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사이 을지로는 '힙'해졌다. 서울에 사는 중년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의아한 일이겠지만, 종로와 충무로 사이 청계고가도로 아래의 생산공간은 어느 순간 소비공간이라 불려지고 젊은 20-30대가 찾는다.
하지만 이유 없는 변화는 없다. 도시는 성장하거나 쇠퇴하거나 변하며, 변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권력이다. 기반시설이 집중된 곳에서, 누구나 자리잡고 싶어하는 땅을 이리저리 구획해서 저마다 배타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도시에서,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새로운 사람들이 오는 것을 막거나 혹은 못나가게 하는 일이다.
을지로의 현재 변화가 놀랍다면 '그동안의 변화가 왜 안보였는가?' 혹은 '왜 지금 을지로의 변화가 주목받는가?'를 반문해야 한다.
생산공간에서 소비공간으로의 가속화
을지로, 한국전쟁 후인 1955년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지금의 물리적 동서 가로망이 만들어졌다. 1967년 세운상가가 등장해 남북의 건물이 등장하고, 동서로는 청계고가도로가 착공된다. 동쪽으로 용두동에서 서쪽으로 연희입체교차로까지 서울을 관통하는 도시 내 고속도로의 건설이었다.
당시에 이 고가도로는 말이 많았다. 고가도로 건설은 전차가 아직 있던 시절 짧은 거리를 사람들이 타고 내리며 이동하던 도시 생활을 바꿔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가도로는 2~4킬로미터의 램프 중심의 목을 만들어 실효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차라리 그 돈으로 지하철을 건설하라는 비판이 더 합리적이었다. 그럼에도 부분적으로 고가도로는 건설되었고, 그 후 30년 동안 도시의 큰 구조를 유지했다.
1970년대에도 80년대에도 을지로는 크게 변했다. 수도 이전을 목표로 도심 공업을 소개시키고자 했던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을지로입구의 지하도 건설, 쁘랭땅 백화점이 들어섰던 을지로3가의 개발 등 도시개발은 시청에서 시작해 차츰 동쪽으로 진출하고 있었다.
이 흐름을 막은 것은 역설적으로 도시를 관통하던 고가도로였다. 남산터널로 향하던 램프가 소비지구의 확장을 막으며, 명동의 동쪽을 충무로의 생산기지로 만들었고 을지로3가 이후 세운상가, 동대문 등 도시 산업의 도소매업 중심지로 성장시켰다. 전차가 있던 시절 광화문에서 청량리까지 이어지던 도시 생활상은 종묘를 기준으로 서쪽은 소비와 업무지구로, 동쪽은 생산과 상업지구로 발전시켰다.
현재 을지로의 '힙'한 변화는 2000년대 초반 고가도로의 해체와 청계천 수변공원의 등장에서 출발했다. 고가도로가 만든 그늘진 지층의 풍경이 바뀌고, 그동안 유력 건축가들의 꿈이었던 종묘-남산 녹지축 복원, 세운상가 해체 등이 시도되면서 동쪽의 종로, 충무로, 을지로는 변화의 압력을 받았다.
탑골공원과 종묘의 노인들이 지배한 지하철 1, 3, 5호선이 모이는 종로3가 익선동의 풍경이 바뀌었고, 명동성당 맞은 편 국세청 건물부터 시작한 충무로의 기존 인쇄단지 지원산업들이 밀려났으며, 을지로의 건축 및 기계 관련 도소매업 중심지는 업무 소비지구로 바뀌고 있다.
고가도로가 공원으로 바뀐 현재 도성 내 소비문화의 동진은 동시적으로 일어났다. 기존 "을지로의 변화"를 보지 못했다면 이는 을지로가 숨 쉬는 공기처럼 도시산업을 받치고 있는 토대였고, 속칭 언론이 "띄우는" 도시의 소비산업과 관광에서 빗겨가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뜨고 지는 공간을 만드는 새로운 질서
이 변화는 시대적이고 구조적이다. 종로의 대로변과 익선동 등의 이면은 임대료 차이가 작게는 3배, 많게는 10배 이상으로 그 격차가 컸지만, 현재는 블록 전체의 임대료가 올라갔다. 예전 상업지역의 공간 구조는 길의 대로변, 대중교통 서비스 밀집지역의 목과 장소의 지식을 소유했던 행위자들이 결정했다면, 이젠 늘어난 매체의 콘텐츠와 이에 대응하는 개인들의 이미지와 해시태그가 사람들을 움직인다.
합정, 상수, 연남, 이태원, 삼청 등 주거지역에 산개한 상업시설들의 등장은 기존 목의 질서로는 설명할 수 없다. 또한 도시 산업구조가 재편하며 성수, 양평, 을지로 등 상업이나 공업지역도 유사한 변화를 겪는다.
특히 을지로는 지하철 및 버스 등이 집중하는 말 그대로 도시의 핵이었으며, 소비지역으로 변화를 막았던 이유들이 사라지면 언제는 변화할 공간이었다. 대규모 건물의 연면적 증가와 이에 따른 배후인구의 증가는 남아 있는 소규모 건물들의 높은 변화가능성과 맞물려 변화의 속도를 빠르게 했다.
도시공간은 예전처럼 개발 잠재력을 높이는 물리적 시설들이 중첩되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안내하고 이끄는 매체와 생활상에 따라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변화하는 모습은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건물을 짓고 길을 내는 물리적인 공간변화와 매체의 콘텐츠가 변하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매체는 개별화되고 콘텐츠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매체에 노출되는 곳은 언제든지 주목받을 수 있게 됐다. 그렇기에 소위 뜨는 지역과 망하는 지역의 부침이 빨라져, 예전처럼 도시 개발이 사람의 생애주기에 맞게 적응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졌다. 불과 몇 년 전 뜨는 지역이 공실로 침체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동시에, 우리는 또 다른 새로운 지역의 "뜨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런 변화는 오래 살던 사람들이 쫓겨나던 예전의 리듬이 아니라 불과 몇 년 전 들어온 사람들까지도 몰아내고, 또 들어온 자들이 나가지 못하고 망하는, 예전 같으면 한 세대에 걸쳐 일어나는 일들을 해마다 양산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공공의 역할도 바뀌었다. 예전 도시개발은 공공의 주된 업무였고, 민간은 공공의 가이드에 따른 몇몇 필지들을 건설했다. 그 이유는 개별 자본의 축적된 정도가 작았던 것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개발 자체가 도시기본계획, 토지이용계획 등 공공의 규칙에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 속에서 지난 20년간 공공은 자신의 '계획역량'을 시대에 뒤처진다고 판단하며 스스로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왔다. 지금까지 세운상가 주변의 도시개발은 추진하는 정부와 이를 반대하며 이익을 가져가는 건물주-세입자의 연합이었다면, 이제는 민간의 개발 속에서 정부가 공적인 과실을 얻고자 하고, 세입자는 공공이 아닌 민간 개발주체와 맞서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안정된 공간질서가 아니라 "잘생겼다 서울"과 같은 소비위락공간의 변화, 도시관광서비스를 진행한다면 공공이 민간개발의 서비스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즉, 공공이 개인의 SNS속 소비장면의 재료를 제공하고 확산하고 있으며, 이런 콘텐츠의 유통을 정부 정책의 성공으로 포장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항하는 새로운 정치적 방법
주거지역뿐만 아니라 상업지역, 공업지역에서도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확산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특히 변화를 추동한 자들이 변화의 과실을 가져갈 틈도 없이, 새로운 행위자들이 옛 행위자들을 몰아내는 가해와 피해의 뒤얽힘은 기존 '젠트리피케이션'의 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이슈를 제기한다.
쫓겨난 자들은 공간·사회·경제의 구조적 변화로 인해 이런 변화에서 소외되고, 이들은 오직 '정치'의 영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공간은 지대와 임대료의 경제모델링이 만들고, 사회는 임노동관계에서 벗어난 젊은 자영업자와 개별 소비자들의 세상이 되고, 경제는 대기업 등 거대 경제주체의 혁신의 장이 되었다.
반면 정치는 지방자치로 언로가 넓어졌으나 주거지 중심의 투표공간은 상업과 공업지역을 공백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빨라진 리듬의 넓어진 개발지역은 '주거권 및 생존권 보장'이라는 기존의 정치적 메시지로는 대항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며, 변화를 만드는 경제·사회·정치를 아우르는 거버넌스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는 변화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참여'하는 새로운 방식을 고안할 수 있으며, 그 첫 번째 화두는 변화의 '속도'이다. 경제적으로 개발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정치적으로 선거를 위한 업적의 스펙터클을 위해, 공간의 변화 속도는 가속화된다. 이를 막고 변화의 비전을 공유하고 찾아가는 느리고 지속적인 속도가 거버넌스의 출발이다. 느릴수록 더 많은 참여가 보장되고, 지속적일수록 변화의 비가시성, 변하는 줄도 모르고 '정체' 혹은 '낙후'라고 말하는 일들이 사라질 수 있다.
흔히들 느린 속도는 경제적으로 손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돈을 금융으로 조달해 이자를 지출하며 분양소득을 가져가는 소수 경제주체의 문제일 뿐이다. 선진국 도시에서 보듯이 느리지만 지속하는 변화는 자본의 예측가능성을 보장하기에 오히려 경제적인 역동을 산출한다. 오래전부터 살았던 사람부터 최근 들어온 사람들까지, 도시의 장소에 많은 사람들이 얽혀있을수록 빠른 변화는 폭력적이다.
두 번째로는 도시의 '소비'가 아닌 '생산'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다. 소비는 생산을 낳겠지만, 생산하지 않으면 소비도 없다. 현재 생산하고 있는 자들을 유지하면서 도시를 개발하는 방법은 외국에도 사례가 많으며, 우리 사회에는 이를 사회공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 전문가 집단들도 많다.
현재 생산자들이 서울의 도심을 점거하며 땅값 차익을 노리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치는 것도 아닌, 지금 그들의 생산의 기반을 보존해달라는 부탁은 '생산'에 가치를 두는 공공 개발방식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한 예로 공공이 '공공선매권'을 설정하고 민간의 부동산 거래에 공공이 점진적으로 개입하는 방식도 있으며, 그 경우 개발은 느린 속도로 진행되며 지금의 생산자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또한 마치 주민들의 상황을 듣는 공공의 주민센터처럼 생산자들의 상황을 듣는 공공의 개발센터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공공의 역할은 그들의 삶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모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도시개발은 '속도'와 '민간 대규모 개발'에 집착하며 첨예한 대립과 폭력을 유발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임동근은 정치지리학을 전공하고 현재 한국교원대 연구원으로 있다. 대도시의 통치성과 통치술 변화를 연구하고 있고,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