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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가격이 많이 내렸다. 주변에 농사를 지으신 분들이 양파 필요하냐며 선심을 베풀기도 한다. 작년에 양파를 사면서 부담스러운 가격에 주저했던 기억이 있는데 올해는 작황이 좋아 생산량이 늘었다고 한다. 출하를 포기하고 양파밭을 갈아엎는 농가도 있다. 이렇게 농산물 생산량이 늘고, 시장 가격이 폭락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게 있다. 'ㅇㅇ 소비촉진운동'이다.

올 여름에는 양파 소비촉진운동이 한창이다. 농협 등 농산물 관련 유관단체부터 양파 재배 지역의 지방자치단체, 해당 지역 정치인까지 나서서 양파 판매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오랜 기간 정성 들여 키운 양파의 판로가 막막한 농민들에게 정부와 주변의 관심은 심적으로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늘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던 그들에게 다음을 기약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양파 소비촉진운동의 효과는?

그런데 이런 농산물 소비촉진행사를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이런 게 효과가 있을까? 가격 폭락 이전에 할 수 있는 정책은 없을까?

이런 의문이 드는 건 너무나 단순한 이유에 기인한다. 양파 가격이 싸다고 양파를 평소보다 더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양파즙을 먹어볼까 생각할 수 있지만, 양파를 갑자기 간식으로 먹거나 양파 반찬을 늘리고, 국에 두세 개씩 더 넣을 수도 없다. 언론에서 다루고, 마트, 시장에서 행사를 하니 관심을 가지고, 동참할 수 있지만, 한 가정, 식당에서 사용하는 양파의 양은 거의 일정하다. 양파는 장기간 보관하기도 어렵다.

물론, 싼 가격과 사회적 분위기로 약간의 소비량은 늘게 될 것이다. 나조차도 요즘 양파를 얼마 전보다 부담 없이 즐기고 있다. 그러나 늘어난 소비량이 싼 가격 때문인지, 소비촉진운동 때문인지는 분간하기도 어렵다.

또한, 현 시점에서 늘어난 양파 소비량이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려면 가격이 상승해야 하는데 그런 시장의 변화는 없다. 시장 가격이 오른다고 하더라도 가격 변동분이 중간 상인과 최종 판매자에게만 이득이 될 수 있다. 양파 소비촉진으로 농민이 가져가는 이익은 아주 미미한 정도가 될 공산이 크다.

농민을 위한 근본적 대책 고민해야...

그럼 어쩌라고? 양파 가격이 폭락해서 농민들이 울상인 이 상황에 그냥 손 놓고 있으란 말인가? 물론 아니다. 더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 캠페인 정도 해놓고 할 일 다 한 것처럼 생색내지 말고, 양파를 갈아엎기 전에 할 수 있는 정책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일회성 행사로 문제의 본질을 덮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것이다.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인한 피해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문제라 관련 정책수단은 다양하게 알려져 있다. 이번 양파 생산량 증가는 재배면적이 평년보다 크게 늘어 예상했던 상황이라고 한다. 이에 대비한 정부의 수급조절메뉴얼도 있지만, 문제는 적절한 시점에 효과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이를 점검하고, 필요한 조직과 자원을 마련하는 건 정부의 몫이다. 재고량과 작황을 분석하여 농가의 재배 물량을 조절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 관련 공공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빅데이터 활용 기술이 보편화한 이 시대에 파종기의 품목별 빅데이터 분석으로 정확한 수급예측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다.

너무 복잡한 농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산지에서 최종 소비자에게 농산물이 도달하기까지 중간 단계의 비효율적인 구조는 농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농산물의 시장 판매가와 농가 출하 가격의 격차가 큰 건 잘 알려져 있다. 농산물 가격 안정에 효과적인 직거래 형태의 유통망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

반복해서 찾아오는 농산물 과잉 생산과 가격 폭락을 막기 위해 관련 법안이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번 기회에 양파 등 농산물 가격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맞는 농업정책을 고민할 필요도 있다. 소비촉진운동으로 단기적인 관심에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근간으로서 농업이 갖는 중요성에 맞는 접근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양파 소비촉진 분위기에 농민들의 씁쓸한 웃음이 가리지 않도록 말이다.

태그:#양파소비촉진, #농업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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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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