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윙키즈> 포스터.

영화 <스윙키즈> 포스터. ⓒ (주)NEW

 
연말 스크린 시장, 대격돌의 포문이 열렸다. 작년 12월에는 <신과 함께-죄와벌>과 < 1987 > 그리고 <강철비>가 개봉해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올 겨울 역시 만만치 않은 한국 영화들이 개봉 대기 중이다. 최초 1억 관객을 동원한 배우 송강호의 <마약왕>, 최연소 1억 관객을 동원한 배우 하정우의 < PMC: 더 벙커 > 등이 그 주인공이다. 수년 동안 한국 영화 티켓파워 최상위를 기록한 두 배우의 주연작이 연달아 선보일 예정이라, 영화 팬들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 더욱이 마약왕은 정치스릴러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 <PMC>는 과감하고 신선한 한국영화로 손꼽히는 <더 테러 라이브> 김병우 감독의 신작이다. 

그런데 이들에 맞서 발빠르고 과감하게 언론에 먼저 공개된 작품이 있다. 바로 <과속스캔들>, <써니>의 강형철 감독이 연출한 <스윙키즈>가 그것이다. <스윙키즈>의 투자배급사인 NEW 측은 개봉일 역시 일찌감치 확정했다. 그만큼 흥행에 대한 자신감이 크기에 가능한 제스처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러한 자신감이 충분히 온당함을 언론시사회를 통해 입증하였고, 작품의 매력도를 높인 중심에는 바로 배우 도경수가 있다. 

뮤지컬 <로기수>를 원작으로 한 영화 <스윙키즈>는 1951년 미군이 지휘하는 거제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북한 인민의 영웅인 '로기진'의 아우이면서 춤에 대한 본능적 갈망을 품고 있는 북한군 포로 '로기수'(도경수 분)를 중심으로, 포로수용소의 탭댄스팀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실제 한국전쟁 당시, 어느 종군기자가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춤추는 포로들을 촬영한 바 있다. 뮤지컬 <로기수>는 이 사진이 모티브가 되어 창작되었고, 영화 <스윙키즈>는 뮤지컬을 다시 재해석한 작품이다.  
 
 영화 <스윙키즈> 스틸 컷.

영화 <스윙키즈> 스틸 컷. ⓒ (주)NEW

 
이미 전작들을 통해 춤과 노래를 영화 속에 변주하는 데에 남다른 재능을 발휘했던 강형철 감독은 <스윙키즈>에서 역시 탭댄스의 리드미컬한 템포감과 흥겨운 춤사위를 영화에 잘 녹였다. 비틀즈, 데이비드 보위의 명곡 뿐만 아니라, 1980년대 한국 대중가요 히트곡까지 탭댄스의 선율에 얹어, 판타지의 세계에 인도하는 마냥, 관객을 들썩이게 만든다. 

더욱이 사연 넘치는 인물들로 구성된 오합지졸 탭댄스팀의 면모도 적당한 유머와 아련한 감성을 자극하며 관객의 마음을 단숨에 젖히는 데 힘을 보탠다. 힘겹게 동생들을 부양하면서도 4개 국어에 능통한 당찬 여성 양판래(박혜수 분), 전쟁 중 헤어진 아내를 찾고자 유명해지기 위해 댄스팀에 합류한 사랑꾼 강병삼(오병세 분), 반전 댄스 실력을 지닌 중공군 샤오팡(김민호 분), 미군 내에서 인종차별을 받는 흑인 병사지만, 전직 브로드웨이 탭댄서로서 애정으로 댄스팀을 이끄는 미국군 잭슨(자레드 그라임스 분) 등이 그들이다.  

무엇보다도 영화는 '미제의 앞잡이'인 탭댄스를 애써 외면하지만, 어쩔 수 없이 끌리는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로기수의 딜레마를 <빌리 엘리어트>를 연상시키는 감각적인 연출로 극대화시키며, 댄스 영화로서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특히 잭슨과 로기수의 댄스 배틀은 이 영화를 선택한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점쳐본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진행 중인 엄혹한 시기에 북한군 포로수용소에 벌어지는 이야기가 마냥 즐거울 리 만무하다. 실제 거제 포로수용소에서는 북한 송환을 희망하는 친공포로와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포로들이 대립하여 유혈사태를 빚었고, 1952년에는 친공포로들이 수용소장을 납치하고 이후 무력이 개입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영화 <스윙키즈>는 해당 사건을 적극 반영한 듯, 영화의 중반부부터 급작스럽게 진지하고 어두운 톤으로 전환된다. 물론 탭댄스팀의 희로애락이 간간히 삽입되지만,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아귀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지는 않으며, 따라서 영화의 중후반부에 스토리의 탄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수용소 내 사건들이 진행됨에 따라, 로기수의 심리를 보다 풍부하고 섬세하게 보여줬더라면 그의 비극성이 더욱 부각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이념으로 무장한 극단적이고 평면적인 캐릭터들의 등장하는데, 1950년대 선연한 냉전의 시대, 이들에 대한 보다 치열한 접근이 필요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한국전쟁 당시의 비참한 실상을 명징하게 투영시킨 에피소드들은 관객의 공감을 이끄는 데에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강형철 감독은 뮤지컬 <로기수>를 "백만불짜리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큰 고민 없이 영화 <스윙키즈>를 만들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는 포로수용소에서 탭댄스의 매력에 빠진 북한군이라는 설정이, 태생적으로 진폭이 큰 딜레마를 내포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 본다. 
 
 영화 <스윙키즈> 스틸 컷.

영화 <스윙키즈> 스틸 컷. ⓒ (주)NEW

 
무엇보다도 선택의 갈림길에 선 주인공 로기수의 고뇌와 분투, 그리고 열망을 배우 도경수는 스크린을 압도하며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남다를 수밖에 없는 탭댄스 실력이야 예상 가능했지만, 이에 더해 찰진 북한 사투리를 구사하며 반항아적인 눈빛과 호기로운 말투를 장착한 그만의 '로기수'에서 대체가능한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스크린 데뷔작 <카트>에서부터 비범한 연기를 선보이며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청춘의 초상을 그려온 도경수는 이번 작품으로 배우로서 보다 폭넓고 탄탄한 입지를 쌓으리라 기대한다. 

<의형제>, <고지전>, <강철비>등 남북문제를 다룬 다수의 한국 작품들에서,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개인 혹은 시스템에 의해 인간성이 파괴되어 가는 실상을 그려낸 바 있다. <스윙키즈> 역시 주제적인 측면에서 궤를 같이하는 작품으로, 이념의 신봉이 자유를 제약하는 장애물이라고 설파한다. 비상을 방해하는 현실의 제약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시공간을 뛰어넘는 빌런일 것이다. 로기수의 현란한 발놀림과 춤사위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면 아마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오는 19일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영화 스윙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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