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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11시 30분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중증장애인 김선심씨의 귀에 전화기를 올려주고 있다.
▲ 중증장애인 김선심씨 6일 오전 11시 30분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중증장애인 김선심씨의 귀에 전화기를 올려주고 있다.
ⓒ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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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덥고 아픈데...밤에 혼자라 무서웠다. 목도 너무 마른데..."

서울의 최저기온이 30.3도를 기록했던 지난 1일과 2일 밤사이 자력으로는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인 김선심(54)씨는 갈증과 더위를 버텨내기 위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입에서는 피가 흘렀다.

지난 6일 오전 11시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김선심씨의 입술에는 그 날의 상처가 남아있었다. 그는 양손에 손수건을 묶은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손바닥에 땀이 차서 진물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차갑게 적셔 묶어준 것이다.

김선심씨는 월·화·금·토요일은 24시간 활동지원사와 함께 지낸다. 수·목·일요일은 활동지원사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만 있다가 퇴근한다. 활동지원사가 떠나면 김씨의 임대아파트는 '찜통'이 된다. 에어컨도 없고 한 대 있는 선풍기도 과열로 불이라도 날까 켤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 더워 온종일 열어뒀던 현관문도 활동지원사의 퇴근과 함께 닫힌다. 베란다 창문이 열려있지만 실내 온도를 낮추기엔 역부족이다.

김씨는 일주일의 3일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 한 채 '찜통방'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선심씨의 활동지원사 김아무개(55)씨는 "오전에 현관문을 열면 열기가 확 느껴질 정도로 밤사이 방이 달궈져 있다"라며 "밤새 입고 있던 옷도 땀으로 범벅이 돼있다"라고 했다. 김씨는 "(선심씨 집에) 오자마자 선풍기를 틀고 물을 준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사달이 났다. 선심씨는 속이 메슥거리고 몸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어 지난 2일 병원에 갔다. 온도를 재니 체온이 38.6도였다. 의사는 안정될 때까지 24시간 간병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은 활동지원사가 오후 8시이면 퇴근하는 날이었다. 주민센터에 진단서를 제출하며 이날만이라도 24시간 장애인 활동지원을 부탁했지만 "이미 정부와 지자체에서 주는 최대 시간을 지원받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선심씨는 미안했지만 살기 위해 퇴근해야 하는 활동지원사에게 함께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고열로 끓던 2일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24시간 보조를 받지 못 해, 더위와 지병·사고에 쓰러져 가는 건 김선심씨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2년에는 활동지원사가 퇴근한 새벽에 발생한 불에 중증장애인 김주영씨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은 6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24시간 활동보조를 받지 못 해 장애인들이 위험에 처하는 것이 일상이다"라며 "하지만 24시간 활동보조는 박근혜 정부 당시 복지부가 사회보장기본법을 근거로 서울시 자치구의 장애인 추가 추가 활동지원을 막은 이후부터 제자리 걸음이다"라고 했다.

박 교장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지방선거 이후 일부 지자체가 장애인 활동보조 시간을 확대하려고 했으나, 당시 박근혜 정부는 사회보장제도를 신설·변경할 때 복지부장관과 협의하도록 한 '사회보장기본법'을 근거로 제동을 걸었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 2015년 장애인 100명에 한해 24시간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중앙정부의 제동으로 인원 확대 없이 여전히 100명이다. 중앙정부가 24시간 활동지원을 보장하지도 못 하면서 지자체의 지원을 막아, 중증 장애인들은 일상적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온 것이다.

박 교장은 "폭염은 물론 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위험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24시간 활동지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노들장애인야학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1층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의 보건복지부도 24시간 활동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예산도 세우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선심씨는 24시간 활동지원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진정을 넣기도 했다.

온열질환의 여파로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 한 김선심씨는 "주영이가 (활동보조인이 없는 사이 발생한 화재로) 사망해, 활동지원 시간이 많이 늘어났다"라며 "내가 죽어야 이 나라가 활동지원 시간을 늘려줄까 모르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태그:#폭염, #장애인, #장애인활동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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