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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모양으로 만들어 지푸라기 위에서 몇일동안 말린다.
메주는 아무리 잘만들어도 메주다.
▲ 메주 만들기 적당한 모양으로 만들어 지푸라기 위에서 몇일동안 말린다. 메주는 아무리 잘만들어도 메주다.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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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겨울에 쑤어 말린 메주를 비닐하우스에 매달아 뒀었다. 보름 전쯤, 곰팡이가 덜 핀듯해 집으로 가져와 이불을 푹 씌워 놨다. 이제 곧 소금물에 담궈 간장을 빼야 하니 꺼내 말리기로 했다.

어느 분은 소금물에 담그는 걸 두고 '메주를 재운다'고 표현하던데, 참 정겨운 표현이다.

말리기 전 먼저 적당한 크기로 깬다. 녀석이 상당히 단단하니 망치가 필요하다. 적당한 크기로 쪼개졌다. 먼저 안쪽까지 곰팡이가 잘 피었는지 살핀다. 하얗거나 누른 곰팡이가 피었다면 좋은 거다. 혹 검은색이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메주가 크다 보니 공기가 닿지 않아 혐기성 발효가 일어난 것으로, 잘 떴다고 인정해 주지는 않는다.

진단할 때는 눈뿐만 아니라 코도 한몫한다. 예전 이맘때쯤 어머니께서도 메주를 적당한 크기로 깨어 널었고, 난 메주 조각을 집어 들고 킁킁 거렸었다.
 
만족할만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잘떴다.
▲ 메주 쪼개기 만족할만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잘떴다.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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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몇십 년전 어머니의 메주 냄새가 난다. 그럼 합격이다. 나이를 적당히 먹어 내가 하는 일이 제대로 된 건가 아닌가를 판단할 때 자연계의 현상과 비교해 보기도 하고 역사상 사건과도 견줘 보기도 한다.

옆에 있는 어른에게도 물을 수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일단 어머니의 기억을 찾아보는 것. 어머니는 또 윗대 할머니에게서 보고 듣고 배웠을 것이고, 거슬러 올라가면 시작이 어디였는지 모르나 여하튼 엄청난 경험의 축적이므로 일단 믿어도 된다. 이것이 역사다.

오늘 내 경험이 후대로 이어질 수 있을까? 그건 모르겠다. 어려 안방에 매달렸던 메주를 보고 냄새 맡고 친구 누구는 잠자다 메주가 떨어져 엄청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세대와 간장, 된장, 고추장은 마트에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세대와는 다르니 말이다.

연어의 모천회귀는 새끼 때 맡았던 고향의 강물 냄새를 찾아오는 과정이라는데, 지금 청소년들에게는 메주라는 모천이 없다. 그렇다고 아예 포기할 필요는 없다. 보고 냄새 맡고 만지지 않았더라도 다른 기억은 남아있다. '조상들이 메주를 쑤었다'더라 라고 들었고, 어느 날 '책에서 보니 그땐 이랬다'더라는 기억들이 합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메주를 앞에 두고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도 이제 전해줘야 할 세대가 됐나 보다.

메주는 참으로 못 생겼다. 쑤어서 매달아 놨을 때도 그렇더니 말리려 채반에 널어놔도 그렇다. 저리 못생긴 모습으로도 몇천 년 조상들과 함께 살아와 오늘에 이르렀다니 이제 못 생겼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기 미안하다.

사실 메주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른다. 막연히 삼국시대 어드메쯤이라 말하는데 사실 메주의 재료인 콩이라는 식물이 그리 간단히 짐작할 만큼 만만하지 않다.

'오른다'는 뜻의 '登'(등)이라는 글자를 살피면 제사상에 콩이 오른다는 뜻이다. '豊'(풍)이라는 글자는 붓글씨를 쓰기 위해 변형된 모양이고 원 글자를 찾으면 콩 꼬투리 하나에 알이 세 개씩 들어 꽉 차있는 상형문자 그대로의 모습이다.

메주콩의 원산지는 한반도와 만주를 어우르는 지역인데, 정확히 고조선 강역과 일치한다. 조상들이 이곳에서 콩 농사를 지었고, 제사상에 올렸다는 사실이 그대로 글자에 나타난 것이다.

한자를 발달시킨 건 분명 한족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의 원시조상이 살던 곳에 메주콩이란 존재하지도 않았었다. 지금도 중국 콩의 주산지는 만주다.

고조선 강역이고 우리 조상들이 살던 곳이기에 콩을 이용한 메주가 삼국시대어름에 생겼을 거라고 예측하기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발해시대에 당나라로 대량의 콩을 수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걸 보면 분명히 고조선 강역이 콩의 주산지이고, 콩을 이용한 음식이 발전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민족의 세가 줄어들어 반도에 갇히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거의 유일한 단백질공급원이 됐기에 더욱 애착을 가지며 지켜왔을 콩이 오늘 메주의 모습으로 내 앞에 놓여있음이 감개무량하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본다. 우리 집 콩밭엔 콩 사이사이로 언제나 수수가 심겨져 있었다. 우리 밭뿐만이 아니다. 모든 콩밭은 다 마찬가지였다. 콩이 누릇누릇 익을 때면 수수도 당연히 붉게 익어갔다.

어머니는 밥을 지으며 수수의 목을 잘라 앉혀 같이 익혔고, 우리 형제들은 수수목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 한바탕 다투곤 했다. 결과야 언제나 빤하다. 큰오빠가 제일 많이 가져가고 그다음은 막내인 나다.  당시에야 당연히 콩밭에 수수를 심는 것으로만 알았었다.

어느덧 청년으로 자라났고 어느 날 콩밭을 보니 이제 수수가 없다. 어머니께 물으니 그땐 먹을 게 없어서 너희를 먹이려 심었고, 이제 먹을 사람 없으니 필요 없다는 거다. 참 싱겁다. 다른 이유는 없는 걸까. 살다보면 미심쩍은 의문은 당장은 잊혀진 듯 보이지만 때가 되면 언제든 불쑥 튀어나와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날 노인 부부가 사는 집에 우연히 가게 됐고, 마침 부부가 사이좋게 앉아 메주콩을 삶고 있었다. 커다란 무쇠 솥이 하얀 김을 내뿜으며 메주를 삶을 때는 아주 고소한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게 아니다. 고소한 아니 구수한 냄새 사이로 달착지근한 기운이 섞여 들어온다. 이게 뭘까 설마 이분들이 설탕을 넣지는 않았을 텐데

"요즘 젊은것들은 뭘 몰라 콩밭에 수수를 심어야 메주가 달고 장이 맛있는 법이야."

20여 년만에 콩과 수수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콩과 수수를 심어댄 이유가 있었구나. 확성기를 들고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악을 써서 방송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콩밭에 수수를 심읍시다. 콩밭에 수수를 심읍시다."

그 후로 우리 집 콩밭은 사라졌던 수수가 다시 돌아왔고 초겨울날 달고 구수한 메주콩을 삶는다. 적당히 쌀쌀해야 한다. 시골일의 순서란 게 벼를 수확하고 콩을 거둬들이고 김장을 하고 나서 메주콩을 삶으니 쌀쌀한 날이 되기 쉽다. 포근한 날 삶으려면 왠지 기분이 덜하다.

콩을 골라 무쇠솥에 넣는다. 어찌 보면 무식하다 할 만큼 물을 많이 잡고 하염없이 불을 땐다. 양은솥에 삶아도 삶겨 지는데 왜 무쇠솥만 고집하게 되는지 모르지만 당연히 그래야만 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아무런 불만이 없다. 오히려 양은솥에 삶자면 다들 나서서 한마디씩 해댈게 분명하다. 나도 그럴 거 같다.
 
 솔이나 칫솔로 지푸라기나 잡티를 제거한다.
▲ 메주 세척  솔이나 칫솔로 지푸라기나 잡티를 제거한다.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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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에 열기가 오르고 한참 지나면 지난해에 콧속 깊숙이 스며들던 그 냄새가 찾아든다. 정확히 1년에 한 번이다. 약한 불로 조절하고 한 시간에 한 번씩이나 뚜껑을 열어 얼마나 물렀나 확인한다. 메주콩의 양에 따라 다르겠지만 너댓 시간은 때야 한다. 적당히 무른다.

어머니 세대까지는 삶은 콩을 절구질 해서 메주를 만들었지만 게으른 난 그럴 생각이 없다. 아니, 절구도 망가진 지 오래다. 그냥 광목자루에 넣어 밟는다. 콩이 다 부셔지면 맛이 덜하다니 적당히 밟아 메주 모양을 만든다.

얼마나 더 만들어야 예쁜 메주를 만들 수 있으려나 통통 하게도 납작하게도 만들어 보았지만 메주는 정말 메주다. 포기한다. 적당히 모양을 잡은 메주를 미리 준비한 볏짚 위에 올려둔다. 오늘 일과는 끝이다. 한 이틀 지나 적당히 굳기를 기다려야 한다.

메주가 굳으면 반드시 볏짚으로 새끼를 꼬아 묶는다. 새끼를 꼬지 않아도 좋으니 반드시 볏짚을 잘 추려 묶어야 한다. 노란색 볏짚으로 잘 묶어 놓으면 다소 예뻐 보인다.

이제 매달아야지. 이전에는 어느 집이던 안방에 어설픈 시렁을 만들어 매달아 놨다. 매주 뜨는 냄새가 방에 베었고 으례 그런 것 이니 아무렇지도 않게 살았는데 요즘 그런 집은 없는 듯하다.

강원도 어느 곳은 아예 황토방을 지어 말린다니 참 좋을 듯하다. 내가 만든 메주는 마을에 있는 비닐하우스로 간다. 겨우내 비워 놓으니 이미 여러 집 메주가 매달려 있고 내 것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겨울을 난다.

그리고 나서 집에 온 지 보름여 이제 씻어 말려 소금물에 담그는 일만 남았다. 흔히 정월 마지막 말날(午日)에 담근다.

달걀이 500원짜리 동전 크기로 뜰 때 까지 소금을 풀고 숯과 고추를 넣어야 한다.
며칠 남지 않았다.

이제 메주는 간장과 된장으로 변한다. 올해는 더 맛있게 해봐야지.
 
세척한 메주를 몇일동안 해에 말려 장을 담근다
▲ 메주 말리기 세척한 메주를 몇일동안 해에 말려 장을 담근다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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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메주, #콩, #장담그기, #매주재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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