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문방구
주말 아침, 아이들이 분주하다. 아직도 이불 속에 누워 있는 엄마, 아빠 눈치를 보는 듯 안방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평소처럼 TV 봐도 되냐고 묻기 위함일까? 새벽까지 일했던 아내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내가 거실로 나왔다.
"왜? 무슨 일이야?
"아빠. 우리 '색종이 문구' 가도 돼?"
아이들에게 문방구는 최고의 쇼핑몰이다. 단돈 만 원을 가지고 가서 2천~3천 원짜리 장난감을 사 오면 며칠 동안은 내내 그것만 가지고 논다. 너무 일찍부터 소비에 중독되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나의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그러려니 한다. 나 역시도 종이 딱지나 고무 로봇 등을 사서 보물 상자에 모아놓지 않았던가. 다만 너무 자주 가는 게 마음에 걸릴 뿐이다.
"또 가? 너희 저번 주에도 가지 않았어?"
"응. 그런데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제 색종이 문구도 없어진대. 그래서 물건도 싸게 팔고 있어."
"잉? 색종이 문구도? 저번에 학교 앞 '열린 문구'도 닫지 않았나?"
"그러니까. 문방구는 다 문 닫고 있어. 아빠 가게 해줘. 제발."
집과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마지막 문구점의 폐업이라. 당연한 일이었다. 학생들이 줄어들고 인터넷 쇼핑이나 다이소 등이 번성하는 요즘, 동네 문방구가 버티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요즘에는 복지혜택이 늘어 학교에서 아이들의 준비물을 다 구비해준다지 않는가.
아이들은 나름 절박했다. 엄마, 아빠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들의 용돈을 가지고 주말에는 심심찮게 애용하던 문방구가 없어진다고 하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찻길을 몇 번이나 건너는 문방구까지 가는 길이 아이들에게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이었지만, 이제는 문방구 자체가 없어진다니 내가 더 서운했다.
결국 난 흔쾌히 녀석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문방구 쇼핑이니 가서 잘 고르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 이야기해주었다. 어차피 내 돈도 아니고 너희들 돈이니 너희들이 알아서 하면 된다고. 부탁할 필요 없다고. 다만 돈을 너무 많이 쓰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아이들은 좋다며 당장 뛰쳐나갔다.
문방구에 대한 기억
그렇게 아이들을 문방구에 보냈지만 기분은 착잡했다. 주위의 문방구가 사라진다는 사실 자체가 왠지 서러웠다.
사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학교 주위에 널려 있는 것이 문방구였다. 우리는 학교 가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 준비물을 샀다.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문방구에 들러 가게 앞 간이 오락기에서 게임을 하든가, 아니면 안에서 뽑기를 해서 불량식품을 먹곤 했다. 한 마디로 문방구는 우리들의 놀이터이자 아지트였으며, 문방구 주인은 내가 아는 우리와 가장 친한 어른 중 한 명이었다.
'까치방 문구', '사슴 문방구' 등 추억의 이름들. 어머니는 새 학기만 되면 항상 멀리 있는 문구 도매점까지 가서 학용품을 사주려고 했지만, 나는 될 수 있으면 집 근처, 학교 근처 문방구를 고집했다. 근처에 모닝글로리 등과 같은 대형 팬시점이 들어와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내가 동네 문방구를 지키는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문방구가 사라지다니. 내가 어렸을 때 가졌던 애틋한 감정을 아이들이 더 이상 못 느낀다는 사실이 아쉬웠고, 그렇게 아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것이 허전했다. 정부에서 교육의 평등권을 위해 일괄적으로 학용품을 구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18년 동안 이걸로 아이들 다 키웠어요"
며칠 뒤 아이들과 함께 다시 문방구를 찾았다. 또 장난감을 사고 싶다는 아이들의 성화도 있었지만 나 역시 동네 마지막 문방구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문방구가 없어지든 말든 장난감 고르기에 여념 없는 아이들을 두고 주인과 몇 마디 나누었다.
"얼마나 오래 장사하셨나요?"
"여기서 18년 정도 했죠. 이거 하면서 우리 아이들 다 키웠어요. 나도 아이가 셋이었거든. 저 옆에 부동산 있죠? 거기는 남편이 하고, 나는 여기서 문방구 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했었어요. 이제는 그만해야지."
어쩐지. 문방구는 문이 잠겼을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안내판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하면 주인이 금세 오곤 했었다. 저 옆 부동산 주인과 부부 사이었다니. 말 그대로 이 지역의 오래된 자영업자들이요, 토박이 상권이었다.
"그랬구나. 워낙 오랜 세월 동안 하셔서 그만둔다 하니 기분이 이상하시겠어요."
"좀 섭섭하죠. 매일 6시 30분에 나와서 가게 문 열었는데. 동네 아이들도 항상 인사하고. 하지만 이제 그만해야죠. 다이소도 있고, 학교에서 준비물 다 주고 하는데 못 버텨요. 나도 이제 좀 쉬어야지."
"우리 아이들도 많이 섭섭해해요."
"그래요? 건물주도 권리금 주지 못해서 좀 미안했나 봐. 월말까지 시간 더 줄 테니 물건 더 팔라고 하더라고."
주인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18년 동안 한 곳에서 장사를 했으니 이곳에서 산 준비물로 공부하고 졸업한 학생만 해도 2000명이 훌쩍 넘을 거다. 문방구는 동네에서 아이들의 놀이터로, 쇼핑몰로, 아지트로 모두에게 소중한 기억을 선사했을 테지.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폐업정리로 물건을 워낙 싸게 파는 바람에 어린이 손님들이 쇼핑하느라 들락날락하고 있었고, 주인도 어린 손님들의 질문에 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제 곧 이 풍경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또 새로운 장난감을 골랐다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분이 묘했다. 또 이렇게 내 유년의 기억이 사라지는구나. 이제 태어난 아이들은 문방구를 오래된 영화나 드라마에서 접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기억하겠지. 나의 유년을 아이들이 만화 <검정 고무신>으로 이해하는 것처럼.
시간이 갈수록 뭐든지 빨리 변하는 것이 세상 이치라고는 하지만, 가끔은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만 해도 힘이 되는 것들이 있다. 아마도 문방구는 내게 그런 존재였던 것 같다. 안녕, 문방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