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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시인의 학교詩끌'은, 학교가 폭력으로 시끌시끌하다는 뜻, 시(詩)로 학교를 끌어당기거나 끌어준다는 뜻, 결국에는 좋은 의미에서 학교가 시끌시끌 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글이 학교폭력 예방 문화를 만들어 나아가려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기자말

이국종 교수의 책 <골든아워>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응급의학에서 쓰는 단어인 '골든타임'은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생명을 살리는 데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런데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죽음에 달라붙으려는 마음들은, 죽은 마음을 다시 생명으로 옮겨놓으려는 마음속에서만 되살아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랑의 마음도 시간의 구애를 받는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눈동자는 블랙홀이다.
나는 그런 눈동자를 본 적이 있다.


내가 학교 지킴이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쉬는 시간 종이 치자마자 파란 조끼를 입은 채 학교 건물과 운동장을 순찰하고 있었다. 체육복을 입고 교문을 나서는 학생을 발견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학생을 그 타이밍에 발견한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었다. 몇십 초, 아니 몇 초만 어긋났어도 나는 그 학생이 그렇게 교문 밖으로 걸어 나가는 장면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학생의 태도는 한눈에 봐도 이상했다. 얼른 뒤쫒아가서 어깨를 잡았다. "너 어디 가니?" 그리고 블랙홀 같은 그 학생의 눈을 보았다.

"더 이상 학교에서 배울 것이 없어요"

학생이 학교에 있지 않는다면 이 한국 어디에도 그런 학생을 학생답게 받아줄 곳이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누가 이 학생을 학교 바깥으로 내몰았는가. 답은 학생이 도망쳐 나온 학교에 있을 것이다. 학생의 자리가 있는 교실 안에 있을 것이다. 나는 그 해답을 반드시 찾고 싶었다.

'인천 아파트 중학생 집단폭행 추락사' 사건을 보면서

학교와 교실에서, 심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주택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몇 주 전에도 가슴을 내리찍는 사건이 벌어졌다. 인천에 있는 한 아파트 옥상에서 추락해 숨진 10대 중학생을, 추락 직전까지 집단으로 폭행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학생들의 폭력은 갈수록 잔인해진다.

"인천 중학생 집단폭행 추락사 사건의 가해자 중 1명이 구속될 당시 입은 패딩 점퍼가 피해 학생으로부터 빼앗은 점퍼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2018년 11월 17일 KBS 뉴스 <'인천 중학생 추락사' 경찰 "가해자 입은 패딩 피해자 것 맞다"> 이현준 기자의 기사에서 발췌)
 
내가 쓴 시 '어른들은 좋은 말만 하는 선한 악마예요'를 포스터로 만들었다. 포스터를 들고 조만간 나는 학교 앞으로 가려한다. 마이크 들고 시를 낭독할 것이다.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려는 학생들의 마음을 두 손으로 안전하게 받아 안고 싶다.
▲ 생명을 건지는 두 손 내가 쓴 시 "어른들은 좋은 말만 하는 선한 악마예요"를 포스터로 만들었다. 포스터를 들고 조만간 나는 학교 앞으로 가려한다. 마이크 들고 시를 낭독할 것이다.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려는 학생들의 마음을 두 손으로 안전하게 받아 안고 싶다.
ⓒ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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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혔다. 이 뉴스를 보면서 나와 똑같은 심정인 사람이 있었다. 지난해 10여 명의 학생들에게 집단으로 폭행을 당한 피해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의 어머니는 그 당시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셨고, 나는 거기까지 찾아갔다. 어떻게든 만나서 힘을 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어머니를 카페에서 직접 대면했을 때 그간의 슬픔으로 응축된, 뜨겁게 흐르는 눈물을 볼 수 있었다. 나도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어머니께서 며칠 전 저녁에 문자를 보내오셨다. "이런 기사들이 나올 때 얼마나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지 또 가슴속의 피눈물이 나는지 아무도 모를 겁니다" 어떤 위로도 조언도 해드릴 수가 없었다. 그저 학교폭력 근절 운동을 멈추지 않고 계속 하겠다는 약속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마음 죽은 자들의 포옹이 시작되었다.

시집 <프로메테우스> 수록 시 '죽은 자들의 포옹'에는 이런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네가 행복하고 싶어서 (···) 난간에 가 선다면/ 나는 듣고야 말 거야 나는 너의 이야기를 안고 더 멀리 걸어가고야 말 거야"

요즘도 폭력 근절 강의를 하러 학교에 도착하면, 늘 이 구절이 내 머리와 가슴의 중간 어디쯤 걸려 있다. 아픈 학생을 실제로 만나면, 이 문장은 조금 더 아래쪽으로 내려와 가슴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심장의 두근거림 속에서 울고 있는 한 문장이 있다.

아픔이 있는 그곳에, 블랙홀 같은 눈동자를 하고 있는 학생 곁에, 늘 먼저 가 있을 수는 없을까. 그래서 한나절 그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그들은 툭툭 털고 다시 집으로, 따뜻한 자기 방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더 멀리 보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갈 시간을 얻게 되지 않을까.

자살을 결심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난다.

어른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지만, 절대로 그 원인이 되는 일들을 사전 격파하지 않는다. 격파 시범처럼 틀에 박힌 쇼를 하거나, 더 심하게는 격파하는 시늉을 하거나, 아예 격파 자체를 취소시켜 버린다. 다 어린애들 장난 취급을 한다. 학교폭력은 다 '한때의 일'이라고 치부한다. 한때의 일. 그 한때의 일에 갇혀 있다가 영영 보이지 않는 그런 학생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른들이 모를 리 없다.

누가 그 학생을 옥상 위에 올려다 놓았는가. 누가 그 아이를 그 추락의 높이 위에서 절레절레 머리 흔들고 내려오지 못하게 했는가. 죽음의 공포보다 더 높게 쌓인 증오와 불신 그리고 병든 불안들이 요즘의 학교 안에 있다.

자기 자신의 이름을 잃는 상황들이 학교에서부터 생겨난다. 자기 이름을 얻으라고 보내는 곳이 학교이다. 한 명 한 명의 학생들에게 맞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만들어서 호명해주는 일을 학교가 담당해야 한다. 학생이 밤늦도록 고민해서 얻은 반딧불이 같은 작디작은 이름을 문질러 지워버리는 일을 학교가 해서야 되겠는가.

나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 아니, '당장'
그 학생의 손을 잡았다.


나는 눈을 본다. 앞으로 그들이 볼 무수한 아름다움이 있어 그 눈은 더 밝고 아름답다. 아직은 자신의 창문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몰라서 헤매는 학생들을 많이 본다. 그런 그들의 영혼을 보아 줄 선생님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더 이상 학교에선 배울 것이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교폭력 앞에서 우리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야 한다. 나는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나와 함께 가자. 내가 앞장설게. 네가 있던 곳으로 같이 가자"

학생의 눈이 감기는 것을 보았다. 눈을 감기 위해 감는 것이 아니라, 다시 뜨기 위해서 잠시 감는 그런 눈감음이었다. 상처받은 학생은 쉬 손을 잡지 않는다. 오랜 시간 무관심 속에 방치 되어 있었기에……. 타인의 말을 잘 믿지 않을뿐더러, 스스로의 감정과 사고 또한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 왜 모르겠는가. 나도 그랬던 것을……. 나는 진실로 그 학생에게 '믿음'을 주겠다는 눈빛을 보여주었다. 결국 그 학생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나도 그 학생의 손을 영영 놓지 않았다. '우리'는 학교 건물로 다시 들어갔다.
  
학교폭력 근절 강의 때, 중학교 교실 칠판에 적은 문장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도 둘러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글귀를 적었다.
▲ 칠판에 쓴 마음 학교폭력 근절 강의 때, 중학교 교실 칠판에 적은 문장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도 둘러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글귀를 적었다.
ⓒ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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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도 아닌 '우리'가 될 때
우리는 '학교폭력'이라는 '사실'에 간신히 '도달'한다.


사실이 들어있는, 두들겨 맞아 피로 가득 찬 곳을 '제때'에 '개복(開腹)'해야 '죽은 심장'은 비로소 다시 뛴다. 생명 구조의 영원한, 본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2018년 12월호에도 실은 글을 다듬은 것입니다.


태그:#학교폭력, #피해자, #자살, #투신, #골든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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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없는 학교를 소망합니다. 제 첫 시집 『프로메테우스』를 학교에서 낭독합니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피해학생들을 치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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