표.
 괴사된 피부가 세균에 감염돼 악취가 났지만 앰폰저 씨는 송인선 대표가 오기 전에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왼쪽은 송인선 대표.
ⓒ 송인선

관련사진보기


앰폰저씨는 주변에서 이렇게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병원비가 부담스러우니 하루 속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송인선 대표가 자세한 설명을 했음에도 환자는 막무가내였다. 어느 날에는 병원을 몰래 빠져나가려고 시도하다가 병원 곳곳에 설치되어있는 CCTV를 보고 마음을 접었다.

앰폰저씨는 친구들이 문병을 오면 고향으로 제발 빨리 보내달라고 애걸을 했다. 1개월 정도 더 입원해 있다가 괴사된 부위에 새살이 나오면 이어서 피부 이식을 시도해 볼 수 있었지만 환자의 막무가내 요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담당 의사와 논의 끝에 앰폰저씨는 퇴원을 하게 됐다. 대신 약 1개월분의 항생제와 소독약품을 받았다.

지난 18일 입원 48일 만에 퇴원한 앰폰저씨는 관할 출입국공항사무소를 거쳐 19일 0시 20분 가나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 도착해서야 앰폰저씨는 시민단체와 병원 측이 자신의 의료비를 지원했음을 실감했다.

"정말로 병원비를 받지 않았네요. 저는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말만 그렇게 하고 저한테 엄청난 병원비를 청구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한국 사회가 가난하고 힘없는 외국인에게 큰 도움을 주셨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겠습니다."

송인선 대표는 "먼 나라에서 온 나이가 지긋한 앰폰저씨는 오직 가족의 생존을 위해 4년 전 한국행을 택했다. 비록 미등록 상태로 한국에 머물렀지만 한국 사람들이 하지 않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맡아 4년간 일했다"며 "한국 사회가 직장에서 일하다가 상처를 입고 죽을 위기에 처한 외국인을 돌보지 않는다면 결코 선진국 대열에 서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직장생활을 하는 모든 내국인들이 한국 경제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도 결국은 한국 경제를 위해 일하는 것"이라며 "이 땅의 이주민 단 한 사람도 마음에 상처받지 않고 일 하며 안정된 한국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기다문화뉴스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외국인 근로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열심히 뛰어다녀도 어려운 바른 언론의 길...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