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날은 너무 덥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에는 한참 돌아가야 해서 택시를 타긴 했지만,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미터기 숫자는 내 예상과 달리 빠르게 올라갔다. 내가 그 숫자들을 흘긋거리던 때, 갑자기 기사님이 미터기를 초기화하고는 말했다.
"아이쿠. 내가 왜 이랬지? 이걸 어쩌나."
기사님은 미터기를 다시 켰지만, 이미 초기화된 숫자가 돌아오진 않았다. 나는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요금을 말씀드렸고, 기사님은 그럼 이걸 어떻게 계산해야 하나, 얼마를 더 받아야 하나, 혼잣말인 듯, 상의인 듯, 중얼거렸다.
나는 그간 택시를 타며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혼자 괜히 초조해졌다. 별 생각없이 카드를 내밀었다가, 꼭 여자들이 이런다고, 아침부터 카드를 내미는 건 꼭 여자들이라는 악담을 들었던 경험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가족들이 모여 있던 날, 한밤중에 세 살 난 조카가 갑자기 아파 올케가 아이를 안고 응급실에 다녀와야 했다. 돌아오던 길, 택시 안에서 아이가 토를 하고 말았다. 당황한 올케는 가방과 몸으로 토를 받았는데, 룸미러로 지켜보던 기사님은 차갑게 말했다고 한다.
"15만 원이에요. 차 안에서 토하면 무조건 15만 원입니다."
올케의 전화를 받고 달려 나갔다. 한동안 실랑이가 있었다. 올케가 재빠르게 대처하고 수습한 터라 택시 안에는 어떤 불쾌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기사님은 원칙이라며 15만 원을 주장했다. 결국 올케는 눈물을 보였는데, 돈이 아닌 서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초기화한 미터기 앞에서 골똘해진 택시 기사님을 보며, 관련 없는 그 일들을 반사적으로 떠올렸다.
기본요금부터 다시 시작한 요금은 더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얼굴 붉힐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나는 택시에서 먼저 내렸다. 남편은 기사님께 으레 나오는 금액으로 알아서 계산해 달라며 카드를 내밀었다. 나는 신경이 곤두섰다. 바가지라도 쓰면 어쩌려고 이러나. 그때 기사님이 말했다.
"아뇨, 아닙니다. 그냥 사모님이 보신 금액만 받을게요. 제가 실수를 해서 죄송합니다."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이 착한 사람들을 앞에 두고 나는 혼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 나란 인간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이란 말인가. 배배 꼬일대로 꼬여 혼자 복잡한 계산이나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내 닫힌 마음을 지나간 일로 전부 다 합리화할 수는 없었다. 나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
설재인 작가의 첫 소설집 <내가 만든 여자들>을 보며, 스쳐보냈던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소설을 읽으며 많이 울고 또 웃었다. 소설 속 착한 사람들이 내 마음을 정화했다. 나는 착한 소설에 관심없다고 종종 말하곤 하는데, 정말이지 가끔은, 착한 소설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마냥 착해 빠진 천사표 이야기라면 이토록 좋아하진 않았을 것이다. 오직 선의와 사랑만이 가득하다면, 그건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니므로. 그러나 성장하는 이야기 앞에서는 이성, 감성 할 것 없이 속수무책으로 녹아내린다. 이 소설 속에 가득한 건 성장, 그리고 연대다.
'바지락 봉지'의 젊은 커플은 소개팅으로 만났다. 여자는 남자의 "죄송합니다"라는 말에 반해 버렸다. 처음 만난 날부터 칼국수에 소주를 마시던 이들은 부부가 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나간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평범한 날,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일하던 여자는 다급한 연락을 받는다. 아침까지 멀쩡했던 남편, 먼저 퇴근해 장을 보던 남편이, 마트에서 갑자기 쓰러져 버렸다는 것. 그를 검사한 담당 의사의 첫마디는 이렇다.
"죄송합니다."(p144)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 발생한 병. 이름은 있지만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도 할 수 없는 병에 걸렸다는 진단. 여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 왜 하필 내 남편인가, 그런 희귀병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논리와 개연성, 설득력 따위 없는 이 상황을 여자는 좀처럼 믿을 수 없다.
남편이 쓰러진 뒤, 중년의 한 남자가 찾아온다. 남편의 병상 앞에 주저앉은 남자는 말한다. 남편이 쓰러지던 날, 접촉사고가 있었다고. 경미한 사고였다. 남편이 걱정은커녕 오히려 남자의 기분을 좋아지게 만들어서 별 걱정없이 넘어갔다. 그런데 이런 병이 생기다니, 그 사고가 방아쇠가 된 건 아닌가 싶다고.
여자는 오열하며 말한다. 아니라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사실은 남자의 존재를 안 뒤부터 정확히 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진심어린 사과 앞에서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진 것이다.
야속하게도, 남편은 끝내 사망한다. 여자는 도저히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한 채 홀로 다섯 해를 보내고, 불의의 사고로 그의 뒤를 따른다. 죽은 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되짚어본다.
"미안하다,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나에게 미안해. 그때의 나에게. 왜, 이유가 뭔데, 라는 답을 찾을 수 없는 물음과 미움에 빠져 허우적대던 나에게. 사실 다리를 쭉 펴면 바닥을 딛고 나갈 수도 있었을 터인데, 스스로 무릎을 굽힌 채 물이 깊다고만 생각했지. (중략)
이유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있었다. 모든 것이 자로 잰 듯 명확한 과학과 논리와 인과관계, 그리고 개연성으로 설명될 수가 없었다. 사람이니까. 살아 있는 것들이니깐. 대체로, 오류와 어긋남이, 기쁨과 사랑을 만들어 내는 것도 사실이었다. 삶은 가끔은 밀고 들어오고, 가끔은 우르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도 했다. 거기에 왜를 묻는 물음이, 굳이 존재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p155)
모든 것을 이해해야 직성이 풀리고, 납득하지 못한 일은 끝내 응어리로 만들어버리는 나는 여러번 울컥해야 했다.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없는 이 소설 덕분에 세상이 긍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녀의 성장 때문일 테다. 또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데는 사람들의 진심과 소통이 있었다는 것도 놓칠 수 없다.
유쾌한 성장을 보여주는 소설이 책 속에 또 있다. '엉키면 앉아서 레프트 보디'의 '나'는 복싱을 시작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현실을 망치다 못해 꿈까지 더럽힌 전 애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물론 실제 때릴 순 없지만, 상상으로나마 리얼하게 두들겨 패주고 싶었던 것.
그렇게 체육관에서 몇 해를 보내는 동안, 어느 새 복수심은 사라진다. 소설로 작가를 판단하는 것을 경계하지만, 책날개의 저자 소개에 의하면 스스로를 '무급의 복싱 선수'라고 소개한단다. 모르긴 몰라도, 운동의 마력을 아는 작가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나 역시 운동의 힘을 믿는 사람으로서, 이 명랑함이 반갑다.
그래도 그렇지 내용이 순해도 너무 순한 거 아니냐고, 그 무뢰한들에게 큰 소리 한 번 치지 않아서야 되겠느냐고 불만을 품을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소설을 권할 차례다. 표제작인 '내가 만든 여자들'이다.
회사의 막내인 희연은 능력있다는 평판과 그러니까 시집을 못간다는 쑥덕거림을 동시에 듣는 임소진 차장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손끝에서, "검은 머리카락 몇 올이 달린 살가죽 같은" 것을 발견한 뒤로.
어느 날 그 수상함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 희연. 희연은 성폭행 기사들로 도배된 임 차장의 집을 보게 되고, 임 차장이 그간 비밀스럽게 해온 일을 알게 된다. 임 차장은 그 업무를 희연에게 전수하길 원하고 희연은 그녀를 통해 또 다른 여자들을 만난다. 피가 난무하는 괴기스러움 속에, 연대가 있다.
이 복수극에 겁먹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녀들이 노리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작자들 뿐이니까. 이 상상이 지나친가? 실제로 남의 엉덩이를 주무르고 직원을 겁탈하고 리벤지 포르노를 유포하는 이들보다? 에이, 설마.
책에는 총 12편의 단편이 실렸다. 뒷표지엔 이 책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사랑, 연애, 이주노동자, 왕따, 성폭력, 내부고발, 연대, 페미니즘, 여성서사' 등이 쓰여 있는데, 어느 하나 빠짐없이 알차게 담겼다. '바지락 봉지'의 부부의 삶처럼, 책도
"맛있게 끓었다. 넘치지도 않고 졸아 버리지도 않게 적당히, 간이 잘 배어"(p141) 있다.
등단하지 않은 작가의 첫 소설이라니, 보물을 찾은 기분이다. 횡재한 기분에,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지나친 극찬을 한 건 아닌가 싶다. 작가나 출판사로부터 책 한 권 받은 바 없음을, 굳이 밝히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