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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주방에서 아침밥을 하면서도,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는 저녁시간에도 쉼 없이 부는 바람을 본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바람이 출렁이는것 보다 더 시리게 바람이 부는 날에는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허공을 향한다.

작년 가을, 황금 들판을 지나 장성 황룡강가에 갔다. 노란 꽃 잔치 10억 송이가 핀 꽃길을 걸었다. 아름다운 곳에 이르면 "어이, 여기 서봐" 모델이 되라고 부르는 남편 앞에 나비처럼 날아가 멋지게 한 컷, 사진을 찍다가 남편이 다가와 한마디 했다.

"당신은 여행 할 때 보면 얼굴에 꽃이 피는구먼!"

그랬다. 현실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엄마, 아내인 가정주부로 살아가면서 떠나고 싶다고 쉽게 떠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생각만으로 멈추어있다.

혼자 가는 여행은 꿈일 뿐 언제나 가족, 친구, 부부모임, 형제, 지인들과 여행을 다닌다. 그래도 좋다. 일상이지만 일상이 아닌 떠남이란 자리에서 만나는 산과 들과 강에서 춤을 추듯 바람과 하나 되는 기분이다.

생각만으로 꿈만 꾸던 여행에 대한 동경심이 휴화산에서 활화산으로 변화되기 위한 용트림이 시작되었다. 관계를 떠나 살수 없는 게 인간이지만 때론 홀로 고즈넉하게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같이 가고 싶은 동행자가 있다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해본다. 몇 시간 동안 말없이도 함께할 수 있는 사람, 굳이 할 말이 없는데도 뭔가 말을 해야만 할 것처럼 신경써야하는 관계가 아닌 함께 동행 하는 것만으로 좋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 간혹 감탄을 나누고, 깊은 속내를 꺼내도 지긋이 바라봐주며 들어주는 사람. 필요할 때 필요한 것을 센스있게 해결해주는 사람, 많은 말이 필요 없이 여행하는 순간들을 진솔하게 공유할 수 있는 편한 사람이 있다면 하고 생각할 때도 있다.

이처럼 누군가와 가고 싶기도 하지만 외로움이란 친구는 집에서나 밖에서나 동반해야하는 숨결 같은 것이기에, 함께여서 불편함보다는 혼자일 때가 더 끌림으로 다가올 때는 혼자 떠나고 싶다.

어느 해부터인가 생각만으로 지쳐버린 감성은 진짜 떠남을 원했다. 밥을 하다가 창가에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심장을 노크할 때마다 '아! 바람맞고 싶다'는 생각에 몸이 근질거렸다. 사계절의 변화가 일렁일 때마다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나는 아직도 망설이지만 떠난다는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쿵하고 설레며 초록빛으로 번져간다.

국내 성지순례. 전국투어. 지리산 둘레길 투어. 제주 올레길 투어. 제주 살이 등등 일주일에 한 번씩 떠나보자고 혼자 말 한 지 십여 년이 흘러가고 있다. 무수한 생각으로 계획세우고 애마인 '모닝'을 구입하던 날, 뛰는 가슴과 함께 여행비상가방을 챙겼다. 기본 세면도구와 비상용 옷가지를 정리하며 '준비완료, 이젠 떠나자'고 결의를 다졌다. 그러고도 몇 개월이 흐른 어느 봄날, 가족들 먹을거리를 준비해놓고 나섰다.

고속도로 보다는 지방도로를 타고 시골길 굽이도는 정겨움을 느끼고 싶은 여행, 조금은 쌀쌀 하지만 떠남 자체만으로 설렌다. 온 몸에 바람이 스며든다. 아름답지 않은 곳 있겠는 가만은 나는 20여 년 전 지인들과 떠난 섬진강 굽이도는 구레 길을 좋아한다.

은빛 강물위로 초록빛이 넘실거리던 구례 길에서 만난 첫 설렘을 떠올리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랑하는 님 따라가듯 홀로 떠난 여행의 목적지가 되었다. 일상의 떠남은 잊고 싶은 것들을 잊게 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흘러가게 한다.
 
길따라 마음따라 설렘임은 덤이다
▲ 섬진강변 길따라 마음따라 설렘임은 덤이다
ⓒ 이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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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서 빛으로 변해가는 물줄기를 바라보다 멈춘 곳에 숨이 살아있다. 고즈넉한 시골길에서 정겹게 행복을 담아 가다 저녁 어스름 시골길을 굽이돌아 도착한 구레 화엄사, 누군가와가 아닌 홀로 숙박시설을 들어 가야하는 두려움은 공포 같은 무서움이었다. 그렇게 혼자 밤을 지새운 날을 끝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은 마지막이 되었다.

그 뒤 마음만으로 떠나기만 했던 여행을 다시 실현해 보는 게 새로운 꿈이 되었다. 요즘은 숙박 예약 폭이 넓어져 안심이다. 발이 떨려 못가는 것보다 가슴이 조금이라도 떨릴 때 떠나보자. 더 늦기 전에 혼자 떠나는 여행을 준비하자고 최면을 건다. 무작정 떠나는 것은 젊은 날의 모험이고 이젠 나이만큼 성숙하게 정보를 찾으며 계획하고 준비한다. 여행에 가장 필요한 건 '용기'인 것 같다. 용기라는 계단 끝에 서기위해 오늘 한 계단 오름으로 발을 올린다.

태그:#에세이 쓰기, #한길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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