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길 위에서 잠시 춤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상대적으로 어린(21세 이하) 이란 선수들이 얼마나 빠르게 압박하는가를 미리 대비하고 그라운드에 들어갔기에 우리가 원하는 흐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시간대에 귀중한 골을 터뜨렸기에 승리에 대한 조급함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축구장의 고비를 넘는 것이 이토록 까다롭지만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우쳐 주었다.

김학범 감독이 이끌고 있는 23세 이하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23일 오후 9시 30분 인도네시아 치카랑에 있는 위바야 묵티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이란과의 16강 외나무다리 대결에서 황의조와 이승우의 골을 묶어 2-0으로 완승을 거두고 8강에 올라 우즈베키스탄을 만나게 됐다.

더 빠른 패스 플레이 준비한 결과

적어도 한두 살 아래의 이란 선수들이기에 빠르고 거친 압박 축구를 예상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탈압박을 어떻게 해내느냐였다. 좁은 지역 압박에서 벗어나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오픈 플레이를 펼치기 위해서는 논스톱 3자 패스, 삼각 패스가 얼마나 준비되었는가 하는 점인데 훈련 과정에 꼭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3~4명이 짝을 이루어 유기적으로 공 돌리기 연습하듯 실천하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 선수들은 이러한 흐름을 예상하고 나왔고 그대로 실천했다. 그 덕분에 주도권을 쥐고 원하는 방향으로 게임을 풀어나갔다. 17분(이란 메디카니)과 19분(한국 황인범)에 골대를 때리는 슛이 연거푸 나와 양팀 선수들이 바짝 긴장하기는 했지만 한국은 40분에 천금의 결승골을 뽑아내고 말았다.

측면 공간을 활용하는 패턴 플레이가 기막히게 먹혀들어간 것이다. 골을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패스 방법이어서 상대 수비수들이 눈치를 알아차릴 정도였지만 '김진야-황인범-황의조'로 이어지는 패스의 속도와 정확성이 특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왼쪽 옆줄 가까이에서 공을 잡은 김진야는 기습적으로 공간을 파고드는 황인범에게 정확한 패스를 찔러주었고 양발로 부드럽게 공을 터치한 황인범은 왼쪽 끝줄 바로 앞에서 절묘한 컷백 크로스를 골문 앞으로 보냈다. 이 순간까지 이란 수비수들의 시선은 황인범에게만 향하고 있었기에 더 위험한 자리로 이동하는 황의조를 아무도 막지 못했던 것이다. 빈 골문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황의조의 오른발 인사이드 킥은 아무런 제약도 없이 이란 골 라인을 부드럽게 통과했다.

축구는 이처럼 패턴 플레이에 알면서도 당하는 경우가 많다. 3명의 선수만 눈빛이 정확하게 통하면 상대 골키퍼 포함 예닐곱 쯤은 허수아비처럼 만들어버릴 수 있는 점이 축구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승우 깨어나다


다음 경기를 무조건 기약할 수 없는 토너먼트에서 1골 승부는 말 그대로 살얼음판이다. 그래서 우리 선수들은 더 거칠게 밀고 올라와 압박하는 이란을 상대로 추가골이 필요했다. 선수 교체 없이 후반전을 그대로 시작한 우리 팀은 에이스 손흥민에게 의존하는 플레이에 빠지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한 포인트였다.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종목에 세계 톱 클래스라 할 수 있는 손흥민은 상대 팀들의 집중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그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얹어줄 경우 그 하중이 집중되는 것은 물론이고 팀 경기력의 정체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우리 선수들은 손흥민을 연계 플레이에 적절히 활용하는 전술을 준비했다. 오른쪽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 손흥민보다 그 주변에 서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동료들이 더 지혜롭게 공을 돌릴 수 있어야 했던 것이다. '황의조-이승우-황인범'이 바로 그 까다로운 역할을 맡았고, 이들 셋이 나란히 공격 포인트 하나씩을 기록하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냈다. 예상하고 준비한 것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셈이다.

55분에 유쾌한 추가골이 터졌다. 이란 수비수가 멀리 걷어내려다가 높게만 차 올리는 실수를 저질렀고 떨어지는 공을 향해 이승우가 달려들었다. 상대 수비수에 비해 체격 조건은 약하지만 이승우의 발밑은 누구보다 빨랐고 위협적이었다.

이승우가 바운드 된 공에 대한 집중력도 좋았지만 이란 수비수 아간잔푸르, 콜라소르키, 아르타를 차례로 무너뜨리는 드리블 유연성은 단연 압권이었다. 그 왼쪽에 황의조, 오른쪽에 손흥민이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굳이 공간 패스를 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개인기를 자랑한 뒤 골키퍼 아미니 자제라니 마흐디가 자기 왼쪽으로 몸을 날려도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시원한 오른발 슛을 성공시킨 것이다.

조별리그 세 경기를 치르며 컨디션이 나빴기에 뛴 시간이 부족했던 이승우였지만 정말 필요한 순간에 반짝반짝 빛난 것이다. 이승우 특유의 유연한 댄스 세리머니로 그가 살아났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전반전 선취골도 그렇듯 에이스 손흥민이 직접 관여하지 않은 골 장면들이 조금 어색하게 보여도 교환 불가의 귀중한 가치 바로 그것이었다.

골키퍼 조현우 무릎 괜찮나?


이승우의 멋진 추가골 덕분에 이긴 것은 확실하지만 믿고 쓰는 월드컵 골키퍼 조현우가 무릎을 잡고 쓰러졌다. 이승우의 추가골 전에 이란의 중거리슛을 막기 위해 자기 오른쪽으로 몸을 날린 조현우가 왼쪽 무릎에 이상을 느낀 것이다. 1차 응급 치료로 계속 뛸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이승우의 추가골 직후 두 번째 의료진을 요청하더니 59분에 송범근 골키퍼가 대신 그 역할을 맡게 됐다.

조현우에 이어 경기 끝무렵에는 이승우와 손흥민까지 근육 경련을 일으켜 보는 이들을 긴장시켰다. 비록 부상 수준은 아니기에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간판 공격수들이 풀 타임을 소화하는 것이 어려운 현실은 더 높은 곳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 우리 선수들에게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선수들은 오는 27일(월) 오후 6시 브카시에 있는 패트리엇 찬드라바가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까지 사흘을 쉬면서 준비할 수 있다. 조현우 골키퍼의 왼쪽 무릎에 아무 이상이 없기를 빌어야 한다. 상대는 와일드 카드를 제외하고 이 연령대 아시아 챔피언인 우즈베키스탄이다. 그들은 16강 첫 경기에서 홍콩을 3-0으로 가볍게 물리치고 올라왔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16강 결과
- 23일 오후 9시 30분, 위바야 묵티 스타디움-치카랑)

★ 한국 2-0 이란 [득점 : 황의조(40분,도움-황인범), 이승우(55분)]

경기 주요 기록 비교
슛 : 한국 10개, 이란 9개
유효 슛: 한국 7개, 이란 2개
점유율 : 한국 60%, 이란 40%
코너킥 : 한국 1개, 이란 1개
프리킥 : 한국 14개, 이란 14개
오프 사이드 : 한국 4개, 이란 4개

◎ 한국 선수들
FW : 황의조
AMF : 이승우(89분↔김정민), 황인범(90+6분↔정태욱), 손흥민
DMF : 이승모, 장윤호
DF : 김진야, 황현수, 조유민, 김문환
GK : 조현우(59분↔송범근)

◇ 8강 일정
☆ 한국 - 우즈베키스탄(27일 오후 6시, 패트리엇 찬드라바가 스타디움)
☆ 베트남 - 시리아(27일 오후 9시 30분, 패트리엇 찬드라바가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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