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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선철 소장(오른쪽), 김승희 과장(왼쪽)
 이천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선철 소장(오른쪽), 김승희 과장(왼쪽)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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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무실에서는 우리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일해요. 우리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 있기 때문이죠.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배려할 수 있지요. 예컨대 음식점이나 상가 입구에 경사로를 설치하는 거예요. 휠체어를 탄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계단을 오르내리기 어렵거든요. 바리스타 실기시험장에도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테이블을 설치하면 서서 걸어 다니는 사람은 물론 키 작은 사람, 혹은 앉아있는 사람도 편리하게 커피머신을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이천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이천IL센터) 김선철(44) 소장과 김승희(45) 과장의 이야기다. 지난 12일 오후 이천IL센터에 들어갔을 때 김선철씨는 로스터기(커피 생두를 볶는 기계)에 생두를 볶고 김승희씨는 컴퓨터로 업무를 보고 있었다.

김선철씨는 휠체어를 탄 바리스타 세계1호, 김승희씨는 세계2호이다. 두 사람은 중도 척수장애1급이다. 김선철씨는 스물아홉 살, 김승희씨는 대학교 2학년 때였다. 한 사람은 트레일러 전복 사고로, 한 사람은 교통사고로 인해 척수가 손상됐다. 그 후부터 그들은 여러 해 동안 병원과 집에서 생활했다.

두 사람이 사회로 나와 2013년에 이천IL센터 문을 열게 된 계기는 작은 희망과 함께 뜻밖에 '커피'였다. 김선철씨는 2010년 서울시척수장애인협회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고 2013년 당시 주부였던 김승희씨는 김선철씨의 바리스타 첫 교육생으로 만났다. 김은정(47) 이천IL센터 행정국장도 함께 했는데 그녀는 당시 김선철씨 활동보조역할을 하며 행정업무를 맡았다.

첫 시작은 미약했다. 이천공설운동장 근처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커피머신 한 대였다. 싱크대는 없었고 설거지는 화장실에서 했다.
   
"열악한 환경이었죠. 그런데도 아침이면 일하러 나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좋았어요. 행복했죠. 장애인 바리스타 교육을 하는 곳이 드물었던 시절이라 이천 근교 여러 지역 사람들이 찾아오셨고요. 모두 불편불만없이 즐겁게 참여했죠. 커피는 배울수록 매력이 있었어요. 열심히 배우고 아는 지식을 행동으로 옮기면 그것에 대한 변화가 바로 눈에 띄어서 더 끌렸던 것 같아요.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 재능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더군요. 취미를 일자리로 연결하여 급여를 받고 싶다는 소망도 생겼고요. 더불어 장애를 가진 다른 사람도 우리처럼 사회 구성으로서 당당하게 일을 하고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생겼습니다."  

 
김선철 님이 로스터기에 커피생두를 볶았다.
 김선철 님이 로스터기에 커피생두를 볶았다.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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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씨가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자 이천IL센터는 장애인 바리스타 자격증 과정(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사업)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그로부터 6년간 앞만 보고 달렸다. 그동안 장애인 300여 명에게 바리스타 교육을 실시했고 2015년에는 이천IL센터를 이천시 설봉로로 확장 이전했다.

'꿈 볶는 카페'(이천시 부발종합운동장 소재)도 열었고 2017 전국장애인바리스타대회에 출전해 대상을 수상했다. 2018년부터는 이천시 지원으로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직원은 꿈 볶는 카페 근무자 3명을 포함해 11명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시간도 그 나름대로 행복했어요. 근데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일을 하는 과정을 통해 제 안에 숨어있던 열정, 적극적인 성격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어요. 신기하고 재미있었죠. 사라졌다고 치부하고 잃어버린 나를 찾은 기쁨이라고 할까요."

두 사람에게 맛있는 커피에 대해 물었다. 같은 커피로 똑같은 온도와 같은 시간 동안 커피 생두를 볶고 그 커피를 갈아 추출하는데도 커피 맛은 다르다고 한다. 커피 원산지, 그날의 날씨와 로스팅을 하는 사람, 커피 보관 방법, 바리스타 등에 따라서. 그러면서 두 사람은 덧붙였다.

"커피를 좋아하시는 분이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이 커피는 아주 고급스럽고 맛이 좋은 커피랍니다'라고 권하면 실례가 되겠지요. 내 입에 맛있는 커피를 권하기보다 상대방의 취향 선호하는 커피의 맛과 향을 고려하여 드리는 게 진정한 바리스타의 덕목인 것 같아요. 진정한 배려 역시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잘 살펴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요즘은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다양한 눈높이에 맞춘 편의 시설이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시민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한다. 김선철씨는 이어  '장애인 힐링마을'에 대해 말했다. 장애인들이 마음을 나누고 치유 받고 즐겁게 일하고 자립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꿈이다. 

김선철씨와 김승희씨, 김은정씨는 서로에게 고마워했다. 고통의 터널과 행복한 순간 등 일상을 함께 해온 가족에게, 힘과 용기를 주면서 결국은 그 존재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도록 같이 와준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마치고 며칠 후 영화의 대사 한 대목이 떠올랐다. 실화를 바탕으로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린 영화 <언터처블:1%의 우정>의 대사, 백만장자이며 장애인 필립이 가난한 비장애인 드리스를 생각하며 한 말이었다.

"그 애는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해줘. 날 평범한 사람과 똑같이 대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의 일부는 이천소식 5월호에 실립니다.


태그:#이천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언터처블:1%의 우정, #배려 , #유니버설 디자인, #힐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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