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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서 '짱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은 친구가 하나 있다. 성씨가 장씨인 30대 중반 젊은이인데 일처리도 빠르고 정확하며 성격도 활달한 데다 외국어에 능통한 친구다. 무엇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넘친다. 근데 지금 별명을 바꿔줄까 고민 중이다. '곱빼기 짱다르크'로.

작년에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돈의문박물관마을 도시건축비엔날레 실무자로 있으면서 <시골집 고쳐 살기> 저자인 내게 강의를 하나 맡기면서 알게 된 사이다. 그가 며칠 전 내게 부탁을 한다고 연락이 왔다.

국제기구에서 알게 된 인도 친구가 한국에 오는데 학대받는 노인들을 보호하는 시설을 돌아보고 싶다면서 나더러 알아봐 달라는 부탁이었다. 내가 어머니를 오래 모신 데다 광역지자체의 치매관리센터 자문위원 일을 2년 하면서 노인 관련 법령과 시설을 잘 알고 있으리라 여겼나 보다.

나는 그동안 귀농지 상담에서부터 농지 구입, 집수리, 자녀교육, 채식, 자연건강, 명상수련, 부모 모시는 문제까지 온갖 상담과 자잘한 부탁을 들어왔다. 이런 종류의 부탁을 받으면 몇 가지 기준을 적용한다. 부탁 내용이 속속들이 알찬 것인지 아니면 거두절미한 채 주어와 술어만 있는지를. "귀농을 하려는데 어떻게 해?"라는 부탁은 무성의의 극단에 속하는 부탁이다.

취지와 목적, 동기와 조건 등이 갖추어지지 않은 부탁은 파투가 나기 쉽다. '아니면 말고' 식의 부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짱다르크는 그렇지 않았다. 짧은 카톡 문장 속에는 부탁 내용이 가지런했다. 내가 질문할 게 없을 정도다.

이 정도에 그쳤다면 별명 앞에 '곱빼기'를 붙여 줄 생각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탁하는 사람의 두 번째, 세 번째 덕목도 갖추고 있었다.

이 친구는 내가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알려 준 내용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취사 선택하지 않고 나와 상의하면서 조절하였다. 인도 친구가 원하는 지역에 있는 해당 기관 두 곳을 알선해 줬는데 짱다르크는 두 곳이 같은 성격의 기관이면 한 곳만 가도 안 되겠냐고 물어왔다.

이뿐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부탁을 했다면서 그분이 알려온 노인 기관을 내게 알려 주면서 의견을 구했다. 이런 자세는 부탁하는 사람의 모범 중 모범이라 하겠다. 부탁할 때는 급한 마음에 소개 해 준 사람의 의중보다 자신의 판단을 마구 뒤섞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때에 사달이 난다.

돌이켜보면, 부탁을 들어주고서 낭패를 본 경우가 적지 않다. 아무 통보도 없이 찾아가기로 한 곳에 안 가거나 연락도 안 하는 경우다. 그러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쪽에서는 내게 화를 낸다. 나는 자초지종을 파악해서 해명해야 했다.

정읍 어디로 귀농하려는 선배 한 분이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빈집에 딸린 농지가 꽤 쓸 만했다. 내가 직접 찾아가서 집 상태도 살피고 묵은 논밭의 등기부까지 확인하고서 연결을 해 줬는데 며칠 지나고 원주인한테서 내게로 연락이 왔다. 오기로 한 사람이 안 오는데 땅을 다른 곳에 넘겨도 되냐는 것이었다.

웬일인가 하고 선배에게 연락했더니 약속과 달리 땅 주인을 찾아가지는 않았고 내비게이션으로 지번을 찾아서 가 봤는데 마음에 들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그럴 수 있다. 부탁 내용이 부실해서였건 선택 기준이 달라서였건 마음에 안 들 수 있다. 그런 차이와 변화를 공유하는 게 중요한데 그 선배는 생략했다.

땅 주인에게 전후 과정을 설명했지만 나를 못 믿을 사람 취급했다. 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 <귀농통문>을 한 권 우편으로 보내드리고 귀농교육기관을 잘 살펴보고 조건에 맞는 곳과 상담해 보라고 했는데 선배는 책은 들춰보지도 않고 귀농교육 받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고 전화를 하는 사람이었다.

짱다르크의 다음 연락이 기다려진다. 내가 알선한 기관을 찾아갔는지, 아니면 안 갔으면 어땠는지를 알려 줄 것이다. 그러면 내가 이 일을 처리하기위해 내 부탁을 들어준 사람들에게 경과를 전달하고 인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부탁,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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